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인 딸이 태어난 날, 나는 분만실 밖 복도를 서른 번도 넘게 오갔다.
문 안에서 아내의 신음이 들릴 때마다 달려가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붙이를 쥐었다 놓는 동안 냉기가 손바닥 깊이 배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내는 한 생명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서 있었다.
간호사가 나올 때마다 얼굴부터 살폈다.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도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새벽녘, 문틈으로 아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막 도착한 것의 울음치고는 뜻밖에 크고 성이 나 있었다.
간호사가 수건에 싸인 아이를 잠깐 보여주었다. 얼굴은 벌겋고 눈두덩은 퉁퉁 부어 있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작은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손을 내밀면 부서질 것 같아 가슴 앞에서 주먹만 쥐었다.
“딸이에요.”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보다 먼저 듣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산모는요?”
“괜찮아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제야 벽에 등을 기댔다.
밤새 나를 버티게 하던 힘이 그 한마디와 함께 빠져나갔다.
병실로 옮겨진 아내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이마에 붙인 채 누워 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내가 손을 잡자 아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물었다.
“애 봤어?”
“봤어.”
“누구 닮았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직은 아무도 안 닮았어.”
아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다 아랫배가 당기는지 금세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미역국을 한 숟갈 떠서 입김으로 식혔다. 손이 자꾸 떨려 숟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쳤다.
아내가 겨우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애는 내가 낳았는데 왜 당신이 떨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내가 살아서 내 앞에 누워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 딸은 두 시간마다 울었다.
아내와 나는 이불 한가운데 아이를 눕혀놓고 번갈아 숨을 확인했다. 콧구멍 아래에 손가락을 대보고, 조그만 가슴이 오르내리는 횟수를 세었다.
“너무 조용한데?”
“방금까지 울었잖아.”
“그래도 한번 깨워볼까?”
우리는 겨우 잠든 아이를 깨웠고, 다시 울기 시작한 아이를 번갈아 안고 새벽까지 방 안을 돌았다.
날이 밝을 무렵, 아내가 내 팔에 잠든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한테도 이런 게 왔네.”
기쁨을 두고 ‘이런 것’이라고 말한 것이 우스워 우리는 소리 내 웃었다. 아이가 놀라 얼굴을 찡그리자 둘이 동시에 입을 막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다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딸이 아직 혼자 걷지도 못하던 때였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돈을 먼저 생각했고, 아내는 말없이 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어떡하지?”
내가 묻자 아내가 대답했다.
“왔는데 어떡하긴. 만나야지.”
딸이 첫돌을 맞기 한 달 전, 아들은 예정일보다 열흘 일찍 세상에 나왔다.
나는 딸을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무슨 잔칫날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아이를 먼저 품에 안았다.
아들은 누나보다 울음이 컸고 손가락도 길었다. 아내가 아이의 손바닥에 새끼손가락을 넣자 조그만 손이 힘껏 오므라들었다.
“봐. 나를 알아.”
“잡히는 건 다 잡는 거야.”
“당신은 아버지가 두 번째라 그런지 감동도 없네.”
나는 괜히 창밖을 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먼저 웃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딸을 데리고 다시 병실로 갔다.
아내는 침대에 기대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고, 나는 딸을 무릎에 앉힌 채 침대 곁에 붙어 앉았다. 딸이 동생의 볼을 손가락으로 눌러보더니 제 과자를 아기 입에 넣으려 했다.
“안 돼.”
우리 둘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놀란 딸이 울었고, 그 소리에 아들도 따라 울었다.
아내는 갓난아이를 달래면서 딸에게 발을 내밀었다.
딸은 어머니의 엄지발가락을 붙잡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나는 울고 있는 두 아이와 머리가 헝클어진 아내를 바라보았다.
먹여 살릴 입이 둘이나 늘었는데도 그때만큼 부자였던 적이 없었다.
아내는 첫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기도 전에 또 하나의 생명을 받아 안았다.
한쪽에서는 딸이 젖을 달라고 울고, 다른 쪽에서는 아들이 기저귀를 적셨다. 단칸방에는 삶은 기저귀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젖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울음 하나가 그치면 다른 울음이 시작되었고, 한 아이를 재우고 나면 다른 아이가 눈을 떴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날보다 아이 하나씩을 안고 등을 돌린 채 밤을 지새우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무렵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던 그 밤들이 훗날에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생에서 가장 짧고 환한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아내의 몸은 두 번의 출산 사이에서 회복할 틈이 없었다.
