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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아리랑 ― 13 봄눈 속 순행길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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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동학항쟁사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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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부  ―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빚

 

며칠 뒤, 관아를 나선 일행은 조양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봄이 들었으나 정선의 눈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밤새 젖은 눈이 내려 소나무 가지를 휘어 놓았다. 

물이 오르던 버들가지에는 흰 덩이가 붙어 있다가 볕이 닿으면 가지째 떨리며 떨어졌다.

양지 비탈은 검은 흙을 드러냈지만 골짜기에는 눈이 깊었다. 

먼지와 솔잎을 뒤집어쓴 눈을 밟으면 거무스름한 겉이 꺼지고 속의 흰빛이 드러났다. 

밤새 얼었던 길은 한낮이 되기도 전에 풀렸다. 말발굽이 살얼음을 깨뜨릴 때마다 흙탕물이 튀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짚신에 붙은 진흙을 돌에 문질렀다. 몇 걸음 못 가 발이 다시 무거워졌다.

 

조양강에는 눈 녹은 물이 불어 있었다. 

산골짜기마다 흘러든 물이 강 가장자리의 얼음을 밑에서 들어 올렸다. 

강변 밭에서는 젖은 흙과 삭은 풀뿌리 냄새가 올라왔다. 둔덕에는 쑥잎이 손톱만큼 벌어졌으나 바로 아래 그늘에는 묵은 눈이 남아 있었다.

오횡묵은 옷깃을 여몄다. 

볕을 받은 등은 따뜻했지만 강을 건너온 바람은 옷섶 깊숙이 찬 기운을 밀어 넣었다. 

산그늘에 들 때마다 고삐를 쥔 손가락이 굳었다. 말의 젖은 갈기가 바람에 들렸다가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일행은 고삐를 짧게 잡고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마을 어귀마다 사람들이 길가에 엎드렸다.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 관아와 주민 사이를 오가던 존위(尊位)가 앞줄을 오갔다. 

노인의 옷자락을 당겨 무릎을 덮어 주고, 얼굴이 부은 아이의 코를 닦았다. 아이는 소매로 코 밑을 다시 문질렀다. 

짓무른 살에 피가 배었다.

무너진 담장 앞에는 멍석이 세워져 있었다. 

뒤쪽 흙벽에는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검었다. 오횡묵이 말의 걸음을 늦추자 존위가 노인에게 고개를 조금 들라고 속삭였다.

길에 나온 사람보다 닫힌 문이 많았다. 

어느 집에서는 문틈으로 내다보던 아이가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작은 손가락이 틈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골목 끝에서 닭이 퍼덕였다.

한 여자가 닭의 다리를 묶고 있었다. 

곁에는 작은 곡식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일행을 본 여자가 끈을 놓고 엎드리자 닭이 한쪽 날개로 젖은 흙을 쳤다.

“그것은 어디에 쓰려느냐?”

존위가 대신 대답했다.

“나리께서 드실 것을 마련하다가…….”

“음식을 거두지 말라는 말을 못 들었느냐?”

“들었습니다만, 먼 길을 오시는데 빈 상을 올릴 수는 없어서…….”

자루는 아랫부분만 불룩했다. 

여자의 등 뒤에 선 아이가 자루와 닭을 번갈아 보았다. 맨발의 발가락이 진흙 속에서 오므라들었다.

“닭을 풀어 주어라. 곡식도 집 안에 들여놓고.”

존위가 여자를 일으켰다. 

여자는 닭을 안고도 곡식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오횡묵이 고삐를 돌린 뒤에야 아이가 자루를 끌어안았다. 자루 밑이 땅에 끌리자 두 팔에 힘을 주어 조금 더 들어 올렸다.

 

골목 안쪽에는 한쪽 처마가 내려앉은 초가가 있었다.

패인 이엉 사이로 서까래가 드러났고 젖은 짚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문짝 대신 걸어 둔 멍석은 아래가 해져 바람이 불 때마다 문턱을 쓸었다. 금 간 항아리 곁에 사내의 낡은 짚신 한 짝이 뒤집혀 있었다. 그 안에는 눈 녹은 물이 고여 있었다.

