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제5부 ― “죽은 날만 쓰지 마세요”
그날 밤 석주의 몸에 열이 올랐다.
큰물이 빠진 마당에는 진흙이 마르지 않았다.
낮 동안 젖은 흙에서 올라오던 냄새가 해가 지자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순덕은 문을 조금 열었다가 석주가 몸을 떨자 다시 닫았다.
물에 적신 헝겊을 이마에 얹어도 금세 미지근해졌다.
석주는 이불을 걷어찼다가 곧 추운 사람처럼 무릎을 오므렸다. 순덕이 발치의 이불을 끌어 올리는 동안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튿날에는 곤장에 터진 살에서 냄새가 났다.
상처에 붙은 옷감을 떼자 말라붙은 피와 함께 살이 당겨졌다. 순덕은 손을 멈추고 물부터 끓였다.
따뜻한 물로 천을 적셔 조금씩 떼어냈으나, 손이 닿을 때마다 석주의 손가락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의원을 부를 돈이 없었다.
순덕은 곡식과 바꿀 만한 것을 찾다가 빈 뒤주 앞에 멈췄다.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고 돌아와 피 묻은 헝겊을 빨았다.
무진은 우물과 방 사이를 오가며 대야를 채웠다.
물을 버릴 때마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핏덩이가 늦게 따라 나왔다.
어린 순임은 부엌 구석에서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다.
가슴속에서 젖은 것이 끓는 듯한 소리가 멎으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들리면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변 진사는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석주가 지게를 지고 돌아와 대문 앞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날에도 그는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은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쥐는 아들에게 몸가짐을 바로 하라고, 선비의 후손임을 잊지 말라고 했다.
이제 그 아들의 몸이 이불 위에서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자세를 고쳐주려고 손을 뻗자 석주가 신음했다. 변 진사는 닿기도 전에 손을 거두었다.
“석주야.”
석주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렸다.
변 진사는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아들이 어릴 때처럼 조금 가까이 몸을 숙였다.
“아비 여기 있다.”
석주는 눈을 뜨지 못했다.
관아로 가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을 보라고 형방 앞에 아들을 데려가든지, 의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모셔 와야 했다.
그러나 관아의 대문을 떠올리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문을 지키던 군졸의 창끝과, 억울함을 호소하러 들어갔다가 멍석에 말려 나온 사람의 신음이 함께 떠올랐다.
변 진사는 사랑방으로 갔다.
오래된 책을 보자기에 쌓고 금이 간 벼루도 올렸다.
매듭을 묶으려는데 젖은 손으로는 끈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침 마당으로 나온 순덕이 그 꾸러미를 보았다.
“이것을 내다주면 약을 구할 수 있겠느냐.”
순덕은 대답하기 전에 책 모서리를 한 번 만졌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녀는 책 꾸러미를 들고 나갔다가 그대로 가져왔다.
곡식과 바꿔줄 집이 없었다고 했다. 책은 사랑방 문턱에 다시 놓였다.
변 진사는 매듭도 풀지 않았다.
도수매 아래에 주저앉자 젖은 흙이 옷자락에 묻었다.
밑동은 단단했으나 늘어진 잔가지들은 끝부터 검게 말라가고 있었다.
석주가 어릴 때에는 그 가지가 마당을 넓게 덮었다. 그 아래에서 글을 읽던 자신에게 아들은 밭에서 돌아와 인사를 올리곤 했다. 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집안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열린 방문으로 그 말이 들어갔다.
상처를 닦던 순덕의 손이 잠시 멎었다.
석주는 천장을 보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순덕이 물그릇을 가져오자 겨우 한 모금 삼켰다.
하려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변 진사는 사랑방 문턱의 꾸러미를 보았다.
소과에 붙어 진사라 불렸을 때만 해도 저 책들이 자신을 벼슬길로 이끌 줄 알았다.