딸을 안고 아들에게 젖을 먹였고, 아들을 업은 채 딸의 기저귀를 갈았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아내는 아이가 깰까 봐 입술을 깨물어 삼켰다.
나는 새벽 일을 핑계 삼아 벽을 보고 누웠다.
등 뒤에서 이불이 걷히고 아내가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 들렸다. 울음을 달래며 좁은 방을 오가는 발소리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숨소리까지 고르며 잠든 척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잠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내의 아픔을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눈을 감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기쁜 날들은 찾아왔다.
딸이 처음 아버지라고 부른 날,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술을 샀다.
아들이 방문턱을 붙잡고 세 걸음을 걸었을 때 아내는 국자를 든 채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네 식구가 처음 바다에 갔던 여름, 아이들은 파도를 보고 무섭다고 칭얼거리다가 곧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젖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두 아이의 손을 번갈아 잡았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이들은 우리 무릎에 하나씩 누워 잠들었다. 아내가 창에 비친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일지도 몰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이 잠든 뒤 버스 창밖으로 검은 바다가 따라왔다.
아내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느닷없이 물었다.
“우리 둘 중에는 누가 먼저 죽을까?”
“좋은 날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나는 아들의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무릎을 세워 받쳤다.
“내가 먼저 가야지.”
“왜?”
“당신 없는 집에서 내가 뭘 해.”
아내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파도가 버스와 나란히 달리다가 끊어졌다.
“나는 당신 먼저 보내기 싫어.”
“그럼 같이 가든가.”
“아이들은 어떡하고.”
우리는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내려다보았다.
딸은 아내의 치마를 움켜쥐고 있었고, 아들은 내 셔츠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누가 먼저 가든, 같이 산 마음까지 버리지는 말자.”
“마음은 어떻게 버려.”
“남은 사람이 너무 오래 울면 같이 산 좋은 날도 다 슬퍼지잖아.”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때는 약속할 수 없는 일을 약속했다는 것도 몰랐다.
버스가 굽은 길을 돌 때마다 창에 비친 네 식구가 서로 겹쳤다가 떨어졌다. 아내는 눈을 감았고, 나는 어깨가 저려도 움직이지 않았다.
식당을 연 것은 딸이 학교에 들어간 뒤였다.
처음에는 열 평 남짓한 백반집이었다.
새벽 다섯 시면 아내가 쌀을 씻고 나는 시장에서 채소를 받아왔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고등어조림이 번갈아 상에 올랐다.
점심때가 되면 공사장 인부들과 기사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아내는 앞치마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여섯 개의 상 사이를 오갔다.
아내는 남이 남긴 밥 한 숟갈은 아까워하면서도 제 몸이 닳아가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서서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웠고, 손님이 남긴 고기 몇 점으로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밤 열한 시에 문을 닫은 뒤에는 허기를 참지 못해 찌개에 밥을 말았다.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제멋대로였다.
살은 조금씩 붙었고 무릎은 자주 부었다. 혈압이 높다는 말을 들었지만 병원에 갈 반나절을 내지 못했다.
“이번 달만 넘기고 가자.”
이번 달은 다음 달이 되었고, 다음 달은 십 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식당에서 자랐다.
딸의 학원비도, 아들의 등록금도 기름 냄새 밴 지폐에서 나왔다.
딸이 대학에 합격한 날, 아내는 식당 손님들에게 음료수를 한 병씩 돌렸다.
딸의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아내의 얼굴은 오래 환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던 날에는 새벽부터 불고기를 재우고 꼬막을 삶았다. 입을 벌린 꼬막마다 양념장을 얹고,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상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아들은 밥을 몇 술 뜨지 못했다.
아내는 더 먹으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식어가는 불고기만 뒤집었다.
터미널에서도 아내는 울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아들의 옷깃만 여며주었다.
버스가 떠난 뒤 식당으로 돌아온 아내는 아들이 일손을 거들 때마다 두르던 앞치마를 빨랫줄에서 걷었다. 반듯하게 접으려 할수록 자꾸만 모서리가 어긋났다.
아내는 끝내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난 뒤에도 식당은 남았다. 식탁마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세월이 얼룩처럼 배어 있었다.
넷이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이 둘만 남은 뒤에는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돈을 벌었지만 함께 밥을 먹는 법을 잊었다.
아내는 주문이 뜸해진 틈에 주방 한구석에서 몇 술을 떴고, 나는 손님이 빠져나간 홀의 빈 상에 앉아 식은 밥을 삼켰다.
한 식당에서 하루를 보냈으면서도 우리는 좀처럼 마주 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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