안에서 아이 울음이 새어 나왔다. 가늘게 이어지다 멎더니 다시 났다. 이번에는 더 짧았다.

“누가 사느냐?”

“과부와 아이 셋이 삽니다.”

“남편은?”

“지난가을 금점에서 굴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물이 터져 들어와 시신도 건지지 못했답니다.”

오횡묵은 수행하던 이에게 고삐를 건넸다.

“품삯은 받았느냐?”

“밥값과 연장값을 제하니 받을 것이 없다고 했답니다. 남은 빚을 갚으라며 물주의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그는 멍석 앞에 섰다.

“주인 있는가.”

안에서 누군가 일어나려다 다시 몸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있으시오.”

멍석을 걷자 눅눅한 흙냄새에 식은 땀과 젖은 기저귀 냄새가 섞여 나왔다. 

방바닥 가장자리는 물을 먹어 검었다. 아낙이 팔꿈치를 짚었으나 어깨만 조금 들렸을 뿐이었다.

벌어진 저고리 앞섶에 젖먹이가 붙어 있었다. 몇 번 빨다가 젖을 놓친 아이가 입술로 다시 더듬었다. 아낙은 앞섶을 여미려다 손을 멈췄다. 아이의 뒤통수를 받친 손목이 가늘었다.

 

부엌에서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

여섯 살 남짓한 계집아이가 부뚜막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솥바닥에 붙은 보릿겨를 숟가락으로 밀어 모았다. 숟가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검은 솥바닥이 드러났다.

낯선 어른들이 들어왔으나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곁의 어린 동생이 사발로 손을 뻗자 제 무릎 가까이 당겼다.

“조금씩 먹어.”

숟가락 끝에 묻은 것을 동생의 입에 넣어 주었다. 동생은 숟가락이 빠져나간 뒤에도 입술을 오므렸다. 맏이는 삼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솥을 긁었다. 가장자리에 남은 것까지 모아 내밀었다. 제 입에는 한 번도 가져가지 않았다.

오횡묵은 문턱에 멈춰 섰다.

“관아에 진휼(賑恤)을 청하지 않았느냐?”

아낙이 젖먹이를 고쳐 안았다.

“지난가을에 갔습니다. 큰애 손을 잡고 둘째는 업고…… 이것은 배 속에 있었습니다.”

“곡식을 받지 못했느냐?”

“호적에 서방이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장정이 있는 집은 뒤에 받으라더군요.”

“금점에서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말했습니다. 몸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의 등을 쓸던 손이 멎었다.

“사흘을 굴 앞에 있었습니다. 밥을 싸 갔다가 못 주고 돌아왔습니다. 굴을 막는다기에 한 번만 더 불러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큰애가 아비 짚신까지 가져왔는데…… 나오면 신어야 한다고.”

부엌의 숟가락 소리가 멎었다.

“굴 앞에 두고 왔는데, 저것이 한 짝을 도로 가져왔습니다. 비 맞는다고.”

맏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숟가락을 쥔 손으로 사발 가장자리를 만지고 있었다.

“시신이 없으니 죽었다고 적을 수 없답니다. 품삯도 못 받고 몸도 못 데려왔는데 빚은 갚으라 합니다.”

아낙이 젖먹이를 끌어안았다.

“저는 곡식 받으려고 서방을 죽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리.”

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문턱 밖의 웅덩이를 두드렸다.

 

오횡묵은 아낙의 등 너머를 보았다. 

벽에 걸린 사내의 저고리는 한쪽 어깨가 해져 있었다. 다시 입을 사람이 없는데도 기운 자리가 남아 있었다.

“관아의 곡식을 내어주어라.”

아전이 고개를 숙였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나리, 이런 집이 한둘이 아닙니다. 소문이 나면 수백 명이 관아 앞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오라 하라.”

