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3편)
제12편 ―열세 살 아들은 장부에서 열여덟
오횡묵이 정선에 온 것은 봄이었다.
산 아래 밭에서는 흙이 풀렸으나, 볕이 짧게 머무는 골짜기에는 겨울눈이 남아 있었다.
낮이면 눈 녹은 물이 비탈을 내려와 길을 적셨고, 밤이면 진흙에 찍힌 발자국까지 얼어붙었다.
아침에 관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담 밑의 마른 땅을 골라 걸었다.
헤진 짚신으로 빙판을 디딘 사람이 발을 빼다가 신 한 짝을 벗어 놓기도 했다.
조양강에도 봄은 더디게 왔다.
햇볕이 닿은 가장자리부터 얼음이 갈라졌다. 틈으로 검은 물이 솟았다가 떠내려온 얼음에 가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는 날마다 커졌으나, 그늘진 강둑의 풀은 아침마다 흰 서리를 뒤집어썼다. 사람들은 솜옷을 벗지 못했다. 겨우내 얇아진 옷깃을 여미며, 아직 돋지 않은 풀을 찾아 산비탈을 올랐다.
부임한 오횡묵은 각 면의 호구부터 살피게 했다.
호구단자(戶口單子)와 호적대장(戶籍大帳), 그사이 태어나고 죽고 떠난 사람을 알리는 문서가 관아로 모였다.
장부를 싼 보자기에는 진흙물이 배어 있었다. 아전들이 마루에 종이를 펼치자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 쥐가 갉은 모서리는 손끝에서 부스러졌고, 지운 이름 위에 덧칠한 먹은 뒷장까지 검게 번져 있었다.
이름 옆에는 나이와 사는 마을, 한집에 딸린 식구가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는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았다.
오횡묵은 이름을 짚어 내려가다가 손을 멈추었다.
면에서 올라온 보고에는 죽었다고 적힌 사내가 군적(軍籍)에는 살아 있었다.
“언제 죽었느냐?”
아전이 낡은 종이를 뒤졌다.
“세 해 전 겨울입니다.”
사내의 이름 곁에는 그 뒤로도 군포를 거둔 표시가 이어져 있었다.
“죽은 줄 알고도 거두었느냐?”
아전은 종이 모서리만 만졌다.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거두는 일을 백골징포(白骨徵布)라 했다.
오횡묵도 오래전부터 아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 아래 적힌 것은 납부한 해와 베의 수량뿐이었다. 남편을 묻은 집에서 누가 그 베를 마련했는지는 없었다.
“그 집에는 누가 남았느냐?”
“아내와 아이 둘입니다.”
“독촉을 멈추어라.”
그는 사내의 이름 옆에 작은 점을 찍었다.

이튿날 그 집을 찾아갔다.
며칠 전 내린 봄눈이 낮은 담 밑에 남아 있었다.
눈 가장자리에는 흙탕물이 고였고, 밤새 언 얇은 얼음 밑으로 마른 풀잎이 눌려 있었다.
짚신에 붙은 진흙이 걸음을 뗄 때마다 발을 잡아당겼다. 골짜기 바람이 불어오자 젖은 버선 속에서 발가락이 저렸다.
처마의 물방울이 마당을 두드렸다. 떨어지는 자리마다 작은 흙구멍이 패여 있었다.
여자는 부엌 앞에서 조를 찧고 있었다.
공이가 내려앉을 때마다 절구 바닥을 치는 마른 소리가 났다. 바가지에는 낟알보다 껍질이 많았다. 여자는 관아에서 온 일행을 보고 공이를 세웠다가, 절구 가장자리에 붙은 가루부터 손가락으로 긁어 모았다. 갈라진 손등의 틈에는 검은 때가 박혀 있었다.
방문이 조금 열렸다.
큰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문턱에 나왔다. 동생은 짚신을 신었으나 앞코가 헤져 발가락이 보였다. 형은 맨발이었다. 동생의 신에서 풀린 끈을 보고 몸을 숙이자, 발뒤꿈치에 묻은 마른 흙이 떨어졌다.
“네 신은 어디 있느냐?”
아이는 동생의 끈을 당겨 맸다.
“동생이 신었습니다.”
