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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아리랑 ― 9 이름을 묻고, 노래를 데려오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2 0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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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동학항쟁사

제9부  ― 동백은 강 건너의 울음을 받아 불렀다

 

원복은 삿대를 짚을 때마다 맞은편 자갈밭을 살폈다. 

무진의 당숙과 친척들이 기다리기로 한 곳이었다. 

순덕에게도 녹도로 가겠다고 알렸으나,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어미가 집에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동쪽 산마루가 희어졌다. 

골짜기는 아직 어두웠고, 밤새 강을 덮은 안개가 갈대 밑에 낮게 엉겨 있었다. 

삿대를 거둘 때마다 손바닥에서 물이 흘렀다. 바람을 맞은 손가락은 자루를 놓고도 굽은 채 펴지지 않았다.

배 밑이 자갈을 긁었다.

 

솔숲에서 장정들이 나왔다. 

삽과 곡괭이를 멘 친척들 뒤로 순덕과 순임이 보였다. 순덕은 아들을 덮을 천을 안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치맛단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원복이 물속으로 내려 배를 붙잡았다. 강물이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발바닥을 딛고 있는 자갈의 감촉이 차츰 멀어졌다. 배가 멎었는데도 동백은 무진 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순덕이 뱃전에 손을 짚고 삼베를 젖혔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천을 쥔 손이 멈췄다. 

순덕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삼베 아래의 손을 만지고 젖은 소매를 걷었다. 

동백이 바짓단을 올리자 왼쪽 정강이의 흉터가 드러났다. 순덕은 그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오래전 그 상처의 피를 씻어주던 손이었다.

 

“무진아.”

이름을 부르고도 아들의 몸을 오래 더듬었다. 

강 건너 장대에서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순덕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흉터에 손을 둔 채 배 곁에 무릎을 꿇었다. 자갈 사이의 물이 치마를 적셨다.

순임이 뱃전을 돌아 젖은 삼베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오빠 얼굴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순임이 강 건너를 보았다.

“거기 두고 온 거예요?”

순덕은 무진의 빈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을 오므려 잘린 자리 위에 받쳤다. 그 손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아들의 어깨에 이마를 대자 눌려 있던 울음이 터졌다. 순임이 어머니 등에 얼굴을 묻었다.

 

동백은 두 사람 곁에 앉았다. 

품속의 나무비녀가 가슴을 눌렀다. 무진을 찾아 강을 건넜고 그의 몸을 데려왔으나, 순덕에게 건넬 말은 없었다.

원복이 녹도 쪽을 살폈다. 안개 너머 초소에서 사람 하나가 움직였다.

“옮겨야 합니다.”

장정들이 숲에 감춰둔 들것을 가져왔다. 두 장대 사이에 거적을 엮은 것이었다. 당숙과 재종형제가 무진의 겨드랑이와 다리 아래로 팔을 넣었다. 물먹은 옷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들어 올리자 저고리 끝에서 강물이 흘렀다.

순덕이 장대 아래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내가 들겠다.”

“형수님은 앞에서 길을 보시오.”

말리는 손을 뿌리쳤으나 무게가 실리자 무릎이 꺾였다. 

곁의 장정이 장대를 받아냈다. 순덕은 자갈밭에 주저앉아서도 아들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한 번만 들어보자. 내 자식인데…….”

처음 안았을 때에는 두 팔 안에 다 들어오던 몸이었다. 추워서 울면 품에 넣고 방 안을 걸었다. 잠든 뒤에는 팔이 저려도 내려놓지 못했다. 그 몸을 이제 장정 둘이 옮기는데, 어미는 한쪽 어깨로도 받아내지 못했다.

동백이 순덕의 손을 감쌌다.

“어머니가 앞에서 데려가세요.”

 

순덕은 옷자락을 놓았다. 

장정들이 들것에 새끼줄을 두르고 빈 목에 무명천을 감는 동안, 동백의 손을 짚고 일어섰다.

소년은 두 사람이 너무 쉽게 들어 올렸다. 장정 하나가 입술을 다물고 팔의 위치를 고쳤다. 원복은 사내의 품에서 흘러나온 담뱃대와 보리주먹밥을 다시 여며 넣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냐?”

당숙이 물었다.

“이름을 모릅니다.”

동백의 대답에 당숙은 양옆의 몸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소년의 들것 앞으로 가 장대를 어깨에 올렸다. 더 묻지 않았다.

 

여섯 장정이 둘씩 들것을 맡았다. 

