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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⑱] 죄인이 된 아버지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3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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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는 사람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9편)

녹도아리랑 삽화 18편1 65%.png

 

제18부 - 칠현의 절개와 하늘의 도를 되묻다

 

금점에서 아우라지로 돌아온 뒤, 무진은 낮에는 배를 저었고 밤에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적었다.

나루의 하루가 끝나면 삿대를 처마 밑에 세우고 손부터 씻었다. 

갈라진 손가락 사이로 강물이 스며들 때마다 살이 아렸다. 물기를 닦고 붓을 들면 낮 동안 잠잠하던 상처가 다시 당겼다. 그는 손에 감은 헝겊을 느슨하게 풀고 등잔을 종이 가까이 당겼다.

기름은 조금씩 보탰다. 불꽃이 잦아들면 글씨보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어둠에 잠겼다. 붓을 내려놓았다가도 첫 줄을 바라보면 다시 들었다.

 

邊碩柱.

 

살아 있을 때 아버지는 제 이름을 종이에 쓸 일이 드물었다. 

밭을 빌린 장부와 곡식을 꾸어간 문서에 남의 손으로 적혔고, 마지막에는 죄인의 이름으로 관아에 남았다. 무진은 그 석 자 아래에 큰물에 쓸려간 밭과 남겨야 할 종자, 겨울을 건너야 할 식구들의 수를 써 내려갔다.

무은담의 훈장은 처음 쓴 소장(訴狀)을 읽고 종이를 돌려주었다.

“곤장을 맞고 죽었다는 말은 있다. 그런데 네 아버지가 무엇을 청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구나.”

“억울하게 죽었다고 썼습니다.”

“그 억울함을 남도 알 수 있게 써야 한다. 네 아버지가 바로잡으려 했던 일부터 적어라.”

그날 밤 무진은 종이를 새로 폈다. 큰물이 나던 날부터 다시 썼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던 초여름이었다.

 

며칠 동안 쏟아진 비가 산골짜기를 채웠다. 

밭고랑으로 흐르던 물이 둑을 넘더니 산비탈에서 내려온 흙탕물과 뒤섞여 보리밭을 덮쳤다. 뿌리째 뽑힌 풀과 나뭇가지가 이삭에 걸렸고, 물이 몰리는 곳마다 흙이 패여나갔다.

석주는 삿갓을 눌러쓰고 밭으로 뛰어갔다.

무너진 둑에 돌을 얹었으나 물은 그 아래를 파고들었다. 흙을 퍼다 메우는 동안 다른 쪽이 터졌다. 보리 이삭이 물살에 눕더니 줄기째 흔들렸다. 석주가 손을 뻗어 붙잡자 젖은 흙에서 뿌리가 딸려 나왔다.

 

순덕이 밭둑에서 그만 나오라고 불렀다.

석주는 떠내려가는 이삭을 건지려다 발을 헛디뎠다. 한쪽 무릎을 진흙에 박고서야 몸을 세웠다. 삿갓은 이미 떠내려갔고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눈으로 흘렀다.

무진도 둑 위에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석주가 돌아보았다. 품에는 흙 묻은 보리 몇 줌이 안겨 있었다. 밭 한쪽이 통째로 씻겨나가는 동안 그가 건진 것은 그것뿐이었다.

물이 빠진 뒤에도 밭은 곧 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갈과 모래가 고랑을 메웠고 남은 이삭은 진흙에 엉겨 썩기 시작했다. 석주는 손으로 흙을 걷어내며 쓸 만한 낟알을 골랐다. 순덕은 젖은 곡식을 멍석에 펴놓고 구름 사이로 잠깐씩 드러나는 볕을 기다렸다.

지주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 석주는 대청 아래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큰물에 밭이 상했습니다. 올해 거둘 것을 살펴주십시오. 종자와 겨울 양식만 남겨주시면 내년 농사를 지어 갚겠습니다.”

 

지주는 약조를 말했고 석주는 쓸려간 밭을 말했다. 

대청 위의 장부는 펼쳐져 있었으나 밭을 보러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석주는 순덕이 내놓은 곡식을 다시 갈랐다. 도지로 낼 몫을 한쪽에 덜어놓자 남은 것이 너무 적었다. 덜어놓은 곡식을 되돌렸다가 다시 나누었다. 순덕은 빈 자루의 입구를 잡은 채 바가지가 오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석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으나 숟가락은 손에 쥐고 있었다. 순임이 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낟알을 훑어 먹을 때, 그는 숟가락을 밥상 아래로 내렸다.