대과에 거듭 낙방하고 전답이 남의 손에 넘어간 뒤에도 그는 책을 놓지 않았다. 농기구를 잡으면 선비의 체면마저 잃는다고 여겼다.
그가 물러선 자리마다 석주가 섰다. 남의 밭에도, 지주의 대문 앞에도, 마침내 관아의 형틀 앞에도.
방에서 아들의 숨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변 진사는 젖은 땅에 이마를 댔다.
“내가 네 뒤에 숨었구나.”
한참 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순덕은 석주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무진은 식은 물을 버리려고 대야를 들고 있었다.
그는 문턱 안에 앉았다. 석주가 물을 찾으면 순덕에게 그릇을 건넸고, 젖은 헝겊을 내놓으면 받아 대야에 담았다.
아들의 몸 가까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기다렸다.
사흘째에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 밤에는 석주가 혼자 돌아눕지 못했다.
젖은 이불을 갈려고 순덕이 어깨를 받치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변 진사는 아들의 무릎 밑으로 손을 넣었다.
뼈가 손바닥에 만져졌다. 어릴 때 잠든 석주를 안아 방으로 들이던 몸과는 너무 달랐다.
어디에 힘을 주어야 덜 아플지 몰라 한동안 그대로 받치고 있었다.
무진이 마른 이불을 가져왔다.
“무진아.”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온전히 부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무진은 석주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지만 손끝은 차가웠다.
“사람보다 장부를 먼저 믿지 마라.”
지주의 마당에 펼쳐졌던 종이와 관아에서 아버지에게 읽어주었다는 죄목이 무진의 머릿속에 뒤섞였다.
“장부가 아버지를 때렸습니까?”
석주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갈라진 입술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장부에는 손이 없다.”
숨이 길게 멎었다가 가까스로 이어졌다.
“사람이 그 뒤에 숨는 것이지.”
순덕이 입술에 물을 축였으나 그는 더 마시지 못했다.
변 진사는 아들의 발치에 앉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손가락 사이를 천천히 문질렀다.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잡혀 있었다. 발뒤꿈치의 깊은 금에는 씻겨 나가지 않은 흙이 남아 있었다.
“석주야.”
아들의 발을 쥔 채 그가 말했다.
“날이 밝으면…….”
그 뒤에 붙일 말이 없었다.
날이 밝아도 약을 구할 돈은 없었다.
변 진사는 입을 다물고 발등을 문질렀다. 오래 쥐고 있어도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이 오기 전, 석주의 가슴에서 나던 젖은 소리가 아주 멎었다.
순덕이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진은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았다.
변 진사도 발을 놓지 않았다.
순덕이 이불을 끌어 올리려 하자 그는 조금만 더 있다가 덮으라고 했다.
아들의 발이 제 손 안에 있는 동안은 아직 해줄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처마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새벽바람이 방바닥을 훑었다.
변 진사는 마침내 손을 뺐다. 아들의 발 위에 이불을 덮고, 흘러내린 끝을 한 번 더 여몄다.
날이 밝자 무진은 부엌 벽에 걸린 아버지의 낫을 내렸다.
오래 갈아 날이 짧아진 낫이었다.
손잡이에는 석주의 손바닥에 닳아 매끄러워진 자리가 있었다. 해마다 그 낫으로 남의 밭에서 보리를 베었다.
큰물이 빠진 뒤에는 진흙에 묻힌 이삭을 하나씩 건졌고, 끝내 거둘 곡식이 없다는 말을 남기려고 지주를 찾아갔다.
무진은 손잡이를 꽉 쥐었다가 폈다.
방에서는 순덕이 죽은 남편의 몸을 씻기는 물소리가 들렸다.
곤장을 친 군졸은 명을 받았다고 했다.
죄목을 적은 아전은 법대로 했다고 했고, 지주는 제게도 먹여 살릴 식구가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관아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끝내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저마다 자신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에 이름을 붙인 뒤 살아남았다.
석주만 죽었다.
