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는 사람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8편)

제17부 - 갱목값 떠안은 광군들, 죽을 나누는 무은담
금점의 저울과 추가 관아 마당에 놓인 날,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볕이 들었다.
기왓골에서는 아직 물방울이 떨어졌고, 대청 아래 젖은 흙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 광군들은 짚신 바닥을 돌에 문질러 진흙을 떼고 마루 끝에 앉았다. 발을 오래 접지 못하는 사내는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서리가 광석을 저울에 올려 관아의 추로 달고, 금점의 추로 다시 달았다.
같은 광석인데 저울대는 다른 곳에서 멎었다. 오횡묵이 한 번 더 달게 하자 지켜보던 광군 하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저 추로 늘 달았습니다.”
사내는 금점의 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바닥에 남은 돌가루를 무릎에 문지르던 손도 멎어 있었다.
오횡묵은 무게의 차이를 적게 하고, 금을 판 내역과 품삯을 맞춰 확인된 몫부터 돌려주게 했다.
돈을 받은 사내 하나는 손바닥을 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엄지로 동전의 가장자리를 훑었다.
“이제 발에 약을 바를 수 있겠습니다.”
그는 돈을 저고리 안쪽에 넣고 짚신을 신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곪은 뒤꿈치가 닿은 모양이었다. 끈을 놓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발을 밀어 넣었다.
대청 끝에는 두칠이라는 광군이 앉아 있었다. 갱도가 무너져 오른쪽 다리를 다친 사내였다.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했으나 의원을 부른 삯과 쉬는 동안 먹은 죽값까지 빚으로 남아 있었다.
서리가 정산한 내용을 읽어주자 두칠은 줄어든 액수를 다시 물었다. 종이를 받아들고도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몰라 서리의 손끝을 따라 눈을 옮겼다.
“의원 부른 값도 빠졌습니까?”
“그것도 빚에서 덜었다.”
두칠은 고개를 숙이고 종이를 품에 넣었다.
벽에 기대놓은 지팡이를 잡아 몸을 일으켰으나 문턱 앞에서는 다시 멈춰야 했다. 다친 다리를 끌어당기는 동안 지팡이를 쥔 손등에 힘줄이 솟았다.
오횡묵은 그가 마당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빚을 덜었다는 말을 듣고도 두칠은 올 때와 같은 걸음으로 돌아갔다.
이레 뒤, 두칠이 다시 관아를 찾아왔다.
지팡이 끝에 골짜기의 붉은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대청 아래에 이르러도 곧장 앉지 못하고 기둥을 붙든 채 다친 다리를 천천히 굽혔다.
“이번에는 저울이 아닙니다.”
품에서 꺼낸 종이는 여러 번 접힌 자리가 손때로 검었다. 새로 붙은 비용의 첫머리에 갱목 보강비라고 적혀 있었다. 썩은 버팀목을 갈면서 쓴 나무값과 나무를 벤 품값, 산 아래에서 끌어올린 삯을 광군들에게 나누어 물린 것이었다.
“굴을 튼튼하게 했으니 저희도 몫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오횡묵은 종이를 펴놓고 두칠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받는다고 하더냐?”
“이번 품삯에서 제한다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냐?”
“굴에 들어가는 사람은 다 냅니다.”
두칠은 다친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가 말을 이었다.
“저는 안쪽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입구에서 돌만 고르는데도 내라 합니다.”
줄여놓은 빚이 다른 이름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횡묵은 그 종이를 호방에게 건네며 원장을 가져오게 하고, 경위를 살필 때까지 비용을 거두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관아에 온 금점 서기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주께서 한양의 객주에게 넘기셨습니다.”
“여기에 남긴 장부는 없느냐?”
“원장을 보아야 압니다.”
오횡묵은 두칠이 가져온 종이를 들어 보였다.
“광군에게 받을 값은 적어주면서, 그 값을 정한 장부는 없다는 말이냐?”
서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젖은 옷자락을 무릎 밑으로 끌어 넣고 고개만 숙였다.
뒤이어 조만식의 호소가 감영으로 올라갔다는 말이 들렸다. 군수가 금점의 일을 막아 약조한 금을 보내지 못했고, 그 때문에 광군의 품삯도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호방이 그 말을 전하며 덧붙였다.
“금점을 열어야 광군들도 먹고산다고 합니다.”
두칠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횡묵이 품삯을 받았느냐고 묻자 아직 못 받았다고 했다.
“곡식도 주지 않느냐?”
“그것은 줍니다.”
“외상으로?”
두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한 몫은 받지 못하고 먹을 것은 다시 빚으로 얻고 있었다. 조만식의 셈을 따지러 온 사내가 다음 날에는 조만식에게 곡식을 받아야 했다.
두칠은 한동안 눈치를 살피다가 낮게 물었다.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돌아가서 할 일이 있느냐?”
“돌을 골라놓아야 합니다. 늦으면 오늘 몫도 빠집니다.”
오횡묵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관아에 앉혀놓고 더 물을수록 두칠이 잃는 품은 늘어날 터였다.
“이 비용을 다시 요구하면 알려라.”
두칠은 대답하고 지팡이를 짚었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사내가 그의 팔을 받쳤고, 두 사람은 서로의 걸음에 맞추어 내려갔다. 오횡묵은 그들이 가져온 종이를 남겨두고 젊은 서리에게 새로 올라온 내역과 대조하게 했다.
