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수진은 상자를 다시 열었다.
장부 위에 이통장협의회 조끼가 놓여 있었다.
등판의 ‘함께 사는 해원’이라는 글씨는 여러 번 빨아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수진은 조끼를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
담배와 땀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라면 빨래통에 먼저 넣었을 냄새였다.
지금은 세탁기에 넣는 순간 사라질 것 같아 잠깐 더 들고 있었다.
조끼 아래에는 수첩이 있었다.
행사 날짜와 사람 이름, 전화번호, 물건을 가져다줄 집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이름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고 어떤 이름은 한 줄로 지워져 있었다.
같은 사람을 다른 장에 다시 적어놓은 곳도 있었다. 아버지에게만 보이는 순서가 있었을 것이다.
연탄가게 이름 옆에 금액이 적혀 있었다.
수진은 그 장에 종이를 끼웠다.
몇 장을 더 넘기다가 철물점 이름도 찾았다. 돈을 갚으면 지워도 되는 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강기호에게 아버지가 덜 낸 회비가 있는지 문자로 물었다. 없다는 답이 왔다. 관리동에 둔 파크골프채와 공 가방은 챙겨놓았으니 나중에 가져가라는 말이 붙었다.
수진은 수첩에 ‘회비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날짜’라고 쓰다가 펜을 멈췄다.
아버지가 어느 날을 찾았는지 물으면 강기호는 그날의 통화를 다시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수진이 모르는 날짜를 말해줄 수도 있었다. 그 말을 정말 듣고 싶은지 헤아리는 동안 휴대전화 화면이 꺼졌다.
수진은 다시 화면을 켜 답장만 보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의논해서 연락드릴게요.’
철물점과 연탄가게 옆에 적힌 금액을 더했다. 두 숫자는 어렵지 않게 하나의 답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대문 밖에서 빗자루 끄는 소리가 났다.
눈은 새벽에 그쳐 있었다.
수진이 창밖을 보니 박성태가 골목 쪽으로 눈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문에서 길 가운데까지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폭이 나 있었다. 쓸어낸 자리에는 얇은 물기가 번들거렸고 양옆으로 밀린 눈은 빗자루 끝에 눌려 회색으로 뭉쳐 있었다.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박성태는 허리를 펴고 빗자루를 담에 기댔다.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형수님, 길이 미끄러워서요.”
어머니는 문 안에 선 채 대답하지 않았다. 박성태가 장갑 낀 손을 비볐다.
“잠깐만 뵙겠습니다.”
“빈소에는 안 들어오더니요.”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몸을 비켰다.
박성태는 신발에 붙은 눈을 털고 안으로 들어왔다. 밑창에 남은 눈이 현관 타일 위에서 금세 녹았다.
수진은 걸레를 가져오려다가 그가 식탁에 앉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박성태는 자리에 앉고서야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 하나씩 잡아당겨 빼낸 장갑을 무릎 위에 놓았다.
손등의 굵은 핏줄 사이로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기호한테 회비 물었다면서. 집에들 있을 것 같아서 왔다.”
수진은 수첩을 덮었다.
자신과 강기호 사이를 오간 짧은 문장이 벌써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장례식장 앞까지는 갔습니다.”
수도꼭지가 잠겼다.
“들어가서 형수님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요.”
“와서 절만 하고 가면 되지요. 무슨 말이 필요해요.”
박성태는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장갑의 손가락 하나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그날 밤에도 운동장 쪽으로 가기는 했습니다.”
어머니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런데 왜 돌아갔어요?”
“혼자 계신다니까 가보려고 했어요. 가다가 군청 앞 회전교차로에서 집 쪽으로 돌렸습니다.”
가스레인지가 몇 번 딱딱거린 뒤 불이 붙었다. 어머니는 손잡이를 쥔 채 박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날은 가기가 싫었습니다.”
수진은 그가 더 말하지 않으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박성태는 침묵을 오래 두지 않았다.
