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5편)
제14부 ― 얼어붙은 손
군수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물주(物主) 조만식(趙萬植)이 골짜기 위쪽에서 급히 내려왔다.
옅은 남빛 비단옷에는 돌가루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검은 가죽신의 앞코에는 윤이 났고, 가장자리에 튄 흙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광군(鑛軍)들이 발목까지 빠지며 오가는 길에서 그는 돌이 드러난 자리만 골라 밟았다. 돌과 돌 사이를 건널 때마다 도포 자락을 조금씩 들어 올렸다.
밤새 내린 봄비가 길을 깊게 패어놓았다.
광석을 지고 내려온 발자국에는 누런 물이 고였고, 비탈에서 흘러든 흙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 떡처럼 뭉쳤다. 움막 처마에는 젖은 짚신이 매달려 있었다. 마른 것을 바꿔 신으려 걸어둔 것이 아니라, 다음 날까지라도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신발들이었다.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다니 황공하옵니다.”
조만식은 깊이 허리를 숙이고 금점 한가운데의 큰 움막으로 안내했다.
광군들의 거처보다 지붕이 높았고, 통나무 벽의 틈은 흙으로 단단히 메워져 있었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고기 냄새가 함께 흘러나왔다.
상에는 흰 쌀밥과 꿩고기, 말린 송이버섯을 넣은 국과 맑은 술이 차려져 있었다.
밖에서는 보리와 겨를 섞은 죽이 끓었다.
솥을 젓던 여자가 주걱을 들어 밑에 붙은 것을 살피더니 물을 더 부었다. 끓던 표면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부풀었다.
솥 가장자리에 엉겨 붙은 겨를 긁어 넣자 갈색 덩어리들이 물속에서 풀렸다.
오횡묵이 상을 내려다보았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났느냐?”
“나리께 올리려고 마련했습니다.”
“누구의 양식을 덜어 마련했느냐?”
조만식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제가 대접하는 상입니다.”
문밖에서 아이 하나가 빈 사발을 핥고 있었다.
꿩고기 냄새가 흘러나가자 혀를 멈추고 문 안을 보았다. 어미가 팔을 잡아끌었으나 아이는 몸만 따라갔다.
움막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얼굴은 상 쪽을 향해 있었다.
“상을 치워라. 밖에서 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조만식의 입가가 굳었다.
“나리, 손님을 모시려고 차린 것입니다.”
“저 아이는 네 손님이 아니라서 먹지 못하느냐?”
상을 들려던 여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조만식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더니 턱을 움직였다.
“가져가거라.”
여자가 상을 들고 나가자 흰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문밖의 찬 공기에 흩어졌다.
사발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좁혀주었다. 누구도 먼저 손을 뻗지는 않았으나, 상을 내려놓는 곳으로 눈길이 모였다.
조만식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나리께서는 들어오신 뒤로 굶는 사람과 다친 사람만 보십니다.”
“그들을 보지 말라는 것이냐?”
“여기 오기 전에는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도 보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굴에 드는 광군만 백 명이 넘습니다. 돌을 나르고 빻는 사람, 모래를 씻는 사람에 식솔까지 수백입니다. 저녁마다 저 솥에 불이 붙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네가 그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냐?”
“저들이 금을 캐고, 저는 팔아서 곡식을 들여옵니다.”
조만식은 문밖으로 손을 뻗었다.
낮은 움막들이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통나무를 얹고 풀로 덮은 지붕에는 비를 막으려 헌 멍석을 눌러놓은 곳도 있었다. 처마 아래에는 젖은 버선과 아이들의 옷이 걸려 있었고, 문턱 안쪽에는 밤새 물을 받아낸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한 움막에서는 여자가 요 밑에 깔았던 솔가지를 끌어내고 있었다.
눅눅한 가지 사이에서 작은 벌레가 기어나왔다. 여자는 손으로 털어내고 볕이 들지 않는 처마 밑에 다시 펼쳤다.
“소작지에서 쫓겨나고, 환곡 빚에 씨앗을 내주고, 군포를 마련하느라 허리가 휜 사람들이 옵니다. 봄이 와도 심을 것이 없으니 오는 것입니다.”
그의 손끝이 개울가에서 멎었다.
“어미들이 아이를 데려옵니다. 모래라도 씻게 해달라고 합니다. 명하시면 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밥값은 빚으로 적으면서.”
“금이 나오지 않는 날에도 사람은 먹습니다. 곡식 장수는 돈을 받아야 곡식을 내주고, 기름도 쇠도 값을 치러야 들어옵니다.”