서리는 두 장을 번갈아 보다가 맞지 않는 숫자 옆에 손톱을 댔다. 그러나 붓은 들지 않았다.
“왜 적지 않느냐?”
한참 뒤에야 대답이 나왔다.
“제 아비가 그 굴에서 일합니다.”
오횡묵의 손이 멎었다. 서리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누가 이 셈을 살폈는지 알게 되면…….”
오횡묵은 서리 앞의 종이를 당겨 숫자를 확인했다.
“네 이름은 적지 마라. 누가 물으면 내가 살폈다고 해라.”
서리가 먹을 찍자 붓끝에서 한 방울이 떨어졌다. 검은 얼룩이 종이의 결을 따라 번졌고, 그는 소매로 닦으려다 얼른 손을 거두었다.
오횡묵은 그 손을 보았다. 내일 아버지가 굴 앞에서 쫓겨나면 군수가 시켰다는 말만으로 그 집의 밥을 이어줄 수 있을까. 서리는 고개를 숙인 채 틀린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붓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 남았다.
밤이 되자 관아의 대문이 닫히고 부엌에서 그릇 씻는 소리가 들렸다. 오횡묵의 저녁상에는 식은 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얇게 굳은 기름을 숟가락으로 밀다가 내려놓고 두칠이 가져온 종이를 다시 폈다.
굴을 튼튼하게 했으니 몫을 내야 한다.
두칠의 다리를 으스러뜨린 굴이었다. 다시 사람이 깔리지 않도록 나무를 갈게 했더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 값을 나
누어 붙였다. 오횡묵은 일기장에 그 경위를 적고,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금은 산에서 나되 이익은 산 밖으로 나간다.
金出於山而利出於山外。
그는 일기장을 옆으로 밀고 새 종이에 「금점폐단시정절목(金店弊端是正節目)」이라 썼다.
갱목과 갱도 보강에 드는 비용은 물주가 부담하도록 했다.
작업 중 다친 사람의 치료비와 대신 쓴 인부의 품삯을 다친 자에게 물리지 못하게 하고, 품삯을 정산할 날짜를 밝히도록 했다. 광군 앞에서 받을 몫과 공제한 값을 읽어주되, 이미 바로잡은 빚을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붙이지 못한다는 말도 넣었다.
오횡묵은 마지막에 한 조항을 더 썼다.
관아에 사정을 알렸다는 이유로 일을 끊거나 곡식 지급을 막지 말 것.
명을 내린 뒤에는 광군들이 품삯을 받았는지, 끼니가 끊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그는 종이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마지막 장에 관인을 눌렀다.
붉은 인주가 종이의 결을 따라 번졌다. 인장을 들어놓고 각 장을 펼쳐 말린 뒤, 먼저 마른 종이부터 봉투에 넣었다. 마지막 장을 거둘 무렵에는 부엌의 그릇 소리도 멎어 있었다.

그 무렵 남면 문곡리 무은담(霧隱潭)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이 관아에 들어왔다.
장터를 다녀온 아전은 밤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라에서 금한 동학을 따른다는 소문을 전했다.
“직접 보았느냐?”
“들은 말입니다. 양반과 상민이 한자리에 앉아 죽을 나눠 먹는답니다.”
“누구를 해치거나 곡식을 빼앗았다는 말은 있느냐?”
“그런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럼 들은 말과 확인한 일을 나누어 적어라. 소문만으로 사람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 뒤에도 다친 광군이 죽을 얻어먹었다는 말, 화전민이 장작을 지고 갔다는 말이 관아에 닿았다. 무은담의 유시헌(柳時憲)을 접주(接主)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오횡묵은 곧장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모인 사람의 이름부터 캐묻기 시작하면 밥을 얻어먹으러 간 사람도 불려 나올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순행길에 무은담으로 갈라지는 길을 지났다.
오후부터 내린 진눈깨비가 옷깃에 녹아들었다. 산그늘의 길은 얼어 있었고, 짚신 밑창에 붙은 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끄러졌다. 수행원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앞서갔다.
골짜기의 안개 사이로 장작 타는 냄새가 났다. 젖은 나무가 불 속에서 터지고, 솥뚜껑을 내려놓는 소리 뒤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뜨거우니 조금씩 먹어라.”
아이가 무엇인가 대답했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으나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는 들렸다. 수행원이 걸음을 늦추고 물었다.
“들어가 살펴볼까요?”
오횡묵은 발을 멈췄다. 저 안에서 무슨 가르침을 펴는지 알지 못했고, 죽값을 받지 않는다는 말도 아직은 장터의 소문이었다.
안쪽에서 아이가 기침하자 여자가 다시 말했다.
“급히 먹지 마라. 더 있으니.”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가 잠시 뒤 숟가락 소리가 느리게 이어졌다. 오횡묵은 그쪽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자. 날이 저문다.”
녹았던 눈이 길 위에서 얼기 시작했다.
일행은 발밑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고, 한 굽이를 돌자 숟가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횡묵은 아이가 비운 그릇을 누군가 다시 채워주었을지 생각했다.
저 한 끼만은, 아이가 갚아야 할 숫자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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