장례 전날, 변 진사는 널빤지 곁에 앉아 있었다.
순덕이 석주에게 입힐 옷을 가져왔다. 어깨와 겨드랑이에 기운 자국이 있었다. 변 진사는 옷을 받아 무릎에 놓고 한동안 펴지 못했다.
“다른 것은 없느냐.”
“이것이 제일 성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 끝으로 옷깃의 실밥을 눌러 넣었다가 다시 빠져나오자 그만두었다.
아들은 평생 아버지의 밥을 마련했다.
장지로 떠나는 날에는 상여 뒤를 따라 마당까지 나왔다.
비탈길에 접어들자 무릎이 꺾여 더 가지 못했다. 이웃 사내가 부축하려 했으나 그는 도수매 밑동을 붙들고 서 있었다.
석주는 어릴 적에도 저 길로 밭에 갔다. 저녁이면 지게를 지고 내려왔다.
그날 변 진사는 해가 기울 때까지 마당을 떠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며칠 뒤, 무진은 사랑방으로 갔다.
부엌을 가운데 두고 사랑방과 안방이 붙어 있는 낮은 집이었다. 썩은 이엉 밑으로 처마 한쪽이 내려앉아 통나무로 받쳐놓았다. 비가 그쳤는데도 처마 밑 흙은 검게 젖어 있었다.
장례를 치렀다고 죽은 사람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관을 짠 널빤지 값과 상여를 멘 이들에게 내놓은 막걸리, 좁쌀이 빚으로 남았다.
순덕은 묵은 감자를 장사꾼에게 넘겼다. 싹을 떼고 물러진 것을 골라냈으나 장사꾼은 남은 것에도 흠이 많다며 값을 깎았다. 그가 돌아간 뒤 부엌 바닥에는 떨어진 흙과 잘라낸 싹만 남았다.
양식은 메밀가루 한 됫박과 시래기 몇 묶음이었다.
큰물 뒤에 건져 말린 보리도 먹을 만한 것을 고르니 얼마 되지 않았다.
가난은 석주와 함께 묻히지 않았다.
사랑방 미닫이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변 진사는 툇마루에 족보와 집안의 생몰을 적어온 가승(家乘)을 나란히 펼쳐놓았다.
불을 때지 않은 방에서 젖은 종이와 식은 재 냄새가 흘러나왔다. 바람에 얇은 장이 들썩이자 손바닥으로 눌렀다.
족보 첫머리에는 변귀수의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로 후손들의 이름이 가느다란 먹줄을 따라 이어졌다. 과거에 떨어진 사람, 농사짓다 죽은 사람, 흉년에 다른 고을로 떠난 사람이 이름 한 줄씩을 남겼다.
변한필이 소과에 붙어 진사라 불린 것이 집안에서 마지막으로 내세울 만한 일이었다. 그마저 벼슬은 아니었다.
가승 마지막 장에는 석주의 이름이 있었다.
변 진사는 그 곁에 죽은 날을 적으려 했다. 붓끝이 떨리다가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검은 점이 이름 옆으로 번졌다. 소매로 닦으려다 멈추었다. 문지르면 아들의 이름까지 흐려질 것 같았다.
무진이 툇마루 아래에 섰다.
“뭘 씁니까?”
변 진사가 고개를 들었다. 며칠 사이 뺨이 꺼지고 눈 밑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네 아비가 죽은 날을 적으려 한다.”
“왜요?”
“죽었으니 적어야지.”
무진은 툇마루에 올라 가승을 들여다보았다. 글을 읽지는 못해도 아버지의 이름 석 자는 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가르쳐준 글자였다.
邊碩柱.
태어난 날 곁에 곧 죽은 날이 더해질 터였다. 새벽마다 지게를 지고 나가던 일과 저녁이면 다리를 끌듯 돌아오던 일이 그 사이 어디에 들어가는지 무진은 찾을 수 없었다.
“밭 간 것도 씁니까?”
