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병세는 좋아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재활치료를 받은 날에는 오므라든 왼손 손가락이 조금 펴졌다.
치료사가 허리를 받쳐주면 평행봉을 붙잡고 서너 걸음을 떼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몇 걸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병실 문까지, 그다음에는 복도 끝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자 재활치료를 받는 횟수가 줄었다.
어렵게 되찾은 동작들은 하나씩 다시 아내에게서 멀어졌다. 펴졌던 손가락은 손바닥 안으로 말려들었고, 굳은 팔꿈치는 가슴 쪽으로 당겨졌다. 왼쪽 다리는 무릎과 발목이 뻣뻣해져 바닥에 내려놓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뇌출혈은 이미 멎어 있었다.
병이 다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재활이 줄고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근육은 약해졌고 관절은 굳어갔다. 한 번 잃은 기능을 대신해 버티던 몸마저 세월 앞에서 조금씩 지쳐갔다.
그렇게 뇌출혈이 남긴 후유증은 아내에게서 한 가지씩 가져갔다.
먼저 두 손으로 단추를 잠그는 일을 가져갔다.
다음에는 국그릇을 붙들고 혼자 숟가락질하는 일을 가져갔다. 계단을 빼앗고, 혼자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있던 마지막 사생활을 빼앗고, 마침내 침대 위에서 제 몸을 돌려 눕는 일까지 가져갔다.
말도 조금씩 짧아졌다.
아내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웃었고, 아이들 이름을 들으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알아듣는 힘은 그대로였지만 굳어진 입술과 혀로 말을 끝까지 밀어내는 일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첫 음절은 힘겹게 나왔지만 그다음 소리는 입안에서 뭉개졌다. 다시 말하려고 힘을 줄수록 발음은 더 흐려졌고, 목소리는 숨에 섞여 작아졌다.
처음에는 서너 마디를 이어 말했다.
“물 좀…… 줘.”
“허리가…… 아파.”
시간이 지나자 한두 낱말만 남았다.
“물…….”
“허리…….”
몸이 지친 날에는 그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같은 소리를 몇 번씩 되풀이하다가 성한 오른손으로 물컵을 가리키거나 아픈 곳을 두드렸다. 끝내 알아듣지 못하면 입술을 다물고 얼굴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은 아내의 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을 세상 밖으로 밀어낼 입술과 혀가 아내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아내 앞에 몸을 낮추고 하나씩 물었다.
“물 줄까?”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허리가 아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가고 싶어?”
그제야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아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난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 나는 먼저 아내에게서 대답을 확인한 뒤 대신 말했다.
물을 달라는 겁니다.
왼쪽 다리가 당긴답니다.
오늘은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군요.
내가 말을 옮기는 동안 아내는 내 입을 바라보았다.
자기 말이 제대로 세상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지켜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틀리면 오른손으로 이불을 두드리거나 입술을 세게 다물었다. 그러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물었다.
물인지, 가래를 닦아달라는 것인지,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달라는 것인지.
몇 번이고 묻고 지우다 보면 비로소 아내의 말 한마디가 완성되었다.
나중에는 소리가 없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눈길이 머무는 곳과 입술이 떨리는 모양, 오른손이 이불 위를 더듬는 방향만 보아도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밤중에 아내의 숨소리가 달라지면 몸을 돌려주었고, 오른손이 목으로 올라가면 물부터 찾았다.
나는 아내의 남편이면서 아내와 세상 사이에 남은 한 사람의 통역사가 되었다.
내가 대신 꺼낸 문장이 맞는지 물으면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돌아간 입가를 조금 들어 올렸고, 때로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가 내 말을 바로잡는 일은 줄어들었다.
내가 마침내 아내의 마음을 모두 알아듣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아내가 틀린 말까지 고쳐줄 힘을 잃은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아내가 말을 잃어갈수록 나는 더 오래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날에는 귀찮다는 이유로 눈을 감았던 얼굴이었다.
외래진료를 받으러 간 날,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수술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없습니까?”
의사는 아내의 뇌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검고 흰 음영이 겹쳐진 한쪽을 마우스로 짚었다. 그곳에 오래전 아내의 몸을 무너뜨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수술로 제거해야 할 혈종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마비는 출혈 당시 손상된 뇌 기능과 관련돼 있습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혈압을 철저히 관리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근육의 경직과 관절의 구축을 늦추고 남아 있는 기능을 지키기 위해 재활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회복을 위한 재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재활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아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분 모두 많이 지치신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오래 참아온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아내를 돌본 것은 나였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지쳤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다면 생활을 조금 단순하게 바꾸는 것도 좋습니다. 익숙하고 조용한 곳에서 쉬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고요.”
의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당부하듯 덧붙였다.
“다만 어디로 가시든 정기진료와 재활치료는 이어가셔야 합니다. 쉬는 것과 치료를 멈추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요.”
나는 다시 화면 속 아내의 뇌를 바라보았다.
희고 검은 음영 사이에 작은 얼룩 하나가 박혀 있었다.
