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3
제3부 ― 딸깍발이 선비
몇 해가 흐르자 일곱 사람도 골짜기의 흙과 바람에 익숙해졌다.
붓을 잡던 손에는 굳은살이 박혔고, 관복을 받치던 어깨에는 지게 끈이 파고든 자국이 남았다. 봄에는 언 땅이 풀리는 소리를 알아들었고, 가을에는 산마루에 걸린 구름을 보고 서리가 내릴 밤을 짐작했다. 책장을 넘기던 손으로 씨앗을 골랐으며, 비가 오래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 앉아 젖은 짚신을 기웠다.
정선의 봄은 골짜기마다 오는 때가 달랐다. 양지쪽 밭두렁에서 흙이 풀려도 응달의 돌 밑에는 얼음이 붙어 있었다.
낮에 녹은 눈물이 밤이면 다시 얼어, 새벽에 물을 길으러 나간 사람은 디딤돌에 발을 올리기 전에 지팡이로 먼저 두드려보았다.
그 무렵 가지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매화가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도수매(倒垂梅)라 불렀다. 가지가 아래로 드리워진 매화라는 뜻이었다.
꽃은 성기게 피었으나 향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무 아래에서는 희미하던 것이 몇 걸음 떨어진 길모퉁이에서 문득 짙어졌다. 해가 기울어 골짜기 바람이 내려오면 사람의 옷깃에 다시 스몄다.
산기슭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면 마른 잎과 눈가루가 함께 날렸다. 그 속에서 매화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걸음을 늦췄다.
얼어붙은 겨울이 어디선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변귀수는 골짜기 어귀의 어린 도수매 한 그루를 관복을 걸어두었던 소나무 곁으로 옮겨 심었다.
겉흙은 녹았으나 조금만 파고들면 얼어붙은 흙덩이가 나왔다.
그는 괭이로 흙을 깨고 손으로 돌을 골랐다. 손가락 끝이 터져 흙에 피가 묻었다. 뿌리를 펴서 앉힌 뒤에는 빈틈으로 흙을 밀어 넣고,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발로 둘레를 다졌다.
전오륜이 물었다.
“어찌하여 하필 이 나무요?”
변귀수는 땅에 닿을 듯 늘어진 가지를 손바닥으로 받쳤다. 막 벌어진 흰 꽃 한 송이가 손등 가까이에서 떨렸다.
“가지가 굽어도 꽃은 피는구려.”
그는 가지를 놓고 소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일곱 벌의 관복은 비와 볕에 빛이 바래 있었다. 바람이 불자 빈 소매 하나가 나무껍질을 스쳤다.
“우리도 이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소.”
김충한이 밑동에 드러난 뿌리를 흙으로 덮었다.
“벼슬도 없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겠소.”
“오늘처럼 흙을 파고, 내일은 씨를 뿌려야지요.”
변귀수가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렇게 산다고 섬기던 뜻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오.”
전오륜은 빈 물동이를 집어 들었다. 냇가로 내려가는 그의 짚신 밑에서 얇은 얼음이 부서졌다.
그날부터 도수매는 칠현의 나무가 되었다.
눈이 많이 내린 해에는 가지가 땅에 묻혔다. 일곱 사람은 아침마다 눈을 털어주었다.
끝내 부러진 가지도 있었으나, 이듬해 봄이면 살아남은 끝에서 꽃망울이 맺혔다.
변귀수는 봄마다 나무 아래에 오래 서 있었다. 향기가 번지는 날에는 두고 온 고향의 뜰이 떠올랐다. 돌아갈 길을 묻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관복을 벗은 어깨 위로 꽃잎이 떨어지면 그는 털어내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어느 봄날, 그는 관복을 걸어두었던 소나무에 네 줄의 시를 새겼다.
산이 깊어도 망국의 한을 가리지 못하고
물이 멀리 흘러도 옛 나라의 소리를 전하네.
거꾸로 드리운 매화는 사람 없는 골짜기에 피고
한 조각 붉은 마음은 예와 지금을 비추리라.