“가승에는 그런 일을 적지 않는다.”
“아버지는 평생 밭에 갔는데요.”
무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봄에는 돌을 골랐고, 여름에는 김을 맸습니다. 가을에는 곡식을 날랐고 겨울에는 나무를 했어요.”
아궁이에 들어간 나무와 밥솥에 들어간 곡식은 거의 모두 그 손을 거쳤다.
“할아버지 밥도 아버지가 벌어왔습니다.”
“안다.”
“그런데 왜 안 씁니까?”
변 진사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장례를 앞두고 순덕은 석주의 손을 몇 번이나 씻었다.
갈라진 손금에는 검은 흙이 박혀 있었다. 무진은 어머니가 그 흙을 빼내려고 손가락 마디를 오래 문지르던 모습을 보았다.
죽어서도 아버지의 손에는 남의 밭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뭐라고 남습니까?”
무진이 물었다.
“내 외아들이고, 선조 변귀수의 피를 이은 사람으로 남겠지.”
“그게 답니까?”
변 진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조의 이름은 수백 년 집안의 자랑이 되었는데, 제 손을 잡고 강가를 걷던 아버지에게는 이름과 날짜 말고 남길 자리가 없었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없네요.”
변 진사의 손이 굳었다.
무진은 족보 첫머리를 가리켰다.
“변귀수 공은 나라가 망하자 이 산으로 들어왔다고 했지요?”
“새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고 들어온 것이다.”
“잡혀갈까 봐 숨은 거잖아요.”
“함부로 말하지 마라. 뜻을 지키려고 세상을 버린 분이다.”
“그럼 남은 사람들은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변귀수 공은 산으로 가고, 할아버지는 이 방에 계셨습니다.”
“무진아.”
“아버지만 밖에 나갔어요. 밭에도, 지주 집에도, 관아에도.”
무진이 소매로 눈을 훔쳤다.
“아버지만 맞았습니다.”
변 진사는 군졸이 아들을 끌고 가던 새벽을 떠올렸다.
자신이 따라가봐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랑방 안으로 물러났었다.
“그때 왜 안 따라갔습니까?”
“내가 간들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옆에 있을 수는 있었잖아요.”
변 진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늙었다. 나까지 잡혀가면 너희는 어찌 살라고.”
“아버지도 힘이 없었습니다.”
부엌에는 바닥이 드러난 곡식독이 있었다.
순덕은 장례 때 빌린 곡식의 상환을 늦춰달라고 청하러 아침부터 몇 집을 다녔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순임은 배고프다는 말을 하다 지쳐 잠들었다.
무진은 그 빈 독을 보고 나온 참이었다.
“아버지가 없는데 우리는 뭘 먹고 삽니까?”
변 진사는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네 아비를 버리려 한 게 아니다.”
“그럼 왜 곁에 안 계셨습니까?”
붓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먹을 머금은 붓끝이 족보 위를 구르며 선조와 후손들의 이름에 긴 자국을 남겼다. 반사적으로 소매를 들어 닦았으나 문지를수록 글자가 뭉개졌다.
그는 손을 멈췄다.
가승에는 아직 석주가 죽은 날도 적혀 있지 않았다.
“무진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안하다.”
무진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아버지의 이름을 짚었다.
“죽은 날만 쓰지 마세요.”
변 진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고도 써주세요.”
그는 붓을 주워 들었다. 먹이 번진 끝을 벼루 가장자리에 고르고 가승의 여백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한참 동안 붓끝은 종이에 닿지 못했다.
무진은 툇마루를 내려와 마당을 가로질렀다. 도수매의 낮은 가지가 머리 위를 스쳤다.
변 진사는 손자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품에 대고 있던 손을 조금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부엌 아궁이에 작은 불씨가 남아 있었다.
돌아온 순덕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적삼을 무릎에 놓았다. 석주가 관아에서 돌아온 날 입었던 옷이었다. 굳은 피로 뻣뻣해져 접을 때마다 검붉은 자국이 갈라졌다.