“진휼미가 모자랍니다. 감영에서 정한 수량을 넘겨 내주면 나리께서 문책을 받으십니다. 다른 몫에 손을 대면 저희도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횡묵이 부엌으로 눈을 돌렸다. 

맏이는 빈 사발을 기울여 바닥에 남은 것을 숟가락 끝으로 모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곡식 한 말을 사서 보내게 했다.

“그것도 나중에 갚아야 합니까?”

아낙이 물었다.

“갚지 않아도 되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젖먹이가 다시 앞섶을 더듬었다.

 

그날 저녁, 일행이 묵을 집에는 흰 쌀밥과 꿩국, 말린 생선과 나물이 차려졌다.

순행을 대접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음식이었다. 밥그릇은 저마다 달랐다. 이가 빠진 사발도 있었고 안쪽 유약이 닳은 그릇도 있었다. 상다리가 흔들리자 주인 여자가 접은 헝겊을 밑에 괴었다.

“변변한 것이 없습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갈라진 손등에 국물이 튄 자국이 붉었다.

“음식을 마련하지 말라 일렀는데.”

여자가 문밖을 돌아보았다. 빈 광주리를 든 노인이 처마 밑에 서 있었다.

“먼 길 오신 분을 그냥 재울 수야 있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강바람 맞으며 내려오셨으니 뜨거운 국이라도 드셔야지요.”

 

여자는 밥상 곁에 마른 버선 한 켤레를 내려놓았다.

“버선도 젖으셨을 것입니다. 새것은 아니어도 빨아 말린 것이니 갈아 신으십시오.”

뒤축을 기운 버선이었다. 한쪽은 다른 쪽보다 조금 누렇게 바랬다. 오횡묵은 그것을 바라보다 문밖으로 눈을 돌렸다. 노인은 젖은 발을 번갈아 들어 마른 땅에 내려놓았다.

“그대들은 저녁을 먹었소?”

“저희야 여기 사는 사람들이니 언제든 먹지요.”

노인이 웃었다. 여자는 국그릇을 오횡묵 앞으로 당겼다.

“어서 드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국에서 오른 김이 방문 틈의 바람에 기울었다.

오횡묵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 발이 젖은 것까지 살펴주었구려.”

목이 메어 잠깐 말을 멈췄다.

“고맙소. 오래 잊지 않겠소.”

여자가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웃었다.

“따뜻하게 주무시면 됩니다.”

그는 수저를 들었다.

 

흰 밥알 위로 낮에 솥을 긁던 아이의 손이 떠올랐다. 

숟가락 끝의 보릿겨를 동생에게 먹이던 손이었다. 눈앞의 밥그릇은 가장자리까지 차 있었다.

수저가 다시 내려앉았다.

“상을 물려라.”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

그는 밥상 위에 놓인 손을 거두었다.

“이만한 것을 마련하느라 그대들 집에 무엇이 남았을지 생각하니…….”

“그런 걱정 마시고 드십시오.”

여자는 국그릇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그 말이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오횡묵은 거듭 고맙다고 하고 상을 물렸다.

그러나 음식은 그것을 마련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전과 하인들이 밥과 국을 나누어 먹었다. 밤이 깊어 마을로 돌아간 것은 빈 그릇들이었다.

그는 뒤늦게 그 말을 들었다.

방문을 열려다 손을 멈췄다. 문밖에서 그릇을 포개는 소리가 났다.

“잘 드셨습니까?”

누군가 잘 먹었다고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멀어졌다. 젖은 마당을 건너는 발소리가 뒤를 따랐다.

 

오횡묵은 곁에 놓인 버선을 집었다. 뒤축의 기운 자리를 엄지로 쓸자 촘촘한 바늘땀이 손끝에 걸렸다. 음식을 돌려주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상을 물린 뒤 그 음식이 어디로 가는지도 살피지 않았다.

방바닥은 따뜻했다. 문밖에서는 처마의 물이 다시 얼고 있었다.