山深不掩亡國恨
水遠猶傳故國音
倒垂梅發無人谷
一片丹心照古今
칼끝이 단단한 나뭇결에 걸릴 때마다 손목을 멈추었다.
마지막 글자를 새긴 뒤에는 홈에 낀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털어냈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다.
곁에 선 여섯 사람의 그림자가 소나무 밑에서 길어졌다.
훗날 사람들은 그 시를 칠현시(七賢詩)라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한문을 읽지 못했다.
변귀수가 뜻을 풀어주면 알아들은 말을 나무하러 가는 길에 되풀이했다. 숨이 차면 말이 짧아졌고, 가파른 비탈에서는 끝말을 길게 뽑았다. 밭에서 듣던 사람이 제 가락을 붙였다.
산이 높아 못 간다더냐
물이 깊어 못 건넌다더냐
나라 잃은 칠현의 마음
굽은 매화 다시 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꺾인 가지에도 꽃은 피네
세월이 흐르자 고려의 왕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일곱 사람도 차례로 골짜기에 묻혔다. 무덤 앞에서 울던 아이들이 늙어서는 누구의 무덤인지 자손에게 일러주었다.
봄이면 도수매는 다시 피었다.
옛 왕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눈에 눌렸던 가지에서 꽃이 벌어지는 것은 보았다.
흉년을 만난 아낙은 노래에 아이의 배고픔을 넣었다.
소작인은 지주의 곳간으로 곡식을 나르다가 제 말을 보탰다.
보리쌀은 주인 곳간 가고
빈 지게만 집으로 오네
허리 굽은 산골 사람도
도수매처럼 다시 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꺾여도 마음은 꺾이지 마오
밭고랑 저편에서 노래가 멎으면 이쪽에서 다음 대목을 이었다.
정선의 산에 금점(金店)이 들어선 뒤에는 광군(鑛軍)들도 그 가락을 불렀다.
바깥에서 꽃이 피는 동안에도 갱도 천장에서는 찬물이 떨어졌다.
젖은 소매로 얼굴을 훔친 사람이 곡괭이를 들면, 뒤에서 돌을 나르던 사람이 후렴을 받았다. 긴 노래는 숨이 모자라 끊겼다.
금 한 돈은 한양으로 가고
돌가루만 가슴에 남네
오늘 묻힌 저 사람 이름
빚 장부에 또 살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죽어도 이 빚은 넘기지 마오
누군가 기침을 하면 노래가 잠시 멎었다.
돌을 실은 광주리가 다시 움직이면 가락도 이어졌다.
노래는 장터로 내려간 사람의 입에서 나루로 건너갔다.
뗏군은 물살을 견디며 끝말을 길게 뽑았고, 아우라지 사공은 삿대를 밀다가 들은 대목을 저녁 술막에서 다시 불렀다. 골짜기마다 말이 조금씩 달랐다.
어느 곳에서는 떠난 사람을 기다렸고, 어느 곳에서는 품삯을 받지 못한 사람이 제 이름을 넣었다.
훗날 녹도에서 사람들이 목을 잃었을 때에도 강 건너에서 노래가 이어졌다.
옛 가락에 돌아오지 못한 이의 이름이 얹혔다.
변귀수의 자손이라고 전해지는 집에서는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도수매 앞에 세웠다.
가지가 땅으로 굽어도 꽃은 다시 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은 세대를 건너 집안의 가르침처럼 남았다.
세상이 뒤집혀도 뜻을 바꾸지 마라.
몸은 꺾여도 마음까지 내어주지는 마라.
그러나 수백 년 뒤, 그 말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지주의 장부와 관아의 곤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살았다.
금점에 들어간 사람은 빚 문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절개는 족보에 남았으나 땅은 남지 않았다.
노래는 남았으나 밥은 남지 않았다.
무진의 할아버지 변한필(邊漢弼)은 자신이 칠현 변귀수의 피를 이었다고 굳게 믿었다.
