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거리
상동 북쪽으로 납닥골로 가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옛 봉양리 상동 배터에서 강릉 쪽으로 가는 첫 마을로 지금은 옛날 집터는 수해에 유실되고 농촌 주택개량 사업추진으로 비봉산 밑 도로변에 집단마을이 되었다.
옛날 적거리 마을 앞에는 아담한 세 봉우리가 가지런한 삼봉산이 있었고, 산 중턱에는 향교가 있어 절벽 밑을 흐르는 조양강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었다. 이 삼봉산이 떠내려가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한동안 정선에서 세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13년이 지난 을사년에 큰 홍수가 나 하룻밤 사이에 삼봉산은 떠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삼봉산을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은 강물이 줄어들자 유실된 삼봉산을 찾고자 기골이 장대한 장정 다섯 사람을 뽑아 산을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다섯 장정이 보름이 넘도록 강물을 따라 헤맸으나 삼봉산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숲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한 사람이 산을 찾았다고 소리쳤다. 모두가 일어나 바라보니 멀리 세 봉우리의 산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바위가 있는 곳으로 숨 가쁘게 달려가 보니 단양군 매포면 도담이었다. 강물 한가운데에 보이는 삼봉산은 봉우리 흙이 떠내려 오면서 씻겨 바위만 남았지만 산세로 미루어 보아 삼봉산이 틀림없었다.
잃어버린 삼봉산을 찾은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수십 년 동안 해마다 가을이면 단양군 매포면 도담에 가서 삼봉산의 산세를 꼬박꼬박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예전처럼 산세를 받으러 간 날 도담에선 산세를 줄 돈이 준비되지 않았다. 세를 재촉하는 쪽과 기다리라는 쪽이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다가 목소리가 커지며 언쟁이 붙었다. 그때 겨우 대여섯 살 남짓한 동자가 나타나 산세를 줄 수 없으니 당장 삼봉산을 정선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말문이 막힌 정선 사람은 아무답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부터 삼봉의 세를 받는 일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전설을 낳은 옛날 삼봉산 터는 봉양초등학교와 정선역 일대라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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