오횡묵은 더 묻지 않았다.
“군포를 내라고 언제 다녀갔느냐?”
여자가 공이를 절구 옆에 내려놓았다.
“그제 왔습니다. 다음 장날까지 마련하라 했습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여자는 집 뒤 산비탈을 가리켰다. 잔설 사이로 낮은 봉분 하나가 보였다.
“올 때마다 저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가 오면 흙이 씻겨 내려와 아이들과 다시 덮는 무덤이라고 했다.
아전은 산을 보지 않았다. 장부를 펴고 사내의 이름만 읽었다.
베를 마련하지 못한 해에는 곡식을 냈다.
곡식이 모자라 닭을 내준 해도 있었다. 올해는 닭 우는 소리가 끊긴 지 오래였다.
“봄에 뿌릴 조가 조금 남았습니다.”
여자가 절구 옆의 자루를 보았다. 입구를 묶은 끈 아래로 천이 움푹 꺼져 있었다.
“그것까지 내면 가을에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부엌에서는 젖은 솔가지가 타고 있었다. 불꽃보다 연기가 먼저 올라와 문설주를 감쌌다.
솥 가장자리에는 무청 줄기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
전날 저녁에도 여자는 그 솥에 물을 부었다. 아이들은 끓는 소리를 듣고 부엌 문턱에 앉았다. 말린 무청 한 줌을 넣자 큰아이는 제 그릇을 내밀다가 거두었다. 동생이 먼저 받기를 기다렸다. 둘이 무청을 건져 먹은 뒤 여자는 남은 국물을 마셨다.
오횡묵이 마당에 선 아전을 불렀다.
아전은 군적을 펴서 사내의 이름을 짚었다.
“전임 때부터 이리 거두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아전의 손가락이 이름에서 떨어졌다.
“이 집에는 다시 독촉하지 마라.”
오횡묵은 돈을 꺼내 여자에게 내밀었다.
“우선 먹을 것을 마련하시오. 씨앗은 남겨 두고.”
여자는 절구 가루가 묻은 손을 치마에 문질렀다. 한참 뒤에야 손을 폈다. 동전이 손바닥에 놓이자 큰아이가 어미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아이의 눈을 보고 손을 오므렸다.
관아로 돌아온 오횡묵은 사망 보고와 군적을 나란히 놓았다.
한쪽에서는 세 해 전에 죽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는 해마다 군포를 냈다.
“죽은 날을 알면서 이름을 남겨 두었구나.”
호방이 허리를 굽혔다.
“군액(軍額)을 채워야 해서…….”
“그 집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채웠구나.”
호방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 장에는 다른 집 아이의 이름이 있었다. 열두 살인데 군정(軍丁)으로 올라 있었다.
“이 아이는 무엇이냐?”
“몰운 금점으로 떠난 사내의 아들입니다. 아비가 돌아오지 않아 대신 올린 듯합니다.”
“열두 살이다.”
“실제로 군역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군포만…….”
호방의 말끝이 잦아들었다.
어린아이를 장정으로 올려 군포를 거두는 일을 황구첨정(黃口簽丁)이라 했다. 종이에 적힌 나이는 열둘이었다. 그 곁에 붙은 몫은 어른의 것이었다.
“아비는 언제 떠났느냐?”
“지난해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횡묵은 아이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아비가 없는 집에서 누가 베를 짜고 무엇을 팔아 이 몫을 내는지, 군적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몇 해 동안 거두었는지 적어라. 아이는 누구의 명으로 올렸는지도.”
호방이 붓을 들었다가 멈추었다.
“이 이름들을 빼면 정해진 군액에 모자랍니다.”
오횡묵 앞에는 두 장의 종이가 있었다. 하나에는 죽은 사내와 어린아이의 이름이, 다른 하나에는 고을이 채워 올려야 할 수가 적혀 있었다.
“모자라는 까닭도 적어라.”
“나리.”
“죽은 자와 아이에게 물려 채웠다고 적으란 말이다.”
그날부터 각 면의 이름을 다시 맞추었다.