작은 사랑방 선반에는 낡은 족보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은 또렷했다. 그러나 한필이 오래 들여다보는 이름은 훨씬 앞에 있었다.
邊貴壽.
그 이름에서 자기 집안으로 내려오는 기록은 중간중간 끊겨 있었다. 누가 빈 곳을 물으면 한필은 책장을 덮었다.
“종이가 없어졌다고 피까지 없어지겠느냐.”
젊어서 소과에 합격한 뒤 사람들은 그를 변 진사라 불렀다. 장터에서 누군가 그렇게 부르면 한필은 걸음을 늦추었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한 번 더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대과에는 번번이 낙방했다. 시험을 치르러 떠날 때마다 노잣돈을 빌렸고, 돌아올 때에는 빚을 안고 왔다.
어느 해부터는 식구들도 그가 떠나는 날 마당에 나오지 않았다. 대문을 나선 뒤 돌아보면 처마 밑에 매달린 무청만 바람에 흔들렸다.
처음에는 밭 몇 마지기가 있었다.
한필은 씨앗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지 않았고, 돌을 골라내는 일에도 손을 보태지 않았다.
아들 석주가 새벽부터 밭을 갈고 돌아오면 흙 묻은 손으로 책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석주는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다. 봄에도 물은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손가락 마디를 문지르면 갈라진 곳이 쓰라렸다. 손톱 밑에 박힌 흙은 오래 씻어도 남았다.
흉년이 들자 곡식을 빌렸다.
갚을 날에는 밭 한 자락을 팔았고, 이듬해에는 그 옆 밭을 내놓았다. 한필은 도장을 찍고 돌아와서도 냇가의 둥근 돌에서 버드나무까지가 본래 우리 땅이었다고 말했다.
무진이 열두 살이 되기 몇 해 전 겨울, 집안에 보리마저 모자랐다.
눈이 여러 날 내렸다. 처마 끝의 고드름이 낮에도 녹지 않았다. 순덕은 아침마다 부엌 문턱 안으로 밀려든 눈을 쓸어냈다. 죽을 뜰 때마다 국자가 솥바닥을 긁었다.
한필은 제삿날을 앞두고 곡식을 빌리러 갔다가 쌀을 조금 구해왔다. 순덕이 자루를 받아 들며 말했다.
“아이들 밥에 섞으면 며칠은 견디겠습니다.”
“제사에 쓸 것이다.”
마당에서 지게를 벗던 석주가 고개를 들었다. 부엌에는 무진과 순임이 빈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무진은 아버지가 돌아왔는데도 그릇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애들 밥부터 지으십시오.”
한필은 쌀자루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조상 앞에 올릴 것을 빼앗아 먹겠다는 말이냐?”
순덕이 자루를 든 채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석주는 지게를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솥뚜껑을 열자 보리알 몇 개가 멀건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뚜껑을 덮었다.
그날 저녁 식구들은 묽은 보리죽을 먹었다. 한필은 사랑방에서 제기를 닦았다.
밤이 깊도록 부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순덕은 제사에 쓸 쌀을 씻었다. 찬물에 담근 손이 붉어졌다. 물을 따라낼 때마다 손바닥으로 낟알을 막고, 손가락 사이에 붙은 쌀까지 그릇에 떼어 넣었다.
석주는 문턱에 앉아 그 모습을 보았다.
쌀을 다 씻자 순덕은 소쿠리를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두었다. 무진은 어머니의 손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가, 아무 말 없이 순임 옆에 누웠다.
제사를 지낼 때 한필은 아는 조상의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앞에 기억하는 몇 사람의 이름이었다. 변귀수에게서 자기 집안으로 이어지는 빈 계보를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향을 올리고 오래 엎드려 있었다.
문밖에서 눈이 처마를 쓸었다. 방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아이들은 제상 위에 놓인 밥그릇을 바라보며 무릎을 모았다.