“행사 끝나면 형님은 사람들하고 식사하러 가셨습니다. 저는 남아서 천막 걷고 의자 실었고요.”
그는 장갑 끝에서 풀린 실밥을 엄지로 눌렀다.
“한번은 저도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 앞에서 자네가 바쁠 일이 뭐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찻잔을 꺼냈다.
“그날도 마지막에 천막 확인해달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얘기는 나한테 한 적이 없었어요.”
“형님한테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부르면 또 갔으니까요.”
박성태는 뒤집히다 만 장갑을 무릎 위에서 구겼다. 주전자 주둥이에서 김이 오르자 어머니가 불을 껐다.
“들어가 쉬시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말을 듣고 집으로 갔고요.”
수진은 녹음 끝에 남아 있던 아버지의 대답을 떠올렸다.
‘그래.’
그 말을 듣고 돌아간 사람이 지금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해 어머니만 찾았던 자신의 목소리도 뒤따라 떠올랐다.
잠시 후 박성태가 장갑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평소처럼 천막집에 전화했습니다. 회장님이 부탁한 천막 열다섯 동이 맞는지 확인하려고요.”
박성태는 빈 주전자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찻잔에 물을 따랐다. 수진은 잔을 박성태 앞으로 조금 밀었다.
그는 손을 대지 않았다. 따뜻한 김이 그의 얼굴 앞에 잠시 머물다가 흐려졌다.
“장례식장에서도 자꾸 그 교차로가 생각났어요. 그런데 화환 앞에 서니까 또 서운한 생각이 나고. 다들 형님이 좋은 일만 하셨다고 하고…….”
박성태는 남은 말을 삼켰다.
“형수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닌데요.”
수진은 장례식장 뒤편에서 들은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죽어서도 수금하고 가네.’
그때 박성태는 구두로 담배를 비벼 끄며 웃었다.
수진은 지금 그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자신도 거기 있었다고, 다 들었다고 말하면 박성태의 얼굴이 달라질 것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더 할지도 몰랐다.
수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왜 웃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군청 앞에서 차를 돌리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살았겠느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기다렸어요.”
“죄송합니다.”
창밖에서 눈 녹은 물이 처마 끝을 떠났다. 떨어지는 간격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찻잔을 들지 않았다. 박성태는 무릎 위의 장갑을 가지런히 포갰다.
수진은 수첩을 펼쳤다. 금액을 적은 장을 찾는 동안 박성태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왔다.
“천막 빌린 돈도 남았어요?”
박성태가 고개를 들었다.
“천막?”
“금요일 행사 때 쓴 것요. 열다섯 개.”
“그건 군에서 내는 거야. 네 아버지 돈으로 하는 게 아니고.”
“네.”
수진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물을 수 있는 질문 하나가 끝났다.
박성태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는지 입술을 조금 떼었다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일어났을 때 어머니는 현관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수진만 문 앞에 섰다.
박성태는 손가락을 넣어 구두 뒤축을 당겨 신었다. 대문을 나서다 쓰러진 빗자루를 발견하고는 주워 마당 안쪽에 기대놓았다. 눈을 쓸어 만든 길 위로 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수진은 걸레를 가져와 의자 밑을 닦았다. 녹은 눈에 섞인 흙이 천에 묻어났다.
어머니가 물었다.
“더 물어볼 게 있었니?”
수진은 걸레를 접어 깨끗한 면을 바닥에 댔다.
“엄마는?”
어머니가 식은 찻잔들을 모았다.
“나는 오늘은 그만 듣고 싶다.”
수진은 젖은 자리를 마저 닦았다.

철물점 처마에는 녹지 않은 눈이 길게 매달려 있었다.
수진이 문을 열자 위에 달린 작은 종이 흔들렸다. 윤활유와 고무호스 냄새가 났다.
벽에는 길이가 다른 못 봉지가 줄지어 걸려 있었고 계산대 아래에는 먼지가 내려앉은 전기난로가 놓여 있었다.
