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제2부 ― 마지막 관복
임신년(壬申年), 고려가 망하자 일곱 선비는 새 왕조의 벼슬길 대신 정선의 산길을 택했다.
전오륜(全五倫)과 변귀수(邊貴壽), 김충한(金沖漢), 고천우(高天祐), 김위(金瑋),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이었다.
누군가는 조선의 왕에게 나아갔고, 누군가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두고 온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 채 산으로 들어왔다. 보퉁이에는 몇 권의 책과 얼마 남지 않은 곡식, 벗어놓은 관복이 들어 있었다.
길에서 신이 헤졌다.
비단으로 발을 감싸자는 말이 나왔으나 관복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끊어진 짚신 끈을 이어 묶고,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주저앉으면 일행이 멈춰 기다렸다.
정선에 닿았을 때는 겨울이었다.
추수를 마친 논에는 거둘 만한 이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빈 밭에서는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해는 아직 산마루에 걸려 있었으나 골짜기에는 벌써 그늘이 찼다. 마을 굴뚝에서 저녁 연기가 드문드문 올라오다 낮게 흩어졌다.
여울을 건너며 젖은 짚신이 얼어 발에 붙었다.
김충한이 신을 벗으려 하자 얼어붙은 짚이 벗겨진 뒤꿈치를 당겼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멈췄다. 이수생이 곁에 쪼그려 앉아 신의 뒤축을 벌려주었다. 김충한은 발을 도로 밀어 넣고, 그의 어깨를 짚어 일어섰다.
마을을 지나자 길은 사람 하나 겨우 비켜 설 만한 비탈로 좁아졌다.
산그늘의 눈은 낮에도 녹지 않았다. 눈 아래 낙엽을 밟으면 발이 미끄러졌다. 앞사람이 넘어질 때마다 뒷사람이 팔을 붙들었다. 갈라진 손바닥에서 묻어난 피가 서로의 소매에 남았다.
그들이 찾아든 골짜기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하룻밤 재워달라고 청하자 집주인은 문틈으로 얼굴과 등짐을 번갈아 보았다. 부엌에는 어린아이 둘이 앉아 있었다. 솥에서는 물에 푼 보릿가루가 끓었다. 주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헛간을 가리켰다.
일곱 사람은 짚단을 끌어모아 그 위에 앉았다.
널빤지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발목을 훑었다. 젖은 짚신은 벗지 못했다. 다시 신을 때 부은 발이 들어가지 않을까 두려웠다.
집 안에서 아이가 마른기침을 했다.
김충한이 헛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침이 멎자 품속에 손을 넣었다가, 다시 들리자 마른 떡 한 조각을 꺼냈다. 일곱 몫으로 나누기에는 작았다. 곁에 앉은 이수생에게 내밀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또 기침했다.
김충한은 떡을 든 채 일어섰다. 절뚝거리며 부엌 앞에 가서 주인을 불렀다.
“아이들에게 주시오.”
주인은 떡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길에서 드실 것도 없을 텐데.”
김충한은 떡을 건네고 돌아왔다. 짚단 위에 앉아 손바닥에 남은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이 깊자 이수생이 물었다.
“댁에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김충한은 짚신 끝을 내려다보았다.
“막내가 네 살이오.”
그는 보퉁이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놓았다.
“나올 때 자고 있었소.”
바람이 헛간 문을 흔들었다.
문이 벌어질 때마다 부엌의 불빛이 가늘게 들어왔다. 이수생은 일어나 문 앞에 짚단을 밀어놓았다.
돌아와서는 김충한의 다리 위에도 짚을 얹었다.
관복을 나무에 걸다
며칠 뒤, 일곱 사람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는 깊은 골에 닿았다.
산이 겹겹이 둘러서 있었다. 냇가에는 얼음이 붙었으나 그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 밑의 물안개가 나무 사이에 머물렀다. 돌아보니 넘어온 길도 비탈과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냇가에 등짐을 내려놓았다. 고천우는 바람을 피할 바위를 찾아 둘레를 돌았고, 전오륜은 비탈의 흙을 쥐어보았다. 언 흙덩이는 손안에서 부서지지 않았다.
변귀수가 골짜기 어귀의 소나무 아래에서 보퉁이를 풀었다.
관복을 꺼내 구겨진 옷깃을 폈다. 길에서 묻은 흙을 털자 마른 흙가루가 눈 위에 떨어졌다. 소매를 펴고 앞자락을 여민 뒤 손이 닿는 가지에 걸었다.
나머지 여섯 사람도 차례로 관복을 꺼냈다. 바람이 불자 빈 소매들이 부풀었다가 내려앉았다.