제사가 끝나자 순덕은 밥을 아이들의 그릇에 나누었다. 무진은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순임은 밥알 하나가 떨어지자 손으로 집어 다시 그릇에 올렸다.
석주는 아이들 앞으로 그릇을 밀어주고 문가에 앉았다. 그의 몫으로 남은 밥은 없었다.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땀에 젖었던 등을 식혔다.
무진이 열두 살이 되던 해의 봄을 앞두고 마지막 밭마저 넘어갔다.
석주는 새 주인에게 그 밭을 부쳐 먹게 해달라고 했다.
씨앗을 빌리고, 수확한 곡식에서 도지를 떼어주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드나무 아래를 지났다. 얼어붙은 고랑에는 지난해 자신이 세워놓은 그루터기가 남아 있었다.
해 질 무렵 집에 닿았을 때 한필은 사랑방에서 족보를 펼쳐놓고 있었다. 찬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올 때마다 종이 가장자리가 들렸다. 그는 책장이 넘어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눌렀다.
부엌에서는 순덕이 기침했다. 젖은 나무가 불을 먹지 않아 연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석주는 방문 앞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나무를 잘게 쪼개 속이 마른 조각 하나를 골랐다. 불씨 곁에 대고 오래 입김을 불어넣었다. 나무 끝에 겨우 붉은빛이 돌자 순덕이 다음 조각을 얹었다.
사랑방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집안에 남은 것은 기울어진 사랑방과 벌레 먹은 족보 한 권, 변귀수의 이름을 새긴 나무패뿐이었다.
나무패가 고려 때부터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한필의 아버지가 낡은 패의 글자를 새 나무에 옮겼고, 한필도 글자가 흐려지자 다시 깎았다. 이름은 분명했으나 그 이름과 자기 집안 사이의 기록은 비어 있었다.
한필은 빈 곳을 메우지 못할수록 나무패를 더 자주 닦았다.
술이 오른 밤이면 족보를 펼쳐놓고 흰 천으로 패를 문질렀다. 무진의 버선 앞코에서는 발가락이 나왔고, 순임의 저고리는 소매를 덧대어도 손목이 드러났다. 나무패를 닦는 천만은 때가 묻으면 곧 빨았다.
순덕이 그 천을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아이들의 두꺼운 기운 옷 옆에서 먼저 희게 말랐다.
사랑방 앞뜰에는 늙은 도수매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집안에서는 변귀수가 심은 나무에서 이어졌다고 전했지만, 한필도 확인할 길은 없었다. 밑동은 속이 검게 패였고, 뒤틀린 원가지 하나가 처마 쪽으로 낮게 뻗었다. 해마다 몇 가지가 말라 죽었다. 그래도 늦겨울 추위가 누그러지면 살아남은 끝에서 꽃망울이 벌어졌다.
한필은 곡식독이 비어갈 때에도 나무 둘레의 돌을 골랐다. 산에서 부엽토를 긁어 와 뿌리 위에 덮었다. 밤새 눈이 내리면 가지가 꺾일까 봐 밖으로 나갔다. 잠에서 깬 무진은 문밖에서 눈 터는 소리를 듣곤 했다.
석주는 아침이면 나무 밑에 남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보았다. 부엌에 땔 나무가 모자란 날에도 도수매 가지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가지는 땅을 향해도 꽃은 하늘을 우러러 핀다.”
한필은 어린 무진을 나무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
“저것이 선비의 절개다.”
무진은 고개를 들었다. 낮은 가지에 매달린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꽃잎 하나가 떨어져 눈 녹은 흙에 붙었다.
“열매도 열립니까?”
한필은 꽃을 보라며 아이의 턱을 들어 올렸다.
무진은 잠시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부엌에서 순덕이 빈 독의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한필은 닳은 도포를 입고 사랑방에서 옛글을 읽었다. 소매 끝은 해졌고 버선 뒤꿈치에는 구멍이 났다. 눈 녹은 길을 다녀오는 날이면 나막신 굽이 마루에 부딪혀 딸깍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딸깍발이 선비라 불렀다. 한필이 골목을 지나면 아이들은 그 소리를 흉내 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말리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웃는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겼다.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로 연명한 대목에 이르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옛사람들은 굶어도 뜻을 버리지 않았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있던 순덕이 물었다.