 

며칠 뒤 다른 작인들과 함께 지주의 집을 찾았다. 

모두 큰물에 밭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석주는 수확과 피해를 장부에 적어달라고 했다. 도지를 떼어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낼 곡식이 없다는 사정을 남겨달라고 했다.

그 말은 고발장에 없었다.

작인들을 선동하고 도지를 거부했으며, 지주의 장부를 빼앗아 훼손하려 했다는 혐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튿날 석주는 포승에 묶여 끌려갔다.

무진은 거기까지 쓰고 붓을 멈췄다.

아버지가 문간을 지나던 모습을 적으려 하자 기억 속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순덕이 군졸에게 밀려 넘어졌고 순임은 어머니의 치마를 붙든 채 울었다. 무진은 맨발로 뒤따라 나갔으나 군졸의 팔에 가로막혔다.

 

석주는 마당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을 무진은 끝내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했다. 두렵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들 앞에서만은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열두 살의 그는 알 수 없었다.

먹이 마르기 시작한 붓끝을 벼루에 적셨다. 표정 대신 기억하는 말을 썼다.

없는 곡식은 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밤새 베껴 쓴 소장에는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남았다. 잘못 쓴 글자를 걷어낸 자리마다 종이의 보풀이 하얗게 일어났다. 무진은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소장을 천에 싸서 품에 넣었다.

관아의 아전은 첫 줄을 읽자 얼굴을 찌푸렸다.

죄인으로 기록된 변석주의 억울함을 밝혀 그 이름을 신원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이미 처결이 끝난 일이다.”

“죄가 없는데 어떻게 끝난 일입니까?”

“도지를 거부하고 사람들을 선동했으니 벌을 받은 것이다.”

“없는 곡식을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정을 장부에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아전은 소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문초 기록에는 죄를 인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는 죄를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네가 있었느냐?”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관아 안에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듣지 못했다. 집으로 실려온 뒤에는 말 한마디를 알아듣는 데에도 얼굴 가까이 귀를 대야 했다.

“곤장을 맞은 뒤 죽었다고 해서 형벌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원이 살펴본 문서라도 있느냐?”

“의원을 부를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무진은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가 빈손을 꺼냈다. 가져온 것은 소장뿐이었다.

아버지의 상처를 적은 문서는 없었다. 순덕이 갈아주던 젖은 헝겊과 피 묻은 옷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흘 동안 방에 밴 냄새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에서 나던 젖은 소리를 어디서 가져와 펼쳐놓을 수 있겠는가.

석주는 엎드린 채 문 쪽을 바라보곤 했다. 순덕이 물을 가져오면 아이들이 먹었는지부터 물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을 돌렸다.

 

그 일을 아전 앞에서 꺼내려니 목 안이 막혔다.

“증인이 있으면 데려오너라.”

무진은 소장을 받아 나왔다.

석주를 끌고 간 사람도, 형틀 곁에 서 있던 사람도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내는 무진을 보자 사립문부터 닫았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아버지를 관아까지 끌고 간 사람이 아저씨였습니다.”

“마름이 시켜 길을 안내했을 뿐이다.”

“매를 맞는 것도 보았잖습니까?”

문 안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입을 열면 이번에는 우리 식구가 쫓겨난다.”

문 아래로 아이의 맨발이 보였다. 사내 뒤에 붙어 있던 아이는 문이 흔들리자 안쪽으로 물러났다.

 

무진은 들었던 손을 내렸다.

다른 사내는 밭에서 괭이를 세운 채 그의 말을 들었다.

“네 아버지가 억울한 줄은 안다. 하지만 내가 증언하면 지주가 소작지를 거둘 게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내는 밭 아래 초가를 바라보았다. 문 앞에 앉아 있던 아이 둘이 아버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답하지 못하고 괭이 자루만 고쳐 쥐었다.

“나에게도 먹여 살릴 자식이 있다.”

바람이 지나가며 마른 콩깍지를 흔들었다.