젖은 거적이 아래로 처졌다. 원복은 배를 갈대 속으로 밀어 넣고 물가의 발자국을 자갈로 흐트러뜨렸다. 순덕이 무진의 들것 앞에 섰다. 동백과 순임이 뒤를 따랐다.

길로 올라서지 않고 갈대밭과 밭둑을 걸었다. 

마른 갈대가 옷자락에 부딪힐 때마다 강 쪽을 돌아보았다. 언 도랑에서는 앞사람이 먼저 내려가 장대를 받쳤다. 뒤의 사람이 발을 옮기는 동안 들것이 기울지 않도록 어깨를 낮췄다.

 

서릿발이 짚신 밑에서 부서졌다. 풀뿌리째 들린 흙이 발끝에 채였다. 

장대가 어깨뼈를 누를 때마다 자리를 바꾸었으나 들것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강기슭에서 소리가 나면 걸음을 멈추고 흔들리는 몸까지 붙잡았다.

산그늘에 들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런데도 추위는 더 깊었다. 젖은 옷이 살갗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원복의 바짓단에는 얇은 얼음이 잡혔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옷감 속에서 사각거렸다. 순임은 소매 안에 손을 넣고 걷다가 들것이 기울면 맨손을 내밀었다.

원복이 골라둔 곳은 정선읍 뒤편 야산의 묵은 숯가마 터였다.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강기슭에서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가마 자리에는 재와 숯이 흙 속에 섞여 있었고, 바람에 밀린 솔잎이 낮게 쌓여 있었다.

 

첫 곡괭이가 땅을 때렸다.

흙은 패이지 않고 쇳소리만 돌려주었다. 장정들은 강 쪽에 귀를 기울였다가 다시 자루를 들었다. 

몇 번을 내리쳐야 얇은 흙 한 겹이 떨어졌다. 갈라진 틈에도 하얀 얼음이 박혀 있었다.

원복도 곡괭이를 잡았다. 굽혔다 펴는 무릎에서 얼어붙은 옷감이 당겼다. 

곡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손바닥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고, 그제야 삿대에 쓸린 자리가 쓰렸다.

순덕과 동백, 순임은 깨진 흙덩이를 걷어냈다. 

손끝이 돌에 긁혀도 처음에는 아프지 않았다. 검은 재가 손바닥에서 축축하게 뭉친 뒤에야 피가 난 것을 알았다. 동백은 치맛자락에 손을 닦고 다시 구덩이 안으로 뻗었다.

세 몸을 한 구덩이에 포개 넣을 수는 없었다. 

장정들은 곡괭이가 조금 더 들어가는 자리를 찾아 구덩이 셋을 나란히 팠다. 소년을 찾으러 올 어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사내에게도 누군가 찾아와 앉을 자리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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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산마루를 넘어왔다. 

높은 가지에는 볕이 닿았으나 발밑의 그늘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구덩이는 언 땅과 남은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깊어졌다.

무진을 가운데 눕혔다. 왼쪽에는 소년을, 오른쪽에는 사내를 누였다.

순덕이 아들 곁에 앉았다. 가져온 천을 펴다가 양옆을 보았다. 세 몸을 가리기에는 모자랐다. 무진의 가슴까지 덮고 남은 끝을 접어 소년의 어깨 아래에 받쳤다.

 

당숙이 무진의 발에 묻은 흙을 털었다. 

아비를 잃고 남의 밭에서 품을 팔던 아이였다. 동학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늙은 어미나 봉양하라고 꾸짖었다. 그때에는 다음 장날에도 이 아이가 먼저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그러게 내가 가지 말랬잖아.”

당숙은 발등에 붙은 흙을 손톱으로 떼었다.

“사람들 밥 먹게 해주겠다더니…….”

 

뒷말은 나오지 않았다. 

흙이 떨어진 자리를 엄지로 몇 번 문지르다가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순임이 품에서 작은 보자기를 꺼냈다. 흰쌀 한 줌이었다. 집에서 제사에 쓰려고 덜어둔 것을 혹시나 몰라서 가져왔다.

순덕이 몇 알을 집어 무진의 가슴에 올렸다. 손가락이 굳어 쌀알이 검은 흙으로 흘러내렸다. 

순임이 하나씩 주웠다. 소년 앞에서는 주운 손을 펴보았다.

“너도 먹어.”

가슴께에 한 알을 놓았다. 사내의 굳은 손 안에도 한 알을 넣었다.

“아저씨도요.”

순덕은 남은 쌀을 세 몫으로 나누었다. 