그는 버선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관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아이를 업은 여자 셋이 군수를 기다린다고 했다. 곡식을 받은 집의 소문이 밤사이 이웃 마을까지 건너간 것이었다.

오횡묵은 순행을 멈추고 관아로 돌아갔다.

여자들은 빈 자루를 들고 마당에 서 있었다. 밤길에 얼었던 치맛자락이 녹아 발목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창고 문을 열게 했다.

가마니 몇 개는 밑이 젖어 있었다. 검게 엉긴 곡식을 부수자 쉰 냄새가 올라왔다. 상한 것을 골라내니 내줄 곡식은 장부에 적힌 양보다 적었다.

호방이 감영에 먼저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상한 것은 따로 헤아리고, 성한 곡식부터 내어주어라.”

“어느 집에 먼저 내주시겠습니까?”

 

오횡묵은 여자들에게 남은 양식을 물었다. 

한 집은 어제부터 물만 끓여 먹였고, 다른 집은 봄에 심을 씨앗을 꺼내 놓았다고 했다.

셋째 여자의 아이는 울지 않았다. 어미가 앞으로 돌려 안자 눈만 뜬 채 고개가 기울었다.

“저 아이가 있는 집부터 내주어라. 나머지 두 집에도 오늘 안으로 보내고. 관아의 말먹이와 접대 곡식을 줄여라.”

“그 몫을 덜면 감영에 올릴 수량이…….”

“줄인 대로 적어라.”

오횡묵은 붓을 받아 그 곁에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썼다.

여자들이 나간 뒤, 마지막 여자가 돌아와 문턱에 떨어진 낟알을 주웠다. 젖은 흙에 붙은 곡식을 손톱으로 떼어 자루에 넣었다. 다 주운 뒤에야 허리를 폈다.

오횡묵은 사람을 보내 순행길의 마을마다 양식이 끊긴 집과 앓는 아이를 살피게 했다. 그런 뒤 다시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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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 골짜기에 들어서자 볕이 산등성이에만 남았다. 

길은 응달을 따라 이어졌다. 바위 밑의 눈은 솔잎과 흙을 뒤집어쓴 채 굳어 있었고 그 아래로 녹은 물이 흘렀다. 골짜기를 거슬러 온 바람에 말이 귀를 눕혔다.

그 물소리 사이로 쇠망치 소리가 들렸다.

산모퉁이를 돌자 여러 망치가 번갈아 울렸다. 한쪽에서 멎으면 다른 쪽에서 이어졌다. 쇳소리는 바위에 부딪혀 돌아왔다.

금점이 가까워질수록 숲은 성겼다.

굴을 받칠 나무와 땔감으로 베어낸 밑동이 비탈마다 드러났다. 

잘린 면은 비와 눈을 맞아 검어졌고 뿌리 둘레의 흙은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 파낸 흙과 깨진 돌 사이로 흐른 물이 개울에 들었다. 상류에서 맑던 물은 금점 아래에서 희뿌옇게 변했다.


골짜기 어귀에는 풀과 나무껍질로 지붕을 덮은 움막들이 붙어 있었다. 

통나무 사이의 진흙은 갈라졌고 틈에 쑤셔 넣은 헝겊이 바람에 흔들렸다. 젖은 땔감의 연기가 문틈으로 되밀려 들어갔다. 안에서 기침이 났다.

움막 앞에서는 아낙들이 광석(鑛石)을 빻고 있었다.

한 아낙은 젖먹이를 업고 쇠망치를 들었다. 아이가 울자 무릎을 굽혔다 펴며 달랬다. 돌이 깨질 때마다 가루가 피어올라 머리카락과 아이의 얼굴에 붙었다.

아이가 기침하자 그녀는 망치를 무릎에 받치고 손을 뒤로 돌렸다. 입가를 훔쳤으나 손에도 돌가루가 묻어 있었다. 손바닥을 치마에 문지른 뒤 한 번 더 닦았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낙은 앞에 쌓인 돌을 보고 다시 망치를 들었다. 

망치가 내려갈 때마다 등에 업힌 아이의 머리가 흔들렸다.

