- [성희직의 선거이야기] 광부들이 만들어 준 ‘광부 출신’ 강원도의원(2회)
성희직(시인. 정선진폐상담소장)
민중당 후보 중 유일 35세 최연소 도의원 당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 3일)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초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선거까지 함께 치른다.
<선거 벽보 사진을 양복 차림 대신 광부작업복 차림으로 찍었다.>
내가 처음 출마했던 1991년 강원도의원 선거 때는 시장. 군수, 도지사 등 자치단체장 선거는 없었고 기초의원 선거는 3월에 먼저 치렀다.
그때는 광역의원 선거 하나만 했는데 진보정당인 민중당 후보에 광부 출신이라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도의원 선거는 합동유세가 있었다,
선거구가 고한읍과 사북읍이어서 유세를 두 번 했다.
민중당 후보는 전국에서 43명이 나왔다.
사북초등학교 운동장에서의 두 번째 합동유세 때는 많은 청중이 몰렸다.
지방선거인데도 내 이력이 특별해서인지 유세장엔 중앙일간지 기자들까지 내려와 취재할 정도였다. 민중당은 당시엔 데모나 하는 ‘빨갱이당’이라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바닥 민심 오판 ‘정보기관 잘해야 3등 보고’
선거구엔 모두 네 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는데, 선거 중반 정선경찰서 정보 형사는 “성희직이는 잘해야 3등”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단다. 이는 바닥 민심을 읽지 못한 오판이었다.
다른 후보 진영과는 달리 내 선거를 돕는 광부들은 퇴근 후 자기 주머니를 털어 이웃과 지인들에게 술을 싸며 신바람 나게 뛰었다.
일반적으로 선거 벽보는 양복 차림인데 나는 광부작업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이 집에 와서는 “엄마 3번 찍어줘! 그 아저씨는 돈도 없고 불쌍하대” 하더란다. 이런 걸 ‘동정표’라고 하는 모양이다.
삼척탄좌와 동원탄좌에서는 간부들이 부서별로 근로자 이름 밑에 정치 성향까지 표시해 가며 여당 후보 선거를 도왔다고 들었다.
그래도 광부들은 가파른 산동네와 사택 지역을 누비며 자기 일처럼 뛰어다녔다.
이처럼 열성인 광부와 가족들을 보며 상인들은 “성희직이가 도대체 누군데 광산쟁이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지?”하고 놀라곤 했단다.
내 선거구엔 삼척탄좌와 동원탄좌 광부들이 많았다.
민영 탄광 1~2위 규모인 이들 탄광은 1987년~88년 파업 주도로 징역을 살고 나온 정운환과 김창완 씨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대단했다.
두 사람은 여왕벌처럼 선거를 이끌었고 광부들은 꿀을 모으는 일벌처럼 표를 모으려 정말 열심히들 뛰었다.
자고 일어나니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사
1991년 6월 20일 투표로 선출된 광역의원 당선자는 모두 866명이다. 나는 민중당 후보 중 유일한 당선자였고, 또 강원도의회 최연소 당선자(35세)란 기록을 남겼다.
다음날 동아일보 춘천주재 최창순 기자가 선거사무실로 찾아와 인터뷰했다. 며칠 후 “인간승리”란 제목으로 신문 한 면이 통째로 내 이야기로 채워졌다.
신문마다 기사를 실었고 나중엔 주간지와 월간지에도 내 이야기를 몇 쪽씩 내보냈다. 자고 일어나니 하룻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된 격이었다.
당선 인사 갔더니 40대 아줌마 ‘약자의 통쾌한 승리다’ 부둥켜안고 통곡
도의회에 등원하기까지는 20일 이상 남았기에 부지런히 당선 인사를 다녔다. 어느 날 고한읍 두문동 골목길의 허름한 판잣집 앞에서 “성희직이 당선 인사 왔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기척을 냈다.
잠시 후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더니 그만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부둥켜안고는 엉엉 소리 내어 우시는 게 아닌가.
뜻밖의 상황이 당황스러워 엉거주춤 서 있어야 했다. 나를 보는 순간 아마도 “우리 편” “약자의 통쾌한 승리”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게 아닐까.
내가 도의원을 세 번 하는 동안 그 일은 큰 자극제가 되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가난한 탄광촌 사람이 나의 당선에 눈물을 펑펑 쏟아낸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에 ‘나를 뽑아주고 운동해 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내 나이도 어느덧 70살,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이런 은혜는 내가 살아가면서 세상에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다. 이렇듯 선거는 나에게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쳐 준 또 다른 학교였다.
(덧붙이는 이야기) 1991년 6월 광역의원 선거 때 가수 이선희는 서울시의원 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야구계의 전설 무쇠팔 최동원 선수는 민자당 공천을 마다하고 부산시의원 선거에 ‘꼬마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하였다. ‘프로야구선수협’을 주도한 소신 때문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