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읍 하동
정선읍 진포리
하동
현재 정선제1교가있는 곳 일대에서 정선초등학교 부근 일대까지 강의하류 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하동(下洞)’ 이라고 한다. 1911년에 나온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하동에는 용담, 관음대, 싸내, 수리대, 병목, 엇내, 오반리, 살개벌이 속한다고 나와 있다.
오래 전부터 하동에는 북실리로 건너는 배가 오가는 배터 거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까지 2일, 12일, 22일 등 2의 날에 정기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 후 1914년 12월 25일 도 고시(道告示) 제40호로 하동이 시장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풍운빌라 앞쪽에는 우시장(牛市場)이 개설되기도 했다.
우시장이 서는 날이면 정선 인근에서는 물론 평창 대화 상인들까지 소를 사기 위해 벽파령과 수통매기를 넘어왔다. 오래 전 정선 우시장은 영월 평창 정선의 소 값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시장이었다.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거나 키울 소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우시장은 정선장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 평균 50두 이상이 거래되던 곳이다. 우시장에는 소장수와 한참동안 픙정이 오가기도 하지만, 소 값을 흥정해 주는 중개사가 있었다. 소를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 사이에서 소 값을 흥정해준 뒤 거래가 이루어지면 중개사는 중계료를 받았다. 60여 년 전 당시 중계료는 소 값에 따라 달랐지만 보통 천 원이나 이천 원 정도였다.
우시장 주변으로는 소가 잠시 거처하는 우방(牛房)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음식점들이 있어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룰 정도였다. 우시장에서 팔리는 음식은 주로 국밥, 메밀국죽, 가수기, 메밀부침, 전병, 만둣국, 빈대떡이었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여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정선 우시장에서는 팔리는 소들은 인근 지역에서 끌고 온 소들이 많았다. 산골마을에서는 소를 판 돈으로 집안의 애경사와 자녀들의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 정선장과 함께 열리던 우시장은 1968년 애산리로 옮긴 이후 1980년대 들어 소 값이 떨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해 198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진포리
생탄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에서 적은 양의 샘물이 흘러내려 언제나 길가로 질퍽하고 강변으로 긴 벌이 이어진 곳이어서 ‘진펄’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진포리’가 되었다. 조양강을 따라 하동에서 누리대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 골안 떼군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있던 곳이다. 떼꾼들을 상대로 한 주막은 하동과 진포리, 누리대, 용탄 등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진포리의 주막은 길가 고목(古木) 뒤쪽 약 20여평 정도로 1970년대까지 신씨 할머니가 운영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진포리 길가에 있는 정자나무는 옛날 이곳을 오가던 이들이 쉬어가던 곳이다.
-다음호에 계속-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