저 작은 흔적 하나가 아내의 왼쪽 몸을 가져가고, 혼자 해낼 수 있던 수많은 일을 가져갔다. 끝내는 입안에 남아 있던 말까지 흐려놓았다.
그 많은 것을 빼앗아놓고도 화면 속 얼룩은 고요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병원을 나서자 늦은 오후의 햇빛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눈을 찔렀다.
나는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현관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구급차 한 대가 사람을 싣고 떠났고, 택시는 또 다른 환자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픈 몸을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거나, 완전히 낫지 못한 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 담요를 끌어올려 주었다.
“우리 조용한 데로 갈까?”
아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태어난 정선으로 가자. 산도 있고, 마당도 있는 집으로.”
아내는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눈동자만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것을 동의라고 믿었다.
어쩌면 지친 사람이 더는 반대하지 않는 몸짓이었는지도 몰랐다. 내 소망을 아내의 대답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한 번 더 묻지 않았다.
다시 물으면 아내가 고개를 저을 것 같았고,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길마저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는 치료를 포기하려고 정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정선에서도 정기진료와 재활치료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다만 남아 있는 시간을 병원 복도와 약봉지 사이에서만 보내지는 않으려 했다.
아내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 병이 남은 날의 풍경까지 가져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산이 보이는 마당에 아내를 앉혀주고 싶었다.
저녁이면 처마 끝으로 해가 내려가고, 밤이면 오래 잊고 살았던 별들이 하나씩 돌아오는 곳. 그곳에서는 아내가 잃어버린 말 대신 바람이 말을 걸어줄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손 위에도 햇빛은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것이 회복은 아니더라도 삶일 수는 있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가 젊은 날부터 이십오 년 넘게 운영하며 먹고살아 온 식당은 사억 원에 팔렸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중개사가 권리금과 잔금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내는 주방만 바라보았다. 새 주인은 냉장고와 식탁을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우리가 수십 년 넘게 손에 익혀온 국자와 칼까지 값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 일억 원으로 정선 신동읍 동강변의 작은 농가주택을 샀다. 집 앞에는 백 평이 넘는 텃밭이 딸려 있었다. 감자와 배추를 심으면 늙은 두 사람이 하루를 보낼 일도 생기고, 먹을거리 걱정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은 삼억 원 가운데 딸과 아들에게 일억 원씩 나누어주었다.
마지막 일억 원은 아내의 치료비와 우리 두 사람의 생활비로 남겨두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통장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치료비로 쓰세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너희 키우려고 번 돈이다. 집이라도 마련해라. 우리는 저 집 한 채면 된다.”
아내도 힘이 남은 오른손으로 통장 두 개를 아이들 앞으로 밀었다.
통장이 식탁 위를 미끄러져 아이들의 손 앞에서 멈췄다.
아이들은 몇 번이나 우리 얼굴을 살피다가 끝내 통장을 받아들었다. 딸은 가방에 넣지 못하고 무릎 위에 올려두었고, 아들은 통장 모서리만 만지작거렸다.
그때 우리는 몰랐다.
평생 일해 마련한 사억 원 가운데 집 한 채와 일억 원만 남겨두고도 마음이 든든했다.
백 평의 밭과 아내에게 남은 한 손, 그 손을 붙들 내 두 손이면 남은 생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병은 돈보다 오래 남았고, 서로를 붙들던 손은 우리 생각보다 먼저 늙었다.
집을 사고 아이들에게 통장을 건네고 나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동강변의 낡은 집 한 채와 치료비로 남겨둔 일억 원이었다.
집은 신동읍 마을 끝 야산에 있었다.
방 두 칸에 백 평 남짓한 밭이 딸린 작은 농가주택이었다.
마당에 서면 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밤이면 물 흐르는 소리가 골짜기를 채웠다.
정기진료를 받는 병원까지는 차로 오십 분이 걸렸다.
불편한 대신 집값이 쌌고 사람들의 눈을 덜 마주쳐도 되었다.
처음 몇 해는 견딜 만했다.
나는 아내를 부축해 마당을 돌았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평상에 앉혀 머리를 감겼다. 아내의 젖은 머리에서 오래전 식당 주방에서 맡았던 비누 냄새가 났다.
감자를 캐는 날이면 가장 둥글고 흠집 없는 것을 골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감자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내는 오이를 얇게 썰어 넣은 상추겉절이를 좋아했다.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 오면 나는 오이와 고춧가루와 식초를 넣어 버무려 식탁에 올렸다.
아내는 늘 오이부터 골라 먹었다.
그러나 씹는 힘이 약해지면서 젓가락은 겉절이 위에서 자주 멈췄다.
아내는 상추 한 장을 오래 씹다가 끝내 접시 가장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날부터 상추겉절이는 내 앞에만 놓였다.
나는 아내가 먹지 못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려고 남김없이 먹었다.
식탁에서는 여전히 아삭한 소리가 났다.
다만 그 소리를 좋아하던 사람이 씹는 소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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