오횡묵은 개울가를 바라보았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물가에 웅크려 함지를 돌리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불어난 물이 돌을 넘을 때마다 발목을 훑었다. 젖은 바지는 정강이에 달라붙었고 맨발은 검붉었다. 물 밖에 벗어놓은 짚신 한 짝은 뒤축이 풀려 있었으며, 다른 한 짝에는 젖은 흙이 가득 차 있었다.
아이는 함지를 기울여 가벼운 모래를 흘려보냈다. 검은 모래 사이에서 누런 빛이 나타나자 손끝을 가져갔으나, 굳은 손가락이 떨려 놓쳤다. 아이는 물을 흘려보내던 손을 멈추고 모래를 다시 헤집었다.
“저 아이의 아비는 어디 있느냐?”
“지난해 장마에 굴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어미는 병들었고 동생이 둘입니다.”
“아비가 죽은 금점에서 아들이 죽을 구하는구나.”
“그 집에 가서 물어보십시오.”
조만식이 곧바로 받았다.
“여기가 살 만하냐고 물으시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없어져도 좋으냐고 물으시면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오횡묵은 아이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손을 물에서 꺼내게 하는 명은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집으로 가져갈 곡식은 어디에서 내어주어야 할까. 관아 창고 앞에서 빈 자루를 움켜쥐던 여자들과, 곡식을 내준 뒤에도 명부에 남아 있던 집들이 생각났다.
그는 조만식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굴의 버팀목이 썩어 있었다고 들었다.”
조만식의 턱이 굳었다.
“안쪽 갱목이 상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도 사람을 들여보냈느냐?”
“새로 받침을 세우고 돌을 걷어내려면 한 달은 굴을 비워야 합니다.”
“그 한 달이 아까워 사람을 죽였느냐?”
“먹을 것이 끊긴다는 말씀입니다!”
목소리가 움막 밖까지 울렸다.
자루를 나르던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조만식은 그쪽을 쏘아본 뒤 오횡묵에게 몸을 돌렸다.
“첫날은 남은 곡식으로 먹이겠지요. 열흘 뒤에는 무엇을 넣고 끓입니까? 나리께서 한 달 동안 곡식을 대주시면 닫겠습니다. 갱목도 갈겠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금은 어디에 쓰고?”
조만식의 손이 비단옷의 옆솔기를 움켜쥐었다.
“금을 캐는 데도 밑천이 듭니다.”
“광군의 밥값과 연장값은 적으면서, 네가 가져간 금은 어디에 적었느냐?”
조만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밖에서 기침이 길게 이어졌다. 움막 벽에 등을 기댄 사내가 입을 막고 몸을 접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등에서 지게를 벗겨주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밖에서는 여자가 꿩고기를 잘게 찢어 사발에 나누고 있었다.
한 아이는 받은 것을 먹지 않고 헝겊 조각에 쌌다. 여자가 고기 한 점을 더 얹어주자 아이는 벌어진 천 가장자리를 서둘러 모았다.
오횡묵은 조만식에게 눈을 돌렸다.
“장부를 가져오너라. 금을 얼마나 캐고 곡식을 얼마나 들였는지 보겠다.”
조만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전에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금점이 온전히 제 것인 줄 아십니까?”
“네가 물주가 아니냐?”
“이름으로는 그렇습니다. 연장과 갱목을 들이고, 금이 나오기 전부터 식량을 마련해야 합니다. 석 달을 파고도 빈 돌만 쌓일 때가 있습니다. 제 돈만으로는 못 합니다.”
“누구의 돈을 받았느냐?”
조만식은 문 가까이 서 있던 사람을 손짓으로 물렸다.
“한성의 대감댁에서 내려온 돈입니다.”
“누구냐?”
“집사가 객주(客主)를 통해 보냅니다. 저는 객주와만 거래합니다. 돈의 주인은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감댁 돈이라는 말도 객주가 했느냐?”
“그렇습니다. 약조한 날을 넘기면 제 집 한 채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금이 나오면 정해진 몫을 올려보냅니다. 이자는 따로 치르고, 금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도 빚에 얹힙니다. 집과 전답까지 저당 잡혀 있습니다.”
광석 자루를 멘 사내가 문밖을 지나갔다.
해진 틈에서 돌가루가 흘러 젖은 등에 붙었다. 사내는 어깨를 고쳐 받치려다 벽에 기대었고, 자루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에는 삼줄에 쓸린 자국이 붉었다.
“그 빚에 광군의 품삯은 손대지 않았느냐?”
조만식의 턱이 굳었다.
“곡식을 사들인 돈에도 이자가 붙습니다. 먹은 양만 적어서는 곡식값을 다 받지 못합니다.”
“밥값에 네 이자까지 넣었구나.”
“돈을 빌리지 않았으면 그 밥도 없었습니다.”
조만식은 옷깃을 벌렸다. 목덜미에 땀이 배어 있었다.