아전들이 문서를 들고 집집마다 물었고, 오횡묵도 몇 마을을 따라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세 해가 되었는데 이름을 올리지 않은 집이 있었다. 마당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아비는 관아에서 온 사람들을 보자 몸을 돌렸다. 오횡묵이 부르자 돌아섰으나, 아이를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비가 대답했다. 제 손으로 지어 날마다 부르는 이름이었다.
“왜 올리지 않았느냐?”
아비는 아이의 발을 감싼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발에는 버선이 있었고, 다른 발은 아비의 소매 안에 들어 있었다.
“이름을 올리면 또 무엇을 내라 할까 싶었습니다.”
오횡묵의 뒤에서 아전이 붓을 꺼냈다. 아비는 아이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다른 집에는 이름만 남아 있었다.
대문은 경첩 하나가 빠져 비스듬히 걸렸고, 지난해 베고 남은 메밀대가 마당에 젖어 누워 있었다. 부엌의 곡식독은 비었다. 아궁이의 재를 건드리자 회색 가루가 일었다. 불이 꺼진 뒤로 겨울이 그대로 지나간 집이었다.
이웃 노파는 첫눈이 내리기 전에 식구들이 떠났다고 했다.
“어디로 갔소?”
“처음에는 장터 쪽이라더니, 그 뒤로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파는 지게 끈을 고쳐 잡았다. 등에 진 솔가지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봄나물을 캐러 나갔으나 돌아오는 짐에는 땔감이 더 많았다. 아직 밤에는 불을 때야 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다섯 집이 비었다. 다른 마을에서는 열세 사람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오횡묵은 떠난 때를 물었다. 날짜를 모르면 마지막으로 본 계절이라도 적게 했다.
“감자를 다 캐기 전에 갔습니다.”
“그 집 막내가 앓던 날까지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첫눈 온 아침에 문이 열려 있기에 들여다봤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날짜보다 남겨진 일을 기억했다.

장부의 칸은 짧았다.
오횡묵은 그 말들을 여백에 적었다. 감자를 캐다 떠난 집과 아이가 앓던 집이 서로 다른 줄에 놓였다.
관아로 돌아와 그가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이냐?”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큰 장터에서 품을 팔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몰운 쪽 금점(金店)으로 간 사람이 많습니다.”
“밭을 두고 갈 만큼 벌이가 되느냐?”
호방은 마루 끝의 장부를 보았다.
“곡식과 연장부터 빌려 쓰고 들어간다 합니다. 품삯에서 그 값을 제하면 손에 쥐는 것은 적습니다.”
“금을 찾아도 그러하냐?”
“금은 물주의 것입니다.”
마당에는 해가 기울었다. 볕이 떠난 자리부터 젖은 흙이 어두워졌다. 처마의 물방울도 뜸해졌다. 밤이면 다시 얼 땅이었다.
오횡묵은 낮에 표시해 둔 열두 살 아이의 이름을 찾았다. 그 곁에 ‘아비, 몰운 금점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 뒤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타들어 갈 때마다 종이 위의 글씨가 흔들렸다. 죽은 사내의 이름 옆에는 올해 거둘 군포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지난 두 해의 납부 표시가 남아 있었다.
절구 가장자리의 가루를 긁던 여자의 손이 떠올랐다.
그는 선비로 글을 읽을 때부터 외웠던 수령칠사(守令七事)를 되짚었다. 농사를 성하게 하고, 호구를 늘리고, 군정을 바로잡으라는 말들이었다. 낮에 본 집에서는 씨앗을 내라 했고, 이름을 올리기를 두려워했으며,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물렸다.
마지막 항목에 이르자 손이 멎었다.
간활식(奸猾息).
아전과 토호의 횡포를 그치게 할 것.
“호방을 들이라.”
호방이 들어오자 오횡묵은 죽은 사내의 이름을 가리켰다.
“이 집에서 거둔 군포의 원장을 가져오너라. 사망한 해부터.”
호방이 가져온 것은 올해 미납자만 옮겨 적은 얇은 장부였다.
“원장을 가져오라 했다.”
“지난해 것은 창고 깊이 들어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호적과 군적도 함께 가져오너라.”
호방은 표지에 얹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호적에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군적을 고치는 일은 지난 수령 때부터 미뤄졌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 독촉했느냐?”