개울가에서는 아이들이 검은 모래를 씻고 있었다.

작은 손이 바위틈에 잘 들어가고 가는 금가루를 고르기에도 낫다며 불려온 아이들이었다. 손등은 붉게 부어 있었다. 갈라진 살에서 피가 배면 흐르는 물이 곧 씻어 갔다.

한 아이가 손을 꺼내 겨드랑이에 끼웠다. 젖은 소매를 턱 밑으로 끌어당기고 어깨를 움츠렸다.

개울 위쪽에서 사내가 소리쳤다.

“손이 쉬면 모래는 누가 씻느냐.”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손을 담갔다. 찬물이 손목을 넘자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젖은 모래에서 반짝이는 것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얼굴을 가까이 숙였다. 돌가루인 것을 알고도 손끝으로 한참 문질렀다.

봄볕은 등에 닿았으나 물에서 꺼낸 손가락은 굽은 채였다. 한 아이가 다른 손으로 그것을 펴다가 몸을 움찔했다.

갱도에서는 찬물이 흘러나왔다.

입구 위의 마른 풀에는 볕이 들었으나 굴 안은 몇 걸음만 들어가도 보이지 않았다. 받침목 아래 등잔불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불빛을 스치고 사라졌다.

굴 밖으로 나온 사내가 눈을 가리고 서 있었다. 돌가루가 내려앉은 머리와 눈썹은 희끗했고 땀이 흐른 뺨에는 검은 줄이 남았다.

기침이 터지자 허리가 꺾였다. 돌을 짚은 손이 떨렸다. 한동안 숨을 들이쉬지 못하던 사내가 가래를 뱉었다. 붉은 것이 섞여 있었다. 그는 발로 흙을 끌어 덮었다.

그 곁에서는 손가락 두 개를 잃은 사내가 광석을 골랐다. 큰 돌은 손바닥으로 굴리고 작은 것은 엄지와 남은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돌 하나를 놓치자 한참 내려다보다 무릎을 꿇고 주웠다.

다쳐서 굴에 들어가지 못해도 금점을 떠날 수 없었다. 치료에 든 돈과 쉬는 동안 먹은 죽이 빚으로 적혔다. 상처가 아무는 동안에도 갚을 돈은 늘었다.

 

오횡묵은 개울 건너 움막을 바라보았다.

한 아낙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피해 잠든 아이를 옮겼다. 젖은 자리에 마른 짚을 펴고 손등을 대 보았다. 그러고는 짚을 조금 더 가져다 깔았다.

움막 뒤에는 어린 풀이 돋았으나 처마 밑에서 움직이는 아낙의 입에서는 아직 입김이 났다.

오횡묵은 그곳의 장부를 가져오게 했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손때와 기름이 배어 있었다. 먹은 밥과 빌린 곡괭이, 등잔 기름과 잠자리 삯이 줄마다 적혔다. 무너진 굴에서 나오지 못한 사내의 이름도 남아 있었다.

그 이름 아래로 아낙이 빌린 곡식이 더해졌다. 날짜는 사내가 죽은 뒤에도 이어졌다.

오횡묵의 손가락이 한 줄에서 멎었다.

산 아래 초가에서 보았던 짚신 한 짝이 떠올랐다. 

비를 맞는다고 아이가 도로 가져온 짚신이었다. 

아비가 돌아오면 신어야 한다던 아이는 이제 빈 솥을 긁고 있었다.

골짜기에서는 돌 깨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위로 덕대의 목소리가 울렸다.

“손을 멈추지 마라. 해 지기 전에 이 돌을 다 빻아야 한다.”

아낙의 망치가 내려갔다. 개울가의 아이가 언 손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기침하던 사내는 입가를 닦은 소매를 안으로 접고 곡괭이를 들었다. 등잔불에 등이 잠깐 드러났다가 굴속으로 사라졌다.

오횡묵은 장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죽은 사내의 이름 아래로, 아이들이 먹은 죽값이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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