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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아리랑 ― 6 지워진 이름을 읽는 소년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2 0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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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동학항쟁사

 

제6부 ― 뒤늦게 읽은 유언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잇달아 묻은 뒤, 무진은 한동안 사랑방 앞을 지나지 않았다.

부엌에 가려면 마당을 돌아갔다. 

물을 길어오다가도 도수매의 그림자가 발치에 닿으면 걸음을 빨리했다. 바람이 처마 쪽으로 불어 가지 끝이 나무를 긁는 밤에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밤새 내린 서리가 아침에도 마당에 남았다. 

낮에 풀린 흙은 해가 지면 다시 얼었다. 물동이를 내려놓은 자리에는 둥근 얼음 자국이 생겼고, 순덕은 그 위에 재를 뿌렸다.

불을 지피다가 삼베 타는 냄새가 섞이면 무진은 품속에 넣어둔 아버지의 소매부터 만졌다. 

손끝에 해진 천이 닿아야 다시 아궁이를 볼 수 있었다.

잠이 들어도 두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관아 마당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진이 달려가 팔을 잡아도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도수매 아래에서 입을 움직였다. 가지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깨어나면 무진은 품속의 종이를 꺼냈다. 

할아버지가 남긴 두 장의 글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제 이름뿐이었다.

누구에게 읽어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종이를 내밀면 그 사람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자신보다 먼저 알게 될 터였다. 몇 번이나 문밖으로 나갔다가 종이를 도로 접었다.

 

며칠 뒤, 그는 사랑방 미닫이문을 열었다.

문 아래가 습기를 먹어 쉽게 밀리지 않았다. 두 손으로 밀자 굳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며 먼지가 떨어졌다. 식은 재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났다. 책상에는 족보와 가승이 놓여 있었고, 할아버지가 앉던 방석은 한쪽이 눌린 채였다.

무진은 그 자리에 앉았다.

가승의 마지막 장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았다. 익숙한 글자 모양 곁에는 날짜와 번진 먹물 자국이 있었다.

 

邊碩柱

 

훈장이 상가에 와서 짚어주었던 이름이었다.

관아에서는 아버지가 사람들을 모아 지주의 문서를 훼손하려 했다고 말했다. 가승에는 태어나고 죽은 날이 적혀 있었다.

무진은 두 날짜 사이의 좁은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아버지는 남의 밭에서 보리를 베었다. 품삯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저녁에도 무진과 순임의 그릇부터 살폈다. 큰물이 지나간 뒤에는 진흙 속에서 이삭을 건졌고, 자갈에 덮인 밭을 되살리려고 새벽마다 나갔다.

그 일을 적은 줄은 없었다.

무진은 할아버지의 글을 무릎 위에 펼쳤다. 글자가 빽빽했다. 종이를 가까이 가져와도 읽을 수 없는 것은 같았다.

 

그날 그는 글을 배우기로 했다.

먼저 이 두 장을 읽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관아가 아버지에게 무슨 죄를 붙였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는 마을 훈장을 찾아갔다.

훈장의 방 한쪽에는 아이들이 쓰다 남긴 종이가 쌓여 있었다. 벽에 붙인 연습 글씨는 높이가 제각각이었다. 아래쪽 종이에는 먹 묻은 작은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진은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글을 배워 무엇을 하려느냐?”

“읽을 게 있습니다.”

“무엇을?”

무진은 품속의 종이를 만졌다.

“할아버지가 남긴 글입니다. 관아 장부도 읽고 싶습니다.”

훈장은 아버지의 일을 알고 있었다. 종이를 꺼내 보라고 하지 않았다.

“붓과 먹을 살 돈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아침에 와서 마당을 쓸어라. 물도 길어다 놓고.”

 

그날부터 무진은 날이 밝기 전에 훈장의 집으로 갔다.

아침 안개가 골목을 막았다. 

짚신에 묻은 흙이 문턱에 떨어질까 봐 마당 가장자리에서 발을 털었다. 

낙엽을 쓸고 물을 길어놓은 뒤, 산에서 가져온 마른 가지를 부엌 벽에 쌓았다. 일이 끝나면 훈장은 숯 조각 하나를 주고 글자 몇 개를 가르쳤다.

무진은 흙바닥에 획을 그었다. 

틀리면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 손으로 다시 빗자루를 쥐고 물동이를 날랐다. 저녁에는 순덕을 도왔다. 잠들기 전 이불 위에 손가락으로 배운 글자를 썼다. 순임이 곁에서 뒤척이면 손을 멈췄다가 다시 첫 획부터 그었다.

 

처음 붓으로 쓴 것은 제 이름이었다.

먹을 너무 많이 묻혀 글자가 번졌다. 마지막 획을 누르다가 종이까지 움푹 팼다. 무진이 종이를 구기려 하자 훈장이 손목을 붙들었다.

“다시 쓰면 된다.”

“종이가 없으면요?”

“흙에 써라.”

“비가 오면 지워집니다.”

“그치면 다시 쓰면 되지.”

무진은 번진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일부러 지우면요?”

훈장은 아이의 손목을 놓았다.

“네가 남아 있어야 다시 쓸 수 있다.”

“남아 있기만 하면 됩니까?”

“먼저 살아야지. 그래야 무엇이 지워졌는지도 말할 수 있다.”

 

무진은 종이를 폈다. 구겨진 자국 사이에 이름이 비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아버지에게 죄를 붙인 말은 남아 있었다. 무진은 대답하지 않고 종이를 품에 넣었다.

시간이 나면 어디에서든 글자를 썼다.

소가 지나간 마당에서는 발굽 자국 사이를 골랐다. 비가 오면 처마 밑으로 옮겼다. 

겨울에는 눈 위에 썼다. 나뭇가지 끝으로 눌러쓴 획에 푸른 그늘이 생겼다. 