그녀는 한동안 소매 끝을 만지다가 옷을 아궁이에 밀어 넣었다.
불길이 옷자락을 붙잡자 무진이 달려들었다.
순덕이 손목을 잡았으나 아이는 몸을 비틀어 소매를 움켜쥐었다. 한쪽 소매가 찢겨 나왔고 나머지는 불 속으로 말려들었다.
피 밴 삼베 타는 냄새가 부엌에 찼다.
“왜 태웁니까? 아버지 건데.”
“안다.”
“남은 게 이것밖에 없잖아요.”
순덕은 아들의 손에 들린 소매를 보았다.
헤진 끝을 몇 번이나 기워준 옷이었다. 남편을 눕힌 뒤 빨아야 할지 묻어야 할지 몰라 부엌에 숨겨두었다. 아이가 볼 때마다 곤장을 맞고 돌아온 아버지만 떠올릴까 두려웠으나, 자신도 버리지 못해 며칠을 그대로 두었다.
“족보에는 아무것도 안 쓴답니다.”
무진이 말했다.
“밭에 간 것도, 우리를 먹여 살린 것도요.”
순덕은 소매를 빼앗지 않았다.
무진이 그을린 끝을 손으로 누르자 순덕은 젖은 헝겊을 가져와 불씨를 끄고 아이의 손을 감쌌다.
두 사람은 나머지 옷이 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불 속에서 어깨의 기운 자리가 먼저 벌어졌다.
그 뒤 변 진사는 사랑방에 머물렀다.
첫날 순덕이 놓아둔 묽은 메밀죽은 저녁까지 그대로였다. 이튿날에는 두어 숟가락을 뜬 흔적이 있었으나 그릇 가장자리에 굳어 있었다. 밤이면 마른기침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가끔 잠결에 석주를 불렀다.
순덕이 문을 열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깊이 잠든 것도 아닌 얼굴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변 진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다. 네가 자거라.”
석주가 죽기 전에도 아들을 부를 일이 많았다. 처마가 샐 때, 땔감이 떨어졌을 때, 허리가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마다 이름부터 불렀다.
이제 입에서 먼저 나온 이름을 듣고 나서야,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셋째 날 아침, 그는 《맹자(孟子)》를 펼쳤다가 몇 줄을 더듬고 덮었다.
문턱에는 약 한 첩과도 바꾸지 못한 책들이 아직 묶여 있었다.
변 진사는 가승을 당겼다.
석주의 이름 옆에 죽은 날을 적었다. 한 글자를 쓰고 쉬었다가 다음 글자를 썼다. 날짜를 다 적은 뒤 여백에 한 줄을 더 썼다.
밭을 갈고 나무를 하여 늙은 아비와 처자를 먹여 살렸다.
먹이 마르기를 기다리는데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무진이 빈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가고 있었다. 물동이가 아이의 무릎에 부딪쳤다.
변 진사는 문턱까지 기어와 앉았다. 무진을 불러 함께 들고 싶었으나 손자는 이미 대문을 나선 뒤였다.
마당에는 지게를 내려놓았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석주가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지게를 세웠다. 변 진사는 한동안 그곳을 보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그는 아들과 손자에게 글을 한 장씩 썼다.
석주에게 쓰는 글은 이름 뒤에서 오래 멈추었다.
붓끝의 먹이 종이에 번졌다. 그는 다른 종이를 꺼내지 않고 그 아래에 썼다.
석주야.
네가 밭에서 돌아오면 나는 손을 씻고 책을 만지라 하였다.
그 손이 갈라졌는지는 보지 않았다. 네가 아이들 밥부터 지으라 할 때에도 나는 쌀자루를 놓지 않았다.
제사를 마친 뒤 네 몫의 밥이 없었던 것을 안다. 알면서도 너를 부르지 않았다.
이제 밥 한 그릇을 내어주고 싶어도 앉을 네가 없구나.