“그분들 집에도 어린아이가 있었습니까?”
한필은 읽던 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솥에서는 묽은 죽이 끓었다. 무진과 순임은 부엌 문가에 앉아 솥뚜껑을 바라보았다.
한필은 책장을 한 장 더 넘겼다.
외아들 석주는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다. 열 살이 되기 전에 성현의 이름을 외웠고, 자라서는 빚 문서의 숫자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글은 빌린 곡식의 양과 갚을 날짜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밭으로 나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오래 오면 물꼬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쪽이든 빚 문서에 적힌 날짜는 달라지지 않았다.
봄에는 남의 씨를 심었다.
새벽 서리가 녹기 전에 밭으로 나가면 짚신 앞코가 하얗게 젖었다. 괭이에 걸린 돌을 꺼내 밭두렁에 던졌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씨를 빌린 날부터 갚을 곡식이 생겼다.
여름에는 허리가 꺾이도록 김을 맸다.
등에 내리꽂히는 볕을 피할 곳이 없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면 흙 묻은 손등으로 문질렀다. 소나기가 산 너머에서 몰려오면 뽑아놓은 풀부터 걷었다. 비가 그친 뒤에도 젖은 옷을 입고 다시 고랑에 엎드렸다.
가을에는 거둔 곡식의 절반이 넘는 양을 지주의 곳간에 들였다.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에 지게를 지고 나갔다. 돌아올 때에는 해가 낮아져 있었다. 빈 지게 끈이 어깨에서 자꾸 흘러내렸다.
남은 곡식을 집으로 가져오는 날, 순덕은 마당에 나와 자루의 크기를 보았다. 석주가 지게를 내리기도 전에 그녀의 눈은 부엌의 곡식독으로 옮겨갔다.
한필은 사랑방 문턱에 서 있었다. 등 뒤에는 족보와 나무패가 놓여 있었다.
그가 조상의 이름을 말하려 입을 열자 석주가 먼저 물었다.
“아버지, 올해는 무엇을 먹고 넘깁니까?”
한필은 대답하지 못했다.
뜰에서 도수매의 마른 가지가 서로 부딪혔다. 산 너머로 넘어간 해가 지붕 끝에만 잠시 남아 있었다.
석주는 지게를 다시 들어 부엌 앞까지 옮겼다. 순덕이 자루를 풀자 무진과 순임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아이는 손을 넣지 않았다. 곡식이 얼마나 적은지 이제는 그들도 알았다.
이듬해 봄, 석주가 다시 곡식을 빌리러 집을 나서던 날이었다.
밤새 봄눈이 내렸다.
앞산은 희었고, 골목에서는 녹은 눈물이 발자국을 따라 흘렀다. 석주는 지게 끈을 당겨 어깨에 맞췄다. 볕이 나면 밭으로 가야 했다. 그 전에 씨앗과 먹을 곡식을 구해야 했다.
한필은 방문을 닫은 채 《맹자(孟子)》를 읽었다. 아들의 발소리가 마당을 건널 때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귀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가난도 뜻을 바꾸지 못해야 한다.”
석주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문을 나서기 전 부엌을 한 번 돌아보았다. 순덕은 솥에 물을 붓고 있었다. 무진과 순임의 그릇이 부뚜막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게 발이 문설주에 걸렸다. 석주는 몸을 옆으로 틀어 빠져나갔다.
뜰의 도수매에는 흰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밤새 내린 눈을 털어낸 가지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석주는 꽃을 보지 못했다. 진창에 빠진 짚신을 빼며 지주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가 떠난 뒤에도 사랑방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이어졌다.
해마다 도수매는 다시 피었다.
석주는 해마다 곡식을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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