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 정선의 마음을 잇는 일
가을비가 밤새 내렸다. 계곡물은 불어나며 깊은 소리를 냈고, 숲길에는 짙은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비가 그친 아침, 항골숨바우길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10월 18일 열린 ‘정선군민 한마음 트레킹대회’는 평창–정선 간 단선전철의 국가철도망 반영을 기원하며 군민이 함께 걸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 정선신문과 북평면주민자치회, 정선군체육회가 주관하고 정선군이 후원했다.
원시림 바위숲길을 걸으며 가볍게 숨 쉬듯 산책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숨바우길, 이름처럼 이 길은 사람의 숨결과 자연의 호흡이 맞닿는 공간이었다. 걷기의 중간 지점에서는 ‘숲속 명상체험’이 진행되었는데, 잠시 호흡을 고르고 숲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시간은 몸의 피로뿐 아니라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주는 경험이 되었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활동을 넘어 정서 안정과 자아 회복을 돕는 행위다. 자연의 리듬과 발걸음의 리듬이 맞아갈 때, 마음은 저절로 안정된다. 이번 행사가 단순한 지역 이벤트를 넘어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함께 걷고, 서로의 속도에 맞추는 그 과정이 이미 ‘심리적 회복의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기 문화를 오래 경험한 이로서 한 가지 아쉬움도 있다. 국내의 대부분 트레킹 코스는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스페인의 산티아고순례길은 800km가 넘는 거리에서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생활의 길이다. 순례자는 매일 다른 마을에서 잠시 머물며, 자연과 사람, 문화를 이어간다. 길이 단순한 코스가 아니라, 삶의 연결망이 되는 것이다.
반면 국내의 길은 ‘단절된 걷기 경험’이 대부분이다. 긴 호흡으로 걷고 싶은 이들에게는 심리적 몰입이 끊기고, 지역 간 연계 효과도 떨어진다. 정선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산과 계곡, 마을 간 거리가 적절히 이어져 있어, 생활형 순례길 모델을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골숨바우길을 중심으로, 북평–임계–도전 등 인근 마을을 잇는 ‘정선 마음길’과 같은 연속형 코스를 조성한다면, 단순한 관광로를 넘어 치유와 교육, 문화가 결합된 순례형 트레킹길로 발전시킬 수 있다.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걷고 머물며, 정선의 자연과 이야기를 체험하는 길, 그 길 위에서 지역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재생할 수 있다.
길은 결국 마음의 구조를 닮는다. 끊어진 길은 고립을 낳지만, 이어진 길은 관계를 회복시킨다. 정선의 길이 언젠가, 사람과 마을, 그리고 마음을 잇는 진정한 순례길이 되기를 바란다.
지효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