일곱 사람은 나무 앞에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경이 있을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릎을 꿇자 얇은 눈 밑의 돌이 살을 눌렀다. 이마를 땅에 댔다. 차가운 흙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한동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충한은 눈을 감았다.
떠나던 날 막내의 이불 밖으로 나와 있던 발이 떠올랐다. 이불을 끌어 덮어주자 아이는 잠결에 다리를 오므렸다. 그는 그때도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고 방문을 닫았다.
일어나 앉은 뒤에도 그들은 서쪽을 바라보았다. 산에 가려 개경은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관복의 옷깃을 건드렸다.
변귀수가 무릎에 묻은 눈을 털었다.
“이제 어디로 가겠소?”
전오륜이 골짜기 안쪽을 보았다.
“오늘은 바람 막을 곳부터 찾아야겠지요.”
고천우가 냇물 위쪽의 바위를 가리켰다.
“저 뒤라면 밤바람은 덜 맞겠소.”
해가 산 뒤로 넘어갔다. 바위에 남아 있던 빛이 사라지자 냇가의 추위가 짙어졌다.
그들은 관복을 나무에 남겨두고 등짐을 졌다.
몇 걸음 가던 변귀수가 돌아보았다. 가지 끝에서 옷자락들이 흔들렸다. 그는 한동안 서 있다가 일행을 따라갔다.
첫날 밤에는 바위 뒤에 쓰러진 나무 아래에서 잤다.
마른 잎을 긁어모아 몸 위에 덮었다. 잠결에 돌아누우면 잎이 흩어져 서로의 다리를 다시 덮어주었다. 새벽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에 서리가 내렸다.
이튿날부터 나무를 베고 돌을 날랐다.
비탈을 깎아 바닥을 고르고 낮은 돌담을 쌓았다. 억새를 베어 지붕을 이었다. 도끼는 번갈아 잡았다. 물집이 터진 손에 천을 감으면 다음 날에는 그 천이 상처에 붙었다.
고천우는 돌담 틈으로 손을 넣어 바람이 드는 곳을 찾았다. 흙을 이겨 막고 돌아서면 다른 틈에서 찬 기운이 새어 나왔다. 해가 저물도록 담 앞을 떠나지 못했다.
움막을 세운 뒤에도 먹을 것은 모자랐다.
남은 곡식에 물을 넉넉히 부어 죽을 끓였다. 그릇을 비운 뒤에도 배가 고파 불 앞에서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전오륜은 남은 곡식을 작은 그릇으로 재어보고 보퉁이의 입구를 다시 묶었다.
며칠 후 골짜기 아래의 늙은 농부가 찾아왔다. 등짐에는 말린 나물과 곡식이 조금 들어 있었다. 그는 움막 안과 천을 감은 손들을 살폈다.
“봄까지 여기서 지낼 것이오?”
변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먹을 것부터 아껴야겠소. 산은 봄도 늦으니.”
“무엇으로 갚겠소?”
농부는 짐을 내려놓았다.
“겨울부터 넘기시오.”
겨울이 깊어지자 눈이 움막 처마까지 쌓였다.
아침마다 문 앞을 파내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곡식이 떨어진 날에는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빻았다. 오래 끓여도 거친 것이 혀에 남았다.
김위가 열병으로 누웠을 때에는 약을 구하지 못했다.
변귀수는 제 몫의 죽을 그의 곁에 놓았다. 등을 받치고 그릇을 입에 대주었으나 김위는 두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흘러내린 죽이 턱밑에서 식었다. 변귀수는 천으로 닦아주고 그릇을 다시 불 가까이 밀어놓았다.
이수생이 도끼를 들었다. 문을 열자 눈가루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혼자 가지 마시오.”
고천우가 지게를 지고 뒤따랐다. 두 사람의 발자국은 움막에서 몇 걸음 떨어지기도 전에 흐려졌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그들을 비웃었다.
“충절을 솥에 넣고 끓이면 배가 차는가?”
그러면서도 움막 앞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
눈 내린 밤 누군가 말린 나물 한 줌을 놓고 갔다. 며칠 뒤에는 메밀 한 됫박이 문 옆에 놓였다. 밖에 나가보면 발자국은 벌써 눈에 덮여 있었다.
봄이 와도 골짜기의 눈은 오래 남았다.
볕이 드는 비탈부터 흙이 드러났다. 낮에 녹은 물이 움막 앞을 적셨다가 밤이면 다시 얼었다. 일곱 사람은 아침마다 하늘과 밭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씨를 뿌릴 무렵, 늙은 농부가 조와 메밀 종자를 가져왔다.
“먹으면 며칠은 버티겠지만, 심으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하오.”