저녁에 돌아와 보면 눈발이 홈을 메우고 있었다. 손을 입김으로 녹인 뒤 다시 썼다.

 

밤에는 두 장의 글에서 배운 글자를 찾았다. 

아는 글자 몇 개를 이어 뜻을 짐작했으나, 이튿날 새 글자를 배우면 짐작이 어긋났다. 종이는 그대로인데 그 안의 말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버지의 이름도 배웠다.

 

邊碩柱.

 

가승을 곁에 놓고 여러 번 베껴 썼다. 

마지막 획까지 쓰고 나면 손을 멈췄다. 이름을 바르게 쓴 날에도 순덕은 곡식독을 기울여 남은 낟알을 모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배울 때에는 붓이 종이에 닿기 전에 멎었다.

 

邊翰弼.

훈장은 글을 뜻하는 한(翰)과 곁에서 돕는다는 뜻의 필(弼)을 가르쳐주었다.

무진은 땅에 그 이름을 썼다.

아버지가 끌려갈 때 사랑방에서 나오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겨울밤 무진의 이불 끝을 끌어올려주고, 숯으로 제 이름을 써주었던 사람도 할아버지였다.

다음 글자를 쓰려다가 무진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쓴 이름은 지우지 않았다.

 

두 해가 지나서야 할아버지의 글을 혼자 읽을 수 있었다.

열네 살이 된 어느 밤이었다. 낮에 내린 봄비가 그친 뒤에도 처마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젖은 도수매 가지가 문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무진은 사랑방에 등잔을 켜고 두 장의 종이를 펼쳤다.

번진 획에서 자꾸 막혔다. 앞뒤를 다시 읽고 손가락으로 희미한 자국을 따라갔다. 첫 장을 마칠 무렵에는 등잔의 기름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이제 밥 한 그릇을 내어주고 싶어도 앉을 네가 없구나.

 

무진은 그 문장에서 멈췄다.

부엌에서 그릇 놓는 소리가 났다. 제사를 마친 밤, 아버지는 문가에 앉아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손에는 숟가락이 없었다.

그때 무진은 제 그릇만 보았다.

그는 종이에서 눈을 떼고 문턱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앉았던 곳까지 등잔불이 닿지 않았다.

두 번째 장에는 제 이름이 있었다.

 

나는 네게 굽히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라도 살아 돌아오라 쓴다.

 

무진은 첫머리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어린 자신의 턱을 들어 도수매 꽃을 보게 하던 손이 떠올랐다. 그 손으로 쓴 말이었다.

글을 배우면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남겼는지 알게 될 줄 알았다. 

이제 말은 읽혔으나, 그것을 쓰던 얼굴은 알 수 없었다. 왜 끝내 자신을 불러 읽어주지 않았는지 물을 사람도 없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종이 가장자리를 놓았다.

지난날 내게 했던 말로 마음 아파하지 마라. 네 말이 옳았다.

그 아래에 무진의 이름이 한 번 더 적혀 있었다. 마지막 획에는 먹이 짙게 번져 있었다.

 

무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해 동안 되풀이했던 제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그 말 하나에 묶어두었던 밤들도 떠올랐다.

종이 위로 눈물이 떨어질까 봐 그는 두 장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고개를 숙이자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방 안에는 숨을 삼키는 소리와 처마의 물소리가 번갈아 났다.

한참 뒤 무진은 글을 접었다.

할아버지를 용서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 처음으로, 미워하던 사람의 글을 잃을까 봐 접힌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맞췄다.

 

등잔을 끄기 전 족보를 펼쳤다.

변귀수에서 시작한 이름들이 먹줄을 따라 내려왔다.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만 보았으나 이제는 그 앞뒤를 읽을 수 있었다.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정선의 산으로 들어간 사람. 무진은 그를 예전처럼 그저 도망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살던 곳을 버리는 일에도 두려움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귀수가 산으로 들어간 일과, 변 진사가 아들에게 밭일을 맡기고 사랑방에 남은 일은 같지 않았다.

무진은 빈 곳과 끊어진 줄을 차례로 짚었다. 이름 아래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누구를 먹이며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족보를 보자기에 싸서 지정천(地藏川)으로 갔다.

밤비를 받은 하천은 가장자리까지 불어 있었다. 

산그늘의 물은 검푸르고, 얕은 모래턱에서는 흙빛이 비쳤다. 

물살에 밀린 마른 풀이 한곳에 모였다가 풀려나갔다.

무진은 높은 돌 위에 족보를 펴놓고 아래쪽의 젖은 모래에 네 사람의 이름을 썼다.

 

邊貴壽.

邊翰弼.

邊碩柱.

邊武鎭.

 

복잡한 획에서는 족보를 다시 보았다. 네 이름을 다 쓰자 나뭇가지 끝이 물러져 있었다.

변귀수의 이름 아래로 먼저 물이 스몄다. 가느다란 획이 풀리고, 다음 물결에 변한필의 이름이 반쯤 무너졌다.

아버지의 이름에서는 마지막 글자가 오래 남았다. 

무진은 가지를 들어 다시 쓰려다가 멈췄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작은 모래 능선만 생겼다.

마지막으로 제 이름에 물이 닿았다.

무(武)의 획이 무너지고 진(鎭)의 가장자리가 씻겨나갔다.

무진은 뒤로 물러섰다. 다시 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물이 올라오는 자리에 써놓으면 또 지워질 터였다.

그는 족보를 보자기에 쌌다. 종이 속 이름들은 그대로였다.

강가를 떠나기 전 아버지의 이름을 썼던 곳을 돌아보았다. 물이 지나간 모래는 반듯했다.

무진은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 뒤늦게 온 사람에게 보여줄 획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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