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골
덕산기 마을에서 남쪽으로 난 골짜기다. 옛날 덕산기에서 화암면 상돌목과 억실 등으로 넘어가는 길이 나 있는 곳으로 골짜기 안쪽에서 많은 물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물안골’또는 ‘문안골’이라고 한다.1950년대에는 골짜기 안쪽에 토방집이 있었으며, 문안골에서 나무로 만든 수통을 설치해 끌어들인 물로 덕산기에서 논농사를 짓기도 했다. 문안골로 들어가서 동쪽 능선으로 넘어가면서 너래골에 이르게 된다.
송낙봉
문안골 서쪽에 있는 해발 8886m의 산이다. 정선읍 더우리와 화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봉우리에 군락을 이룬 전등나무에 수염과도 같은 송낙이 많이 늘어져 있다고 해서 ‘송낙봉’이라고 한다.
송낙봉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넓게 들어와 멀리는 정선읍 북실리와 봉양리를 잇는 제1교와 아파트, 가까이는 화암면 석곡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송낙봉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 혈을 질렀다고 한다. 덕산기와 너머 화암면 석곡리 사람들은 오래전 송낙봉에 올라 쇠말뚝을 흔들었으나 뽑히지는 않았다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일제의 풍수 침략은 쇠말뚝을 땅의 중요한 부분에 박아 지기를 훼손함으로써 그 땅에 사는 사람 역시 힘을 못 쓰게 한다는 위도가 개입돼 있다. 한국인들의 풍수적 정서를 역이용해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이제는 장수가 나지 않는다’, ‘큰 인물을 기대할 수가 없다’, ‘명산의 혈을 다 끊어버렸다’는 등 자학과 패배의식에 젖도록 한 것이다.
맷골
덕산기 동쪽으로 화암면 북동리와의 경계 가까이에서 남쪽으로 난 골짜기다. ‘산’의 옛말 ‘뫼’가 ‘골짜기’와 더해진 말로 ‘뫼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맷골’이 되었다. ‘깊은 산골짜기’라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은 ‘머애골’로 발음하기도 한다. 맷골을 따라 골짜기를 올라가 송낙봉을 넘어가면 화암면 석곡리 가래골과 장동골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