무진 쪽으로 손이 조금 기울었다가 멎었다. 소년의 헐거운 저고리를 보고 다시 고르게 갈랐다.

“네 어미가 못 왔으니 내가 준다.”

소년의 가슴에 쌀을 얹고 사내의 손에도 나머지를 놓았다.

“가는 데서는 밥부터 먹어라.”

 

불을 피울 수 없었다. 

연기가 나무 위로 오르면 강기슭에서도 보일 터였다. 순덕이 가져온 쌀은 밥이 되지 못한 채 젖은 옷 위에 남았다. 바람이 구덩이를 훑자 한 알이 천의 주름 속으로 굴러들었다. 순덕은 그것을 꺼내 다른 쌀알 곁에 놓았다.

동백은 씨감자 세 알을 꺼내 각자의 발치에 놓았다. 언 껍질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것도 넣으려느냐?”

순덕이 물었다.

“무진 씨가 가지고 있던 거예요.”

순덕은 한 알을 오래 바라보았다.

“봄에 심을 걸…….”

동백은 감자를 흙에 조금 눌러놓았다. 얼어버린 것에 싹이 날지는 알 수 없었다. 손을 거두고도 한동안 그 자리를 보았다.

 

순덕은 아들의 발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어릴 적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차가우면 가슴에 넣어 녹여주곤 했다. 발가락 사이의 흙을 닦고 굳은 발등을 감쌌다. 치마 속으로 넣은 발은 오래 안고 있어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너는 어려서도 발이 늘 찼다.”

입김이 발등 위에 잠깐 머물다 흩어졌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네 짚신이나 고쳐놓고 있었다.”

아무도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솔가지가 흔들리며 서리를 쏟았다. 잘게 부서진 얼음이 순덕의 등과 무진의 옷 위에 떨어졌다. 순덕은 아들의 발을 치마로 더 깊이 감쌌다.

“무진아.”

발등에 이마를 댔다.

“사람이 하늘이라며. 그런데 내 하늘은 누가 이렇게 베어놓았느냐.”

동백은 품속의 비녀를 꺼냈다. 가운데 난 금을 손끝으로 짚었다. 무진의 옷 위에 내려놓으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순덕이 보았다.

“그건 네가 가져라.”

동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로 깎은 작은 자국들이 손바닥에 닿았다. 살아 있을 때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였다.

비녀를 품에 넣고 순덕의 팔을 잡았다.

장정들이 삽을 들었다. 

누구도 첫 흙을 뿌리지 못했다. 당숙이 삽 끝을 낮춰 흙을 밀어 넣었다. 검은 흙이 무진의 발끝에 떨어졌다.

 

순덕의 몸이 움찔했다.

다음 흙이 다리를 덮었다. 흙은 옷의 주름을 메우며 배와 가슴으로 올라왔다. 순덕은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삽이 움직일 때마다 같은 손이 다시 들렸다.

빈 목을 감싼 무명천만 남았을 때 순덕이 말했다.

“잠깐만.”

몸을 숙여 천 위의 흙을 털었다. 손이 얼굴을 찾듯 허공에서 멈췄다. 감겨줄 눈도, 입 맞출 이마도 없었다. 순덕은 천의 가장자리에 입술을 댔다.

“잘 가거라.”

일어서려다 구덩이 가장자리를 짚었다. 동백과 순임이 양쪽에서 팔을 받쳤다. 당숙은 고개를 돌렸고, 원복은 곡괭이 자루를 붙든 채 발밑만 보았다.

소년과 사내에게도 흙을 넣었다. 순덕은 두 구덩이에 마지막 흙을 한 줌씩 뿌렸다.

“너희도 춥지 않게 가거라.”

깊이 묻지 못한 몸을 짐승이 파헤칠까 봐 큰 돌을 날라 얹었다. 돌 밑에 손가락이 끼어도 장정들은 소리를 삼켰다. 봉분을 높이는 대신 돌 사이를 흙으로 메우고 낙엽과 마른 솔가지를 덮었다. 조금 떨어져 보니 숯가마가 무너지며 흩어진 돌 같았다.

 

무진 앞에는 작은 나무판을 세웠다.

순덕이 품속에서 여러 번 접힌 종이를 꺼냈다. 무진이 글을 배우던 때 제 이름을 처음 써서 가져온 것이었다. 

먹이 번진 획과 오래 접어둔 자리가 남아 있었다.

순덕은 글자를 읽지 못했다. 다만 아들이 종이를 내밀며 제 이름이라고 말하던 날을 기억했다. 종이를 무릎 위에 펴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바람이 가장자리를 들추었다.