이 아비가 잘못하였다.
네가 살아 있을 때 했어야 할 말을 이제야 한다.
그는 붓을 내려놓았다.
종이를 누른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소매로 닦으려다가 글자가 번질까 봐 손을 거두었다.
다음 종이에는 무진의 이름을 적었다.
무진아.
네 아비는 굶는 식구들을 두고 물러설 수 없어 사람들 앞에 섰다. 나는 평생 글을 읽고도 그 아비 하나 지켜주지 못했다.
너는 앞에 나서지 마라. 억울해도 먼저 따지지 말고, 관아에서 부르거든 혼자 가지 마라. 네 아비의 주검을 닦아 입힌 어미에게 너까지 맡기지는 마라.
나는 네게 굽히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라도 살아 돌아오라 쓴다. 이 말만은 잊지 마라.
날이 저물면 어미와 순임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어라.
지난날 내게 했던 말로 마음 아파하지 마라. 네 말이 옳았다. 네 아비가 살아 있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변 진사는 붓을 멈췄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었으나 무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줄 아래에 손자의 이름을 한 번 더 적었다.
무진아.
붓끝이 마지막 획에 머물렀다. 먹이 조금씩 번졌다. 그는 손자가 대문을 들어설 때 부르던 목소리로 그 이름을 읽어보았다. 입술만 움직였다.
그 뒤에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먹이 마르기를 기다려 두 장을 접었다. 족보를 펼치자 죽은 아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는 그 이름 위에 손을 얹었다가, 글을 사이에 끼우고 책을 덮었다.
무진은 아직 그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변 진사는 손자가 돌아오면 제 목소리로 읽어주려 했다. 첫머리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목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순덕이 보리 한 됫박을 안고 들어왔다.
초상에 쓴 곡식을 갚을 길을 찾으러 이웃집들을 돌았으나 쌀을 내줄 집은 없었다. 겨우 보리를 빌려준 집에서는 가을에 갚으라고 했다.
순덕은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를 내려놓았다.
자루를 털자 낟알 몇 개가 문턱에 떨어졌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하나씩 주웠다.
변 진사는 족보 사이에 끼운 글을 다시 꺼내려다가 멈췄다.
순덕이 마지막 낟알을 집어 앞치마에 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볕이 났다.
물에 씻긴 밭에는 자갈이 드러나 있었고 쓰러진 보리 줄기가 흙에 붙어 말라갔다.
순덕은 치마폭에 감싼 보리를 두 손으로 받쳤다. 발이 빠지는 곳에서는 밭둑의 풀을 밟으며 돌아왔다.
그중 조금을 씻어 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었다. 오래 끓인 뒤 건더기를 건져두고 맑은 물을 사발에 따랐다.
해가 기울 무렵 사랑방 앞에 섰다.
“아버님, 조금이라도 드십시오.”
변 진사는 문을 열었다. 두 손으로 사발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삼키는 데 오래 걸렸다.
순덕이 문턱에 앉았다.
“무진이도 마음에 없는 말을 했을 겁니다.”
“그 아이는 마음에 있는 말을 했다.”
변 진사는 사발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석주는 나한테 그런 말을 못 했지.”
순덕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닐 텐데.”
마당 너머 비탈길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변 진사는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녁이면 내려오던 길이다.”
순덕도 길을 보았다.
풀잎 사이에 남은 물기가 희미하게 빛났다. 어둠이 내려오자 길 아래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변 진사는 사발을 다시 들었으나 입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순덕이 받아 문 곁에 놓았다.
“문은 조금 열어두마.”
그가 말했다.
순덕은 잠시 더 앉아 있다가 부엌으로 갔다. 솥바닥에는 보리알이 조금 남아 있었다. 순임이 깨면 그것부터 먹일 생각이었다.
밤이 깊어도 사랑방에서는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기침이 한 차례 길게 이어진 뒤 잠잠해졌다.