무진은 그를 원망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도 저 아이들 같은 식구들을 먹이려고 지주를 찾아갔다. 그 억울함을 보았던 사람들 역시 같은 땅에서 이듬해 곡식을 얻어야 했다.

 

소장은 세 차례 되돌아왔다.

무진은 빠진 사정을 보태고 해진 가장자리에 다른 종이를 덧붙였다. 접힌 자리는 점점 얇아졌으나 아버지가 죄인이 아니라는 문장만은 베낄 때마다 또박또박 썼다.

금점에서 오횡묵이 살펴보겠다고 한 말도 기억했다. 그러나 그 말 하나에 아버지의 이름을 맡겨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낮에는 강을 건너고 밤에는 소장을 고쳤다. 등잔 아래에서 그의 손과 종이가 함께 닳았다.

네 번째로 관아를 찾은 날에는 초겨울의 찬비가 내렸다.

높은 산의 허리는 눈에 묻혔고 골짜기에는 비가 들이쳤다. 젖은 낙엽이 짚신 바닥에 달라붙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바람이 저고리 틈으로 파고들어 등줄기를 훑었다.

동헌 밖에 이르렀을 때 무진은 발가락의 감각을 거의 잃고 있었다. 처마 아래에서 소장부터 꺼내 살폈다. 천의 바깥쪽은 축축했으나 종이는 마른 채였다.

 

아전들은 그를 알아보고도 지나갔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발 앞에 작은 구멍을 팠다. 마른 자리를 찾아 반걸음 옮기면 바람에 기운 비가 어깨를 적셨다. 그는 소장을 다시 품에 넣고 두 팔을 모았다.

방 안에서 오횡묵은 석주의 사건 기록과 밭주인에게서 받아 적은 말을 나란히 놓고 있었다.

밭주인은 홍수 피해를 알고 있었다. 작인들이 무기를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도, 석주가 수확과 피해를 장부에 적어달라고 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러나 고발장에는 그런 사정이 없었다.

문초 기록에는 죄를 인정했다는 말이 있었다. 무엇을 물었고 석주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몇 줄의 상투적인 문구에 묻혀 있었다.

 

오횡묵은 붓끝으로 그 대목을 짚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물을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의 답은 이 종이에 남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답마저 누가 어떤 손으로 줄였는지 알 수 없었다.

호방이 문밖에 무진이 와 있다고 알렸다.

오횡묵이 문을 열었다.

무진은 젖은 짚신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저고리 어깨가 검게 젖었고 턱 아래로 떨어진 물방울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품에서 꺼낸 소장만은 비를 맞지 않았다.

“들어오너라.”

무진은 문턱 앞에서 잠시 멈췄다.

“소장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앉아서 말하자.”

 

오횡묵은 종이를 받았다. 덧붙인 가장자리가 손바닥에 걸렸다. 첫머리에 석주의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로 아들이 여러 밤 고쳐 쓴 사정이 이어졌다.

무진이 무릎 위에 올린 손에는 먹 자국과 삿대를 잡은 굳은살이 겹쳐 있었다.

“밭주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무진의 손이 굳었다.

“제 아버지의 말을 인정했습니까?”

“큰물에 밭이 상한 것은 알고 있었다. 네 아버지가 피해를 적어달라고 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무진은 입술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오횡묵은 고발장을 소장 곁으로 당겼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말이 없다. 어째서 빠졌는지 다시 묻겠다. 당시 문초에 관여한 자들도 불러야 한다.”

“이번에도 증인이 없다고 하면…….”

“네가 증인을 데려오지 못했다고 해서 이 기록이 저절로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진은 두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한쪽에는 아버지의 죄가 적혀 있었고 다른 쪽에는 그 죄를 벗겨달라는 자신의 말이 있었다. 소장의 들뜬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손가락이 떨려 종이가 가볍게 울었다.

오횡묵은 마른 헝겊을 가져오게 하고 화로를 가까이 놓아주었다.

젖은 짚신에서 스민 물이 마룻바닥에 번졌다. 무진은 뒤늦게 그것을 보고 발을 거두려 했다.

“그대로 두어라.”

무진은 헝겊으로 손을 감쌌다. 불 앞에서도 한동안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무진이 돌아간 뒤에도 오횡묵은 소장을 접지 않았다.