“관아에 바칠 몫에 감영 사람 접대, 금을 보내는 길에서 떼어주는 돈까지 있습니다. 객주와 집사의 몫을 덜고서야 제 것이 남습니다.”
“그 접대비도 광군에게 물렸느냐?”
조만식은 입술을 눌렀다.
오횡묵은 낮에 만난 과부를 떠올렸다.
밥값과 연장값을 제하고 나니 남편의 품삯은 없었다. 몸을 건져오지도 못한 아낙에게 갚으라는 액수만 전해졌다. 남편이 먹은 밥에 한성의 이자가 붙고, 그가 든 곡괭이에 접대비가 얹혔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부에 따로 적었느냐?”
“그렇게 낱낱이 나눌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받을 때는 한 푼까지 헤아리면서 쓴 데는 나눌 수 없다는 말이냐?”
“저도 갚을 날이 되면 잠을 못 잡니다. 굴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한성에서 이자를 깎아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밥값은 계속 받느냐?”
“남은 빚은 받아야 합니다.”
그 말 뒤로 아이의 기침이 들렸다.
문밖에서는 노인이 찢어진 자루를 꿰매고 있었다. 죽을 한 모금 마신 뒤 남은 것을 다른 그릇에 옮겨 덮고, 다시 바늘을 집었다. 실구멍을 찾지 못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손가락으로 실 끝을 적셔 비비는데도 실은 자꾸 옆으로 휘었다.
오횡묵은 노인의 손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받은 돈과 약조한 이자, 한성으로 보낸 금을 따로 적어 가져오너라. 광군의 품삯과 밥값도 사람마다 대조하겠다. 죽은 자의 빚은 누구에게 얼마나 받았는지 함께 내놓아라.”
조만식은 문밖의 사람을 부르려다가 오횡묵을 다시 보았다.
“저들을 이곳으로 몰아낸 것은 제가 아닙니다. 땅과 씨앗을 잃고 온 사람들에게 일을 준 것입니다.”
“달리 갈 곳 없는 사람에게 곡괭이를 쥐여주고 은혜라 부르는 것이냐?”
“그 곡괭이마저 없으면 맨손으로 굶습니다.”
개울가의 아이는 검은 모래에서 골라낸 금가루를 젖은 손끝으로 집어 작은 그릇에 옮겼다. 좁쌀보다 작은 빛이었다. 손가락을 몇 번 비비자 갈라진 마디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오횡묵이 입을 열려는 순간 아이가 재채기를 했다.
몸이 크게 흔들리며 함지가 기울었고, 아직 씻지 못한 모래가 물살에 쏟아졌다.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두 손을 물에 넣었다. 바닥을 더듬으며 흘러간 모래를 움켜쥐었으나 손가락 사이로 다시 빠져나갔다.
감독자가 성큼 다가와 막대기로 등을 후려쳤다.
“눈을 어디에 두고 일하느냐!”
아이는 앞으로 고꾸라져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입술을 깨문 채 일어나 다시 모래를 퍼 담았으나 울지는 않았다. 젖은 옷이 등에 달라붙을 때마다 어깨가 움찔했다.
“막대기를 내려라.”
감독자가 손을 내렸다. 그런데도 아이는 함지를 물속에서 돌렸다. 작은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흙탕물이 가장자리로 흘러나왔다.
조만식이 낮게 말했다.
“보셨습니까. 재촉하지 않아도 저 아이는 손을 놓지 못합니다.”
오횡묵은 대답하지 않고 움막을 나왔다.
물가로 내려가자 골짜기의 찬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비는 멎었으나 바위 틈과 나뭇가지에서는 여전히 물이 떨어졌다. 아이는 군수가 다가와도 일어나지 못한 채 함지의 가장자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오횡묵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내보아라.”
아이는 조만식과 감독자를 먼저 살폈다. 오횡묵은 함지가 기울지 않도록 두 손으로 받쳤다.
“내가 잡고 있으마.”
그제야 아이가 한 손씩 물에서 꺼냈다. 손등은 붉게 부었고 마디마다 살이 벌어져 있었다. 손톱 밑에는 검은 모래가 박혔으며 손가락은 함지를 쥐던 모양으로 굽어 있었다.
오횡묵은 그 손을 제 손바닥에 얹었다.
굳은 손가락을 조금 펴자 아이가 숨을 삼켰다. 그는 더 펴지 않고 차가운 손끝을 감쌌다. 작은 손에서 물이 흘러 그의 소매를 적셨다.
“몇 살이냐?”
“열한 살이요.”
“언제부터 일했느냐?”
“눈 오기 전부터요.”
“하루 품삯은 얼마냐?”