새벽녘 마당에서 무엇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덕은 잠결에 눈을 떴다.
잠시 귀를 기울였으나 뒤이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곁에서 무진이 몸을 뒤척였다.
동이 틀 무렵, 순덕은 사발을 거두러 나왔다가 도수매 앞에서 멈췄다.
손에서 떨어진 그릇이 마당을 굴렀다. 무진이 방문을 열자 순덕의 비명이 뒤따랐다.
변 진사는 도수매에 목을 맨 채였다. 발 아래에 떨어진 버선 한 짝이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순덕이 달려가 붙잡았으나 몸은 이미 식어 있었다.
무진은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할아버지를 보고도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를 수 없었다.
화로 곁에서 등을 긁어달라고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숯으로 땅바닥에 ‘무진’ 두 글자를 써주며 다른 글은 몰라도 제 이름은 알아야 한다고 하던 손도.
그 손은 아버지가 끌려가던 날 사랑방 문을 닫았던 손이었다.
무진은 할아버지를 미워한 채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다시 물을 기회도, 했던 말을 거두거나 더 할 기회도 있을 줄 알았다.
그날 툇마루에서 한 말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발을 놓지 못하던 밤도 함께 떠올라, 무엇을 붙잡고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순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진은 뒤늦게 달려가 할아버지의 다리를 붙들었다. 얇은 바짓단 너머로 뼈가 만져졌다. 이렇게 가벼운 몸이었는지 몰랐다.
몸을 내려 방으로 옮긴 뒤에도 무진은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순덕이 이불을 가져오자 발끝까지 당겨 덮었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해주었던 일이었다.
한참 뒤 무진이 물었다.
“제가 그 말을 안 했으면…….”
순덕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너는 아버지 곁에 있어달라고 한 거다.”
무진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 안에서 굽어졌다.
“네 할아버지는 네 아버지를 보내고부터 밤마다 저 길을 보셨다. 잠이 들어도 네 아버지를 찾으셨고.”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순덕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불 아래 가만히 놓인 발끝을 바라보았다.
장례를 치른 뒤 무진은 족보 사이에서 두 장의 글을 발견했다.
먹줄로 지운 자리와 그 아래 빼곡한 글자들이 보였다.
아버지에게 남긴 말도 자신에게 남긴 말도 검은 획의 무더기였다. 가승의 아버지 이름 옆에도 전에는 없던 글이 더해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읽을 수 없었다.
알아본 것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제 이름 두 글자뿐이었다.
무진.
그는 종이를 들고 도수매 아래로 갔다. 한쪽 가지에는 껍질이 벗겨진 자리가 남아 있었다. 손바닥을 대보았다. 나무는 햇볕을 받아 조금 따뜻했다.
얼마 전까지 모르는 글자를 물을 사람이 이 마당에 있었다.
무진은 두 장을 접어 품에 넣었다.
지금은 읽지 못해도 버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적삼에서 찢어낸 소매도 같은 품속에 있었다. 걸음을 옮기면 종이가 바스락거리고 거친 삼베가 가슴을 쓸었다.
초여름 바람이 불었다.
도수매에는 꽃 대신 짙어진 잎이 달려 있었다. 처마를 받친 통나무 밑에서 아직 덜 마른 흙이 검게 빛났다.
부엌에서는 순덕이 빈 곡식독 곁에 앉아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석주의 초상 때 보리를 빌려준 집, 변 진사의 장례에 쓸 쌀을 내준 집을 하나씩 헤아렸다. 한 손으로 다 세지 못해 손가락을 다시 폈다.
가을에 갚겠다고 한 곡식이었다.
흙이 쓸려가고 자갈이 쌓인 밭에서 무엇을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열두 살 무진은 품속의 종이와 소매를 눌러 넣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솥바닥에는 보리알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안방에서 순임이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다시 하나씩 접혔다.
무진은 작은 사발을 꺼내 동생이 먹을 보리부터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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