화로의 불은 잦아들었고 마루에 번진 짚신 자국은 가장자리부터 말라갔다. 소장을 받느라 스쳤던 젊은이의 손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에 먹이 배어 있었다.

 

녹도아리랑18편 삽화2 65%.png

 

전에 무진은 제 집안이 고려 말 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변귀수의 후손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큰물에 밭을 잃었다. 남은 곡식에서 도지를 떼면 아이들이 굶는다고 호소하다 곤장을 맞았고, 집으로 실려온 지 사흘 만에 죽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묻고 돌아온 뒤 끝내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집에서 두 번 상복을 입었다. 며느리는 남편의 시신을 닦던 손으로 시아버지의 수의를 여몄다. 곁에서 어린 딸이 울었고, 아들은 두 번째 관이 나가는 문턱에 서 있었다.

저녁이 되자 여자는 두 사람의 밥그릇을 치웠다. 남은 아이들에게는 밥을 먹으라고 해야 했다. 솥뚜껑을 열고 한참 들여다보았으나, 밥을 푸려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충절을 지킨 조상의 이름은 대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 집에 남은 것은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여자,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큰물에 씻겨나간 밭이었다.

 

오횡묵은 등잔 심지를 돋웠다.

전오륜, 변귀수, 김충한, 고천우, 김위, 이수생, 신안.

고려가 무너질 때 벼슬을 버리고 정선의 산으로 들어간 일곱 사람이었다. 새 임금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뜻을 후세는 충절이라 불렀다.

그 이름들을 속으로 부르던 오횡묵은 산에 들어간 첫날 저녁을 생각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해가 졌을 것이다. 벗어놓은 관복으로는 밤의 추위를 막을 수 없었고, 따라온 식구들은 낯선 처마 아래 짐을 풀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이려 몸을 숙였으리라.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솥을 걸고,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남은 곡식부터 헤아렸으리라.

나라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사람도 그 아이에게는 아버지였다.

일곱 이름은 오래 남았다. 그 곁에서 곡식을 씻고 불을 살리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오횡묵은 아는 이름이 없었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기억 속에서 오래된 책장이 넘어갔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그 열전의 첫머리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이야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은나라 말기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아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숙제는 형에게 사양했고, 백이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며 떠났다. 서로 자리를 내어주려던 형제는 끝내 모두 고향을 등졌다.

뒤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러 나섰다. 죽은 아버지 문왕(文王)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군대를 이끌었다. 두 형제는 그의 말 앞을 막아섰다.

아버지의 장례도 마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효인가. 신하가 자신이 섬기던 임금을 치는 것이 인인가.

말 뒤로 창과 깃발이 늘어서 있었다. 군사들이 칼을 뽑았으나 두 사람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 태공(太公)이 의로운 사람들이라며 말려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군대는 끝내 그들이 막아선 길로 나아갔다.

 

은나라가 무너졌다. 

사람들이 새 임금을 따를 때 두 형제는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갔다.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고사리로 연명했다.

『사기』에는 두 사람이 굶주림 끝에 노래를 지었다고 적혀 있었다. 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는 처지를 읊다가, 자신들이 막지 못했던 전쟁을 돌아보는 노래였다.

오횡묵은 그 뜻을 천천히 되짚었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는구나.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과 순임금, 우임금의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아, 이제 죽음으로 가는구나.

우리의 목숨이 다해가는구나.

 

登彼西山兮,采其薇矣。

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我安適歸矣?

吁嗟徂兮,命之衰矣!

 

오횡묵은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대목에서 멈췄다.

두 형제는 끝내 그 산에서 굶어 죽었다. 천하는 새 임금을 맞았으나, 그들에게는 마음을 굽히지 않고 내려갈 곳이 없었다.

공자는 두 사람이 어짊을 구해 얻었으니 무엇을 원망하겠느냐고 했다. 오횡묵은 그 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뜻을 지킨 두 사람의 굶주림이 마음에 걸렸다.

사마천도 그 죽음을 높은 절개라는 말로 덮지 못했다.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 형제는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가난 속에서도 배우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다 일찍 죽었다.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았다는 도척(盜跖)은 오래 살았다. 남을 짓밟아 모은 재산이 자손에게까지 이어지는 동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의 집에는 도리어 재앙이 들었다.

사마천은 그 어긋난 삶들을 적고 물었다.

