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덕골정선읍에서 적거리를 지나 반점재 쪽으로 가다가 왼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봉산과 방아재 계곡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넓은 산골마을이라고 해서 ‘납덕골’이라고 했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납덕(納德)’, ‘납덕동(納德洞)’이라고 했다. ‘납’은 ‘넓다’는 뜻이며, ‘닥’은 ‘산(山)’의 옛말인 ‘ㄷㆍㄷ’이 변한 말이다. 납닥골에는 지명의 첫 자를 이용해 “지르메재 사람들이 지름을짜서 / 적거리에 가서 전을 부쳐서 / 송로리에서 송송 썰어서 / 반점 사람이 바래는 걸 / 납덕 사람들이 납죽 집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온다. 납덕골에는 40여 년전에는 골까기 위쪽가지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방축맥이 아래에 20여 가호가 살고 있다.돌다리납덕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래전 향교가 있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속에 돌다리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돌다리’라고 했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석교(石橋)’, ‘석교동’이라고 한다. 돌다리는 일제강점기 현재의 국도 자리에 도로가 나기 전까지 골짜기로 해서 정선에서 지르너미를 거쳐 남평으로 가는 도로가 나 있던 곳이다. 지금은 20여 가호가 살고 있다.반점재돌다리 북쪽에서 북평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반점재’는 ‘산자락이 들어나 강 쪽으로 삐져나온 곳에 이는 고개’라는 뜻이다. 반점재를 기준으로 남쪽 정선 읍내 쪽으로는‘내반점’, 고개 너머 북평면 남평리로 가는 도로 아래쪽 강변 마을은‘외반점’이라고 한다. 송오리와 다래로 강변길을 따라 돌아가지 않고 질러가는 고개라고해서 ‘지르네미’라고 부르기도 한다.송오(松五)반점재 동쪽 조양강변에 있는 덕송리의 중심 마을이다. 옛날부터 노송 다섯 그루가 있다고 해서 ‘송로리’라고 불렀다. 송오는 다래 마을과 함께 물길을 이용하지 않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정선읍내로 들이닥칠 때 읍내 사람들이 피난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옛날부터 정선군에서 농사가 잘 되기로 알려진 마을이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 늦게까지 잘 비쳐서 특히 밀과 보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채소가 잘 되고, 특히 땅감(토마토)재배가 옛날부터 잘 되는 마을이다. 덕송리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덕송리에서는 유일하게 천수답을 이용해 논농사를 짓던 곳이기도 하다. 송오에는 개끝으로 이어지는 정선선 철교 위쪽 거북바우 맞은편 둔덕 아래에는 오래 전 개끝으로 가는 나루터가 있었으며, 겨울에는 섶다리를 놓던 곳이다. 지금도 둔덕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있고, 당시 이곳을 오가던 사람들이 무사 안녕을 빌거나 마을 주민들이 기도를 올리던 서낭당이 있다. 지금은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지 않으나 “서낭당과 서낭목은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고 해 그대로 남아 있다. 송오에는 1965년 8월 19일에 개교해 1991년 2월 28일 폐교할 때 까지 270명이 수료한 정선초등학교 덕송분교가 있었으나 학생야영장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건물을 수리해 정선자연학교로 사용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