“장부에는 미납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 집에는 사람이 다녀갔다. 누가 무엇을 받아 왔는지 적힌 문서도 가져오너라.”
호방이 물러갔다.
마루 끝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낮은 목소리가 몇 차례 오간 뒤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에는 오래된 군적의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전갈이 왔다.
오횡묵은 사람을 보내 장부를 가져오게 했다.
호방이 원장을 들고 나타났을 때에는 밤이 깊었다. 표지에 먼지가 앉아 있었으나 모서리에는 손으로 문지른 자국이 났다. 그는 책상 끝에 장부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
“가서 쉬어라.”
짚신 소리가 멀어진 뒤 오횡묵은 등잔을 가까이 옮겼다.
먼저 호적에서 과부의 큰아들 이름을 찾았다.
열셋이었다.
군적에는 죽은 아비의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그 아래로 지난해부터 군포를 물리기로 한 이름이 하나 더 올라 있었다.
큰아들이었다.
오횡묵은 종이를 불빛 쪽으로 기울였다.
앞뒤의 글씨는 먹빛이 옅고 획 끝이 닳아 있었다. 아이의 이름과 나이는 그보다 검었다. ‘열여덟’의 마지막 글자는 좁은 여백에 비스듬히 밀려 있었다.
그는 두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호적에는 열셋, 군적에는 열여덟이었다.
낮에 동생의 짚신 끈을 매던 아이였다. 몸을 숙일 때 드러난 맨발과 가느다란 발목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이가 문턱에서 떨던 동안, 관아의 종이 위에서는 다섯 살이 더해져 있었다.
오횡묵은 빈 종이를 꺼냈다.
아이의 이름과 두 나이를 나란히 적고, 죽은 아비에게 군포를 물린 내역을 그 아래 옮겼다. 베를 낸 해와 곡식을 낸 해를 적다가 붓끝이 멎었다. 닭을 내주었다는 여자의 말도 덧붙였다. 원장에는 모두 군포를 거둔 것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는 낮에 받아 온 문서를 끌어당겼다. 감자를 캐다 떠난 집과 아이가 앓던 집의 이름이 여백에 적혀 있었다. 금점으로 간 아비의 행선지에는 몰운이라는 지명 하나뿐이었다.
새 종이에 그 이름들을 옮겼다.
죽은 아비와 군적에 오른 아들, 집을 비우고 떠난 식구들, 금점에 들어간 뒤 소식이 끊긴 사람들. 아는 사정은 곁에 적고, 모르는 것은 비워 두었다.
등잔기름이 줄었다.
그는 심지를 낮추고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
문풍지가 울리면 붓끝을 들었다가 바람이 잦아든 뒤 다시 썼다. 밤이 깊어질수록 손이 굳었다. 손가락을 펴 보아도 마디의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밖에서는 얼음이 풀린 강물이 돌에 부딪혔다.
동이 틀 무렵, 종이 위의 먹빛이 등잔 없이도 보이기 시작했다.
오횡묵은 호방을 불렀다.
호방은 들어오자마자 밤에 놓고 간 군적을 살폈다. 오횡묵은 아이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그 위에 펼쳤다.
“각 면에 전하라.”
그가 말했다.
“사망한 사람은 유족에게 때를 묻고 군적과 맞추어라. 떠난 집은 이웃에게 행선지를 물어라. 소식이 끊겼다고 죽은 자로 적지 말고, 죽은 자에게 미납을 붙이지 마라.”
호방이 고개를 숙였다.
“군포를 물린 아이들은 호적과 군적의 나이를 대조하여라. 씨앗이나 겨울 양식까지 내준 집은 누가 무엇을 받아 갔는지 적어 올려라.”
호방이 문서를 거두려 하자 오횡묵이 한 장을 눌러 남겼다.
열셋과 열여덟이 나란히 적힌 종이였다.
“관아까지 오기 어려운 집은 내가 찾아가겠다.”
“나리께서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오횡묵은 두 나이를 번갈아 보았다.
“한 아이의 나이가 장부마다 다르니, 아이를 만나 보아야겠다.”
그는 각 면을 차례로 돌겠다고 일렀다. 수행할 사람은 줄이고, 마을에서 음식과 말먹이를 거두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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