원복이 나무판에 칼끝을 댔다.

 

邊武鎭.

 

복잡한 획 앞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 

종이와 나무판을 번갈아 보고 다시 칼을 움직였다. 굳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칼끝이 비껴 나가자 손목을 무릎에 받치고 조금씩 새겼다. 벗겨진 나무의 속살은 흙 묻은 손보다 희었다.

마지막 획을 마치자 순덕이 종이를 접었다. 모서리를 맞추는 데 오래 걸렸다. 아들이 살아서 쓴 이름은 품에 넣고, 그 이름을 옮긴 나무판은 죽은 아들 곁에 두었다.

소년과 사내 앞에도 판을 세웠다. 두 판에는 칼을 대지 않았다.

당숙이 무진의 나무판을 낮게 눌러 박았다. 흙 묻은 손으로 획을 쓸었다.

“사람들은 네가 역적이라더라.”

말을 멈추고 손가락에 묻은 나무 부스러기를 보았다.

“네가 무슨 마음으로 갔는지는 내가 들었다.”

 

솔숲에 볕이 번졌다. 

장정 하나가 삽을 거두었다. 당숙도 더 말하지 않고 일어섰다. 세 나무판이 멀리서 눈에 띄지 않도록 주위에 솔가지를 비스듬히 걸쳤다.

사람들이 먼저 내려갔다. 동백은 잠시 무진 앞에 남았다.

돌 틈에는 아직 덮이지 않은 검은 흙이 보였다. 그 아래에 아침까지 만질 수 있던 몸이 있었다. 동백은 흙 위로 나온 새끼줄 끝을 밀어 넣고 솔잎을 덮었다.

겨울은 아직 깊었다.

무진이 기다리던 봄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건너야 할 날이 남아 있었다.

동백은 산을 내려왔다. 몇 걸음마다 돌아보았으나 숯가마 터는 곧 나무 사이에 가렸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솔가지에 걸린 순임의 옷감 한 올이었다. 돌아가 떼어내려다 멈췄다. 원복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를 치른 사람들은 산자락에서 흩어졌다. 

삽과 곡괭이를 감추고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순덕과 순임은 당숙을 따라갔다.

순덕이 몇 걸음 걷다가 돌아섰다.

“다음에 올 때는 밥을 해오마.”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묻지 않았다. 순임이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의 치맛단이 밭둑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동백은 서 있었다.

원복과 동백은 아우라지로 향했다.

강변에 들어서자 산등성이에서 밀려온 구름이 해를 덮었다. 물 위에서 반짝이던 얼음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골짜기를 내려온 바람은 강을 따라 몸을 낮추더니 두 사람의 옷자락을 한꺼번에 뒤집었다.

원복이 바람을 등지고 걸었다. 동백도 고개를 숙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이 아렸고, 입을 다물면 젖은 입술이 서로 붙었다. 눈은 먼지처럼 흩날리다가 이내 물길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쏟아졌다.

갈대 마디에 흰 줄이 잡혔다. 강물은 내리는 눈을 받아 곧 지웠으나, 물가의 살얼음에는 눈이 얇게 쌓였다. 얼음 아래에서 물이 흐를 때마다 그 흰 가장자리가 들썩였다.

원복이 뒤를 돌아보았다. 동백은 소매 속에 손을 넣고 걷고 있었다.

 

“조금 쉬었다 가세.”

동백은 고개를 저었다. 멈추면 산에 두고 온 몸 쪽으로 다시 발이 돌아갈 것 같았다. 원복은 걸음만 늦췄다.

그때 강 건너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이 처마를 훑는 소리인 줄 알았다. 바람이 잦아들어도 소리는 남았다. 낮게 가라앉았다가 길게 올라오며 물을 건너왔다.

여자의 노래였다.

높은 가락에서는 목이 갈라졌다. 소리가 끊기면 숨 고르는 틈이 길었다. 원복이 맞은편 산기슭의 외딴집을 가리켰다. 눈발 사이로 작은 지붕과 닫힌 창호문이 보였다.

“저 집 사내도 소식이 없다더군.”

동백은 그 집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처마 밑에는 눈이 들지 않은 마른 땅이 좁게 남아 있었다.

노래가 다시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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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조양강 검은 물아 얼지도 마라

몸이라도 오면 품에 안으련만

빈 짚신 한 짝만 문밖에 왔네

 

동백은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처마 끝의 눈을 흩었다. 노래는 잠깐 끊겼다가 더 낮게 이어졌다.

