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희 기자 역사소설 연재 무은담의 교단 재건에서 농민군 3천여 명 항쟁까지
녹도의 비극과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그리다
1894년 가을, 정선에 동학농민군(東學農民軍) 3천여 명이 모였다.
당시 강릉부사 이회원(李會源)이 강원감영과 주변 관아 등과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동비토론(東匪討論)』에 실린 정탐 보고에서 확인되는 규모다.
정선·영월·평창의 농민군은 제천·청주 등지의 농민군과 연합해 정선 관아를 점령했다.
정선신문은 김광희 기자의 역사소설 `녹도아리랑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을 연재한다.
왜 산골 정선에 수천 명의 농민군이 모였으며, 그들은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묻는 작품이다. 무은담에서 이어진 교단 재건과 포교부터 농민군의 항쟁, 녹도의 비극과 남겨진 가족들의 삶까지 따라간다.
정선의 항쟁을 이해하려면 갑오년에서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72년 해월 최시형(崔時亨)은 남면 문곡리 무은담(霧隱潭)의 유시헌(劉時憲) 집으로 피신했다. 무은담은 이후 비밀 포교의 거점이 됐다.
같은 해 겨울 갈래산 적조암(寂照庵)의 수련에는 영월·정선·단양 지역 교도들이 모였다.
탄압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산골에서 다시 만나 가르침을 익히고 결속을 다졌다.
유시헌은 은신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강원도 평의장과 도접주를 맡아 교세 확산과 지역 동학 세력의 결집에 힘썼다. 정선에는 항쟁 이전부터 지도자와 교도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조직의 기반이 있었다.
백성들이 바꾸려 했던 현실도 기록에서 드러난다.
『동비토론』의 1894년 음력 9월 8일 감영 지시에는 정선·영월·평창 등지의 동학 세력이 삼정(三政)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뜻을 내세웠다고 적혀 있다.
관아는 이를 ‘사칭’과 ‘핑계’로 깎아내렸지만, 농민들이 조세와 부역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에도 남았다.
이 자료들을 종합하면 정선의 대규모 집결은 오랜 포교와 조직의 기반, 잘못된 정사에 대한 저항, 인접 지역 농민군의 연합이 맞물린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산골에서 이어온 교도들의 결속이 여러 고을의 사람들을 모으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소설은 이 역사적 배경을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풀어낸다. 정선군수 오횡묵(吳宖默)의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 유시헌의 아들 유택하(劉澤夏)가 남긴 『동학난중기(東學亂中記)』, 『동비토론』·『임영토비소록』 등의 사료와 지역 전승을 바탕으로 무은담과 적조암, 싸내와 여량, 강릉 관아와 녹도를 인물들의 발걸음으로 잇는다.
녹도는 본래 조양강 가운데 있던 섬이었다.
다리가 놓이고 부지가 확장되면서 육지와 이어졌고, 지금은 그 일대에 정선역과 아라리촌이 들어서 있다. 작품은 오늘의 익숙한 풍경에서 갑오년 겨울로 들어간다. 물가에서는 살얼음이 깨지고, 눈 덮인 자갈밭에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누워 있다.
중심인물은 아우라지 뱃사공 변무진과 동백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이들은 봄에 뿌릴 씨앗을 팔러 가는 작인, 죽은 가족의 군포를 대신 내야 하는 사람, 금점에서 일하고도 빚을 벗어나지 못한 광부들이다.
곡식을 내고 나면 겨울을 날 것이 없고, 다쳐서 쉬면 먹은 밥값까지 빚에 붙는다.
이들의 살림 속에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가르침은 씨앗을 빼앗기고 아이를 굶기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물음이 된다.
무진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강물이 풀리기 전에 돌아와 감자를 심고, 동백의 머리에 맞는 나무비녀를 다시 깎고, 봄이면 혼례를 치르려 했다.
그러나 제1부 「목 없는 섬」에서 동백은 무진의 몸을 찾아 녹도로 들어간다.
얼굴을 잃은 주검들 사이에서 그녀의 손을 멈추게 하는 것은 회색 저고리 소매 안쪽의 검은 실밥 세 땀이다. 지난가을 직접 기워준 자리다. 다시 깎아주겠다던 비녀는 아직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다.
“돌아오신다면서요.”
정선 집결 인원 3천여 명은 녹도의 희생자 수를 뜻하지 않는다. 기록이 부족한 전투와 시신 수습의 세부 과정은 창작으로 구성했다.
『녹도아리랑』은 장례 뒤에도 계속되는 생활을 그린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이를 먹이고 식은 방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함께하던 사람이 하던 일까지 떠안고 다시 강으로 나간다. 그 길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한 사람이 목이 메어 멈춘 소절을 곁의 사람이 받아 부른다.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억하면서도,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배를 띄워야 하는 사람들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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