주인은 안경을 쓰고 장부를 펼쳤다.
‘해원군이통장협의회’라고 적힌 줄 아래로 아버지의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호스, 못, 혼합수전, 밸브 부속. 몇 줄은 붉은 펜으로 지워졌고 몇 줄은 남아 있었다. 수진이 적어온 금액과 맞지 않았다. 주인은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장부 한 장을 넘겼다.
“이건 지난번에 주고 갔고.”
손가락이 다음 줄로 내려갔다.
“이것하고 이것이 남았네.”
혼합수전과 밸브 부속 옆에 ‘미선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외상을 단 이름은 최병석이었다.
수진은 그 줄에 펜을 대었다가 다른 금액부터 받아 적었다.
“이건 아버지가 가져가셨어요?”
“응. 식당 주인이 그 집 보일러가 고장 났다고 했나 봐. 손을 보고 나니까 뜨거운 물은 나오는데 찬물 쪽이 안 나왔다더라고. 최 회장이 수전하고 밸브부터 가져갔어.”
“아버지가 직접 고치셨어요?”
“설비 하는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했어. 내가 번호를 줬지. 아마 데리고 갔을 거야.”
주인은 그 말에 아무런 뜻도 보태지 않았다. 다음 줄의 금액을 불렀다. 수진은 한 줄 늦게 숫자를 적었다.
아버지도 부속을 가져가던 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섰을 것이다. 계산대 모서리는 오래 닳아 나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수진이 손바닥을 얹자 매끈한 자리와 거친 자리가 한꺼번에 만져졌다.
그 뒤 수도꼭지에서 찬물이 나왔는지는 장부에 없었다.
아버지가 설비 하는 사람과 함께 그 집에 들어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수진은 그것을 도움이라고 먼저 부르려다가 멈췄다.
다른 일의 대가였을 것이라고 단정하려던 마음도 함께 거두었다.
오늘 확인하러 온 것은 아직 갚지 않은 물건값이었다. 수진은 적을 수 있는 것만 적었다.
연탄가게 주인은 외상 장부를 펼쳐 남은 금액을 짚었다.
“이건 안 받을게. 오래된 일이잖아.”
그는 금액 위에 줄을 그었다.
“부조도 얼마 못 했는데, 이것까지 받으면 내가 마음이 불편해.”
수진은 계좌번호를 묻지 않았다. 주인이 그은 줄 아래로 숫자가 희미하게 비쳤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진은 수첩을 폈다. 연탄값 옆에 금액 대신 ‘받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는 철물점에서 받아 온 내역이 있었다. 수진은 ‘미선의 집’이라는 말은 옮겨 적지 않고. 금액만 적었다.
가게에서 받아온 내역서에는 그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자 그 줄이 안쪽으로 사라졌다.
수진은 접힌 종이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다시 펼쳤다.
‘미선의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진은 내역서를 다른 영수증들과 나란히 끼워 넣었다.
저녁이 되자 장부가 다시 식탁 위에 놓였다.
동욱은 장례비 영수증을 펼쳤고, 수진은 확인해 온 외상 내역을 그 옆에 두었다. 현수는 계산기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처음 정산하던 날보다 식탁 위의 돈은 줄고 종이는 늘어 있었다.
“이것까지 우리가 갚아야 해?”
현수가 외상 내역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손목의 수술 자국을 문질렀다. 손을 오래 쓰면 저린다고 했다.
수진은 물건값을 읽어 내려가다 연탄값 앞에서 멈췄다.
“연탄가게에서는 안 받겠대.”
“그럼 빼도 되는 거야?”
“오래된 외상은 부조 대신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어.”
수진은 연탄값에 줄을 그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철물점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수진은 미선의 집에 들어간 혼합수전과 밸브 부속값까지 철물점 합계에 넣었다.
내역서에는 물건을 가져간 집이 적혀 있었지만, 돈을 받을 계좌의 예금주는 철물점 주인이었다.