 

머리는 어느 장대 바람을 맞고

몸은 어느 자갈밭 눈을 맞느냐

밥상을 차리니 숟가락은 둘인데

한 사람 자리는 밤새 식어가네

 

동백은 품속에서 비녀를 고쳐 쥐었다. 금이 손끝에 걸렸다. 힘을 늦추자 나무가 손바닥 안에 가만히 놓였다.

 

어린것 잠결에 아비를 찾거든

눈 온다 말하고 문을 닫아라

강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느냐

우리 님 마지막에 내 이름 불렀더냐

 

마지막 말은 가락 끝까지 가지 못했다. ‘불렀더냐’가 흐느낌으로 내려앉았다.

얼음 조각들이 부딪혔다. 짧고 맑은 소리가 물 위에 남았다.

무진이 마지막으로 누구를 불렀는지 동백도 몰랐다. 닫힌 창호문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원복이 곁에 섰다. 어깨에 쌓인 눈을 털다가 손을 내렸다.

여자가 다시 불렀다.

 

칼로는 목을 베어 말 못 하게 해도

내 입의 그 이름은 누가 베느냐

살아 못 건넌 저 조양강을

노래야 너라도 건너가거라

 

동백의 입술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의 가락이 끊긴 뒤 마지막 두 줄을 다시 입에 올렸다. 숨에 묻혀 알아듣기 어려웠다. 두 번째 부를 때에는 원복이 고개를 돌렸다.

살아 못 건넌 저 조양강을

노래야 너라도 건너가거라

턱 끝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무진의 몸을 붙들고 배를 건널 때에도, 순덕이 구덩이 앞에서 아들의 발을 안을 때에도 삼켰던 울음이었다. 동백은 소매로 닦지 않았다. 입을 열어 다음 가락을 찾았다.

강 건너 여자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동백은 그 집이 마주 보이는 강가에 그대로 섰다. 여자가 숨을 고르면 기다리고, 낮게 내려오는 대목에서는 함께 불렀다.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를 잃었는지 묻는 말도 강을 건너지 않았다.

한 소절이 끝났을 때 동백이 제 가락을 얹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님 이름을 품고나 가네

강물아 흘러도 다 가져가지 마라

우리 님 이름만 쓸어가지 마라

 

마지막 음에서 목소리가 흔들렸다. 동백이 숨을 들이쉬는 동안 강 건너에서 가락이 이어졌다.

원복은 두 여자의 소리가 겹치는 물길을 보았다. 거센 눈발에 집이 가렸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지붕이 다시 나타났다. 목소리도 그 사이로 끊어져 건너왔다. 동백은 들리지 않는 대목에서 입을 다물고, 다시 들려오는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낮아졌다. 동백도 따라 낮췄다. 여자의 끝음이 숨 속으로 사라지자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원복이 먼저 몸을 돌렸다. 동백은 외딴집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따라 걸었다.

산모퉁이를 돌자 집이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 더 가니 노래도 들리지 않았다. 동백은 걸음을 늦췄으나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품속의 비녀를 쥔 채 방금 들은 끝소절을 혼자 불렀다.

처음에는 가락이 어긋났다. 같은 말로 두 번 돌아갔다. 걸으며 숨을 고르자 조금씩 이어졌다. 목이 메면 멈추었다가 끊긴 자리부터 다시 불렀다.

 

눈이 앞길을 좁혔다. 

맞은편 산은 아래부터 지워졌고, 물소리가 나는 쪽만 어둡게 남았다. 원복은 밭둑의 높낮이와 눈 밖으로 나온 갈대 끝을 살피며 걸었다.

살아 있을 때 무진을 기다리던 길이었다. 늦게 오는 배를 찾으려고 물을 내려다보다가 멀리서 삿대가 들리면 달려 나가던 곳이었다. 오늘 강에는 배 대신 얼음이 떠내려갔다. 

동백은 물가로 내려서지 않고 원복의 뒤를 따랐다.

무진의 몸은 산에 두고 왔다. 이름은 나무판에 새겼다. 품에는 비녀가 있었고, 입에는 강 건너 여자가 다 부르지 못한 가락이 남았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눈이 얼굴에 와 부딪혔다. 

동백이 옷깃을 여미느라 노래를 멈추자 원복도 걸음을 늦췄다. 잠시 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원복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 덮인 길로 발을 옮겼다.

두 사람의 발자국은 뒤에서부터 메워졌다.

동백은 끊긴 가락을 다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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