 

하늘의 도는 옳은가, 그른가.

젊은 날 오횡묵도 그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밥상이 들어왔다. 두 형제의 굶주림을 읽은 손으로 따뜻한 밥그릇을 받았고, 이튿날이면 다른 일을 보았다.

오늘은 책상 위에 변석주(邊碩柱)의 이름이 놓여 있었다.

없는 곡식은 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진이 쓴 문장을 다시 읽었다.

석주에게는 들어갈 산이 없었다. 돌아갈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남은 곡식을 다 내놓으면 그들이 굶었다. 그는 지주의 대문 앞에서 허리를 숙였고, 청을 물리치자 다른 작인들과 함께 다시 찾아갔다.

그 두 번째 걸음에도 두려움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돌아서면 집에는 같은 빈 자루가 있었다.

 

오횡묵은 소장에 손을 얹었다. 나라를 향한 충절은 책에서 배웠다. 식구들의 끼니를 지키려고 다시 지주의 문을 두드린 사람의 마음은 오래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석주는 매를 맞고 돌아온 뒤에도 아이들이 먹었는지부터 물었다고 했다. 몸을 돌릴 수 없어 엎드린 채로,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눈을 돌렸다고 했다.

변귀수의 이름은 충신으로 전해졌다. 그 후손의 집에서는 상복을 벗기도 전에 겨울 양식을 걱정했다. 손자는 집안을 떠받치려고 금점으로 들어갔다.

오횡묵은 무진의 갈라진 손을 떠올렸다. 그 손이 오늘 품에서 꺼낸 것은 조상을 자랑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죄인이 된 아버지의 이름을 돌려달라는 소장이었다.

그는 문초 기록을 당겼다.

죄를 인정하였다.

누가 무엇을 물었기에 나온 답인가. 매가 내려오기 전의 말인가, 더는 견딜 수 없어진 뒤의 말인가. 기록에는 없었다. 그 아래에 찍힌 관인만 또렷했다.

 

고발장을 낸 자는 제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었을 것이다. 매를 친 자도 저녁이면 손을 씻고 수저를 들었을 것이다. 석주만 사흘 동안 숨을 몰아쉬다가 죽었다.

그런데 죄인의 이름은 석주의 것이었다.

칠현의 이름 앞에는 충절이 놓였다. 그 후손의 이름 앞에는 선동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오횡묵의 손바닥에 소장의 거친 가장자리가 닿았다.

석주는 제 죽음이 절개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 돌아가 남은 밭을 고르고, 종자를 뿌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려 했을 것이다.

훗날 문초 기록만 남는다면 그 바람마저 사라질 터였다. 밭을 덮친 물과 빈 자루를 잡았던 아내, 아버지의 굳은살을 문지르던 아이는 그 몇 글자 안에 없었다.

창밖에서 찬비가 처마를 두드렸다.

오횡묵은 어둠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하늘의 뜻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문초를 맡았던 자도, 매를 친 자도, 밭의 피해를 알고 고발장을 낸 자도 살아 있었다.

 

그는 새 종이를 폈다.

당시 문초를 맡았던 아전과 형리의 이름을 적었다. 밭주인에게 다시 물을 것도 써 내려갔다. 붓끝이 걸려 내려다보니 무진의 소장에서 떨어진 작은 보풀이 종이에 붙어 있었다.

손끝으로 그것을 걷어내고 다음 줄을 썼다.

밤은 깊었으나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거칠현의 산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 아래 어딘가로 후손 하나가 아버지의 이름을 품고 걸어가고 있었다. 젖은 짚신이 진흙에 붙잡힐 때마다 걸음이 늦어질 터였다.

집에서는 누가 그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등잔의 기름이 바닥을 드러냈다. 오횡묵은 기름을 조금 더 붓고 벼루에 남은 먹을 모았다. 오래 빈 종이를 바라보다가 네 줄을 썼다.

 

칠현은 절개 품고 깊은 산에 들었고

백이·숙제 굶어 죽어 하늘 뜻을 묻는구나

큰물 지난 빈 밭에는 백성 울음 남았는데

외로운 등불 아래 이 원한을 누가 풀랴

 

七賢抱節入深山

夷齊餓死問天心

水過空田餘庶哭

孤燈誰與雪冤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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