수진은 합계 금액만 정산표에 옮겨 적었다.
동욱이 비용을 합산했다.
각자의 이름으로 들어온 부조금은 각자 맡고, 아버지 앞으로 들어온 돈에서는 장례비와 확인된 외상값을 빼기로 했다.
봉투 몇 개는 누구 앞으로 온 것인지 의견이 갈렸다. 어머니는 처음 장부에 표시한 대로 하자고 했다.
모든 비용을 제하고 나자 육천만 원 가까이 남았다. 동욱이 그 가운데 오천만 원을 세 남매의 몫으로 나누었다.
어머니 앞으로는 천만 원 남짓이 놓였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으마.”
어머니가 말했다.
“받은 집에 초상 나면 돌려줘야지.”
동욱이 장부 맨 아래에 마지막 숫자를 적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어머니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동욱이 카드로 치른 장례비를 돌려주고 철물점의 외상값을 보냈다.
자녀들 앞으로 들어온 돈도 각자의 계좌로 옮겼다.
수진의 휴대전화에 입금 알림이 떴다.
금액을 확인한 뒤 화면을 껐다. 받지 않겠다고 말할 생각을 한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빈 봉투를 지역별로 나누어 고무줄로 묶었다.
형제들이 돌아간 뒤 수진은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켰다.
연락처에는 여전히 986개의 항목이 있었다.
오재문 앞에는 군의원, 강기호 앞에는 파크골프협회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붙어 있었다. 박성태에게는 이름만 있었다.
화면을 내리자 ‘우리 딸’이 나왔다.
자기 번호였다.
수진은 그 이름을 고치지 않고 문자함으로 넘어갔다.
부고에 도착한 답장들은 짧았다.
해원군을 위해 헌신하신 분.
봉사정신을 남긴 분.
지역의 큰 어른.
그 말을 보낸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버지 덕분에 겨울을 난 사람도 있었다.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은 사람도 있었다.
수진은 답장을 지우지 않았다.
어느 말까지 남겨도 되는지를 자신이 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처음 보낸 부고를 열었다.
아버지의 직함과 이름, 빈소와 발인 시간, 장지가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미 지나간 날짜 아래에 어머니와 세 남매의 이름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부고는 누구에게 갔든 같은 문장이었다.
수진은 문자함으로 돌아가 ‘솔재식당’을 찾았다.
아버지의 전화기에는 끝내 미선의 이름이 없었다.
어머니의 전화기에 저장돼 있던 ‘솔재식당 미선’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지만 연락처를 고치지 않았다.
‘경찰에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그다음에 ‘무서워요’가 있었다.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수진이 보낸 부고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직함과 이름, 빈소와 발인 시간, 장지와 가족들의 이름이 다른 수신인들에게 간 것과 똑같이 적혀 있었다.
미선이 그 문자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미 도착한 부고를 지울 수도, 미선의 화면에서 거두어올 수도 없었다.
수진은 답장을 쓰는 칸에 ‘저는’이라고 적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 머물렀다.
최병석의 딸이라고 이어 쓰면 아버지의 이름이 이 번호에 다시 도착할 것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고 밝히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미선이 읽고 견뎌야 할 문장이 된다는 것은 같았다.
수진은 대화창을 위로 밀었다.
먼저 도착한 문장이 화면 한가운데로 내려왔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 아래에서 ‘저는’이라는 두 글자가 깜박였다.
수진은 두 글자를 지웠다.
방에서 어머니가 불렀다.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수진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잠시 뒤 이름을 다시 불렀다.
“수진아.”
수진은 방문 쪽을 바라보다가 부고를 열었다.
아버지의 직함과 이름 아래로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의 이름이 이어졌다.
마지막 줄에는 자신이 있었다.
딸 수진.
수진은 그 줄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기침 섞인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수진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놓고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장판을 짧게 긁었다.
방문을 열자 어머니 방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복도 바닥에 가늘게 누워 있었다.
수진은 그 빛을 따라 걸어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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