그는 조 한 되와 메밀 두 되를 덜어주었다. 전오륜은 곡식을 받아 들고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움막 안으로 가져갔다. 먹을 곡식을 넣던 보퉁이와 떨어진 곳에 내려놓았다.
일곱 사람은 나무뿌리를 캐고 돌을 골랐다.
씨를 묻은 뒤에도 싹이 보이지 않자 이수생이 흙을 들춰보았다. 다른 자리도 파보려는데 농부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자꾸 꺼내보면 나올 것도 못 나오오.”
이수생은 손안의 씨를 내려다보았다. 끝에 가느다란 흰 뿌리가 나와 있었다. 그는 씨를 도로 놓고 흙을 덮었다.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누르지 않았다.
비가 내리자 잘못 낸 물길을 따라 밭흙이 쓸려갔다. 어린 싹이 뿌리를 드러낸 채 누웠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흙을 모아 덮었다. 고천우가 돌을 날라 물길 위쪽을 막았으나 물은 돌 옆으로 돌아 밭에 들었다.
가을에는 메밀꽃이 이른 서리를 맞았다.
아침에 나가보니 잎 가장자리가 검게 말라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자 꽃이 부서져 떨어졌다.
첫해에 거둔 곡식은 겨울을 넘기기에 모자랐다.
이듬해 봄, 농부는 쟁기를 가지고 올라왔다. 돌이 많은 곳에서는 손잡이를 눌러 날을 비켰다.
“힘으로 밀면 쟁기만 부러지오. 걸리는 데가 있으면 멈추시오.”
이수생은 쟁기를 잡고 나아가다가 날이 걸리자 멈췄다.
고천우가 흙을 헤쳐 돌을 꺼내주자 다시 고랑을 냈다.
마을 아낙들은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을 가려주었다. 변귀수가 따놓은 잎 가운데 하나를 집어 던지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잎을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두 잎을 나란히 놓고 잎맥과 줄기를 살폈다.
나무꾼을 따라간 날에는 비를 맞은 가지를 도끼로 쪼갰다.
젖은 껍질 안에서 마른 속살이 드러났다. 변귀수는 그 나무를 따로 모아 지게에 실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들도 마을의 일에 손을 보탰다.
김을 매고 무너진 지붕에 이엉을 얹었다. 사람이 죽으면 상여를 메고 산길을 올랐다. 처음에는 호미질이 서툴러 조 싹까지 뽑았으나, 이듬해에는 마을 사람들과 나란히 밭고랑을 걸었다.
글이 필요한 날에는 붓을 들었다.
전오륜은 곡식을 빌린 사람과 내준 사람을 앞에 앉히고 양을 확인했다. 한쪽이 말하면 다른 쪽에도 물었다. 두 사람의 말이 맞고서야 나무패에 글자와 금을 새겼다. 패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하나씩 가지게 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두 조각을 맞대어 제 몫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아이들이 움막을 찾아왔다.
변귀수는 나무판에 숯으로 이름을 써주었다. 아이들은 손을 입김으로 녹인 뒤 숯을 쥐었다. 획을 긋다가 숯이 부러지면 변귀수가 작은 조각을 주워 다시 쥐여주었다.
김충한은 불 곁에서 아이들의 젖은 짚신을 돌려놓았다. 너무 가까이 놓인 것은 뒤로 물리고, 마른 것은 문가에 나란히 세웠다. 아이 하나가 발을 오므리자 짚신 안에 손을 넣어 아직 축축한 곳이 있는지 살폈다.
문가의 어른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짚신에 붙은 눈이 녹아 문턱을 적셨다.
변귀수는 한 아이가 쓴 나무판을 들어 보였다.
“이 글자가 네 이름이다.”
아이는 나무판과 변귀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같은 이름을 그 아래 한 번 더 썼다. 잘못 쓴 획을 지우다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러 뺨에 검은 자국이 났다.
문밖의 어머니가 들어와 소매로 그 뺨을 닦아주었다.
“이게 네 이름이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나무판을 받아 들었다. 손가락으로 글자 곁의 빈 곳을 짚었다가 돌려주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이가 판을 품에 넣고 두 손으로 눌러 안았다.
아이들이 떠난 뒤 변귀수는 나무판의 숯가루를 털었다.
밖에 세워둔 지게를 지고 소나무 아래로 난 길을 걸었다.
관복을 걸었던 가지에는 눈이 얹혀 있었다. 옷은 오래전에 해지고 삭아 없어졌다. 변귀수는 잠시 가지를 올려다보다가 지게 끈을 고쳐 잡았다.
해가 지기 전에 마른 나무를 더 해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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