아이가 조만식을 바라보자 오횡묵은 몸을 기울여 눈을 맞췄다.
“나를 보고 말하거라.”
“금이 나오면 받습니다.”
“얼마를 받느냐?”
아이의 입술이 달싹이다가 멎었다. 한동안 함지 바닥만 내려다보던 아이가 겨우 대답했다.
“금값에서 빚을 뺍니다.”
“무슨 빚이냐?”
“어미 약값하고…… 지난달 좁쌀하고, 함지값하고…….”
아이는 더 생각하려다 고개를 숙였다.
제 손으로 빌린 함지는 알았으나 그 값은 몰랐다. 오늘 찾은 금으로 무엇을 얼마나 갚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금을 못 찾은 날에는?”
“죽을 먹습니다.”
“그 죽값도 빚이 되느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횡묵은 뒤에 선 조만식에게 물었다.
“아비가 죽기 전까지 일한 품삯은 어떻게 했느냐?”
“먹은 식량과 연장값을 제했습니다.”
“그러고도 갚을 것이 남았느냐?”
“그렇습니다.”
오횡묵은 아이의 손을 감싼 채 고개를 들었다.
“그것까지 이 아이에게 받고 있느냐?”
“집에 남은 사람이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울을 따라 내려온 물이 오횡묵의 신발에 닿았다. 그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아비의 몸은 굴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나 그가 먹은 죽과 쓴 곡괭이의 값은 아들의 품삯에서 빠지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칠복이요.”
“네 이름은 쓸 줄 아느냐?”
칠복이 고개를 저었다. 오횡묵이 손을 놓자 곧 함지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자 손목으로 가장자리를 받쳤다.
“잠시 쉬어도 된다.”
“이것만 씻고요.”
바닥에는 아직 검은 모래가 남아 있었다.
오횡묵은 수행하던 아전을 불렀다.
“이 아이 집에 오늘 먹을 곡식을 보내라. 어미가 얼마나 아픈지도 살피고, 아이의 젖은 옷부터 갈아입혀라.”
칠복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오횡묵과 아전을 번갈아 보면서도 함지를 받친 손목은 거두지 않았다.
오횡묵은 함지를 물 밖의 평평한 돌에 올려놓았다.
“네가 씻던 것이다.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
그 말을 듣고서야 칠복의 손목이 함지에서 떨어졌다. 아이는 두 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몸을 웅크렸다. 쉬고 있던 어깨가 뒤늦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전이 마른 옷을 구하러 움직이자 칠복은 물가의 짚신을 보았다. 한 짝을 집어 엎어놓으려 했으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곁의 광군이 대신 흙물을 털고 두 짝을 나란히 놓아주었다.
오횡묵은 일어나 조만식을 바라보았다.
“네가 저 집의 가난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조만식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렸으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 다시 입술을 눌렀다.
“그러나 죽은 아비의 빚을 아들에게 물린 것은 네가 한 일이다. 감독자에게 막대기를 쥐여준 것도 네 금점이고.”
“일을 가르치려다가…….”
“등을 때려야 모래 씻는 법을 배우느냐?”
감독자가 막대기를 등 뒤로 감췄다.
한성의 돈은 객주를 거쳐 내려왔고 이자는 금점의 장부에 얹혔다. 조만식은 비용이라고 했으며 감독자는 일을 가르쳤다고 했다. 칠복의 젖은 등에는 막대기가 닿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막대기를 이리 내놓아라.”
감독자가 머뭇거리자 사령이 다가가 받아냈다. 오횡묵은 조만식에게 말했다.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 장부로 밝히겠다. 그동안 칠복의 품삯에서 아비의 빚을 빼지 마라.”
그는 개울을 등지고 돌아섰다.
“갱도를 보겠다.”
조만식이 급히 앞을 막았다.
“안은 좁고 위험합니다. 물이 새고 갱목이 약해진 곳도 있습니다. 나리께서 들어가실 곳이 아닙니다.”
오횡묵은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 광군은 지금 들어가 있느냐?”
조만식이 대답하지 못했다.
골짜기 위쪽의 갱구는 젖은 바위 아래 검게 벌어져 있었다. 입구에는 광석을 실어 나온 지게들이 기대어 있었고, 부러진 정과 닳은 곡괭이가 한쪽에 모여 있었다. 기름때 묻은 등잔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입구의 갱목이 잠깐 드러났다. 나무 밑동은 물을 오래 먹어 검게 변해 있었다.
안에서 새어 나온 물이 광군들의 발자국을 따라 흘렀다.
어둠 속에서는 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울리고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조만식이 두 팔을 조금 벌렸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오횡묵은 그의 깨끗한 손을 내려다보다가 갱구 쪽으로 눈을 들었다.
“길을 안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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