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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부고의 수신인 ⑤] 무서워요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02 0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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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수진은 아버지의 문자함에서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조사를 받기 시작한 뒤 여러 차례 전화를 건 번호였다. 

부고를 보내던 날 수진은 이름 없는 번호에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부고를 보냈다. 

누구의 번호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 위에 아버지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전화 좀 받아라.’

 

수진은 두 문장 사이의 빈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통화기록에는 아버지의 발신이 여러 차례 남아 있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바쁜가 보다 하면서도 아버지는 곧 다시 걸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만날 때까지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두고 일 처리가 빠르다고 했다.

 

문자함을 더 내리자 두 문장이 이어졌다.

‘경찰에 사실대로 말했어요.’

‘무서워요.’

그 뒤로 아버지의 답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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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수진은 화면을 엎어 놓고 번호를 읽어 주었다.

“이 번호 알아?”

어머니는 끝의 네 자리를 다시 물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를 열었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지 화면을 눈에서 조금 멀리했다.

“미선이 번호 같은데.”

“저장해 놨어?”

“식당에 일 나갈 때 전화했지.”

 

어머니가 내민 화면에는 ‘솔재식당 미선’이라고 적혀 있었다. 번호는 같았다.

그제야 수진은 미선에게도 아버지의 부고를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한 사람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빈소와 발인 시간, 장지와 마음 전할 계좌까지 적힌 부고였다. 

그 모든 것이 미선의 화면에도 반듯하게 도착했을 것이다.

 

수진은 두 전화기를 나란히 놓지 않고 아버지의 것만 제 쪽으로 당겼다.

“뭐라고 왔는데?”

“전에 온 거야.”

날짜도 내용도 말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잠시 수진을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수진은 문자가 떠 있는 화면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은 녹음 속에 길게 남아 있었고, 미선의 말은 짧은 문자 세 개뿐이었다.

수진은 그중 가장 짧은 문장을 지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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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기록에는 이름이 저장되지 않은 지역번호도 하나 남아 있었다. 검색해 보니 해원군성폭력상담소였다. 수진은 주소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며칠 동안 그 주소가 적힌 수첩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소는 낡은 상가 건물 3층에 있었다.

1층에는 세지약국이 있었다. 

간판은 빛이 바래 있었지만 수진의 눈에는 ‘세지’라는 두 글자만 또렷이 들어왔다.

‘세지’는 약사의 이름일까. 딸의 이름일까.

수진은 아무 쓸모도 없는 생각에 붙들린 채 건물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미선은 임신테스트기를 사러 약국에 갔다가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고, 그 말을 들은 약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기사에는 약국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 이곳이었을까.

수진은 유리문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미선도 어느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임신테스트기를 찾았을 것이다. 

약사는 미선의 말을 들었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수진은 알지 못했다.

수진은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느 약국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눈은 자꾸 유리문 안쪽으로 향했다.

형광등 아래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약봉지를 접고 있었다. 손끝을 따라 하얀 종이가 반듯하게 포개졌다.

 

수진은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래도 저 손이 미선의 말을 처음 받아 준 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수진은 얼굴을 확인하기 전에 몸을 돌렸다.

약국 옆, 3층으로 이어지는 낡은 유리문을 열었다.

 

계단 중간에 누군가 내놓은 화분이 보였다. 

잎 끝은 갈색으로 말라 있었고, 받침에는 넘친 흙물이 둥글게 굳어 있었다.

  

이 층에는 미용실과 이발소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미용실에서는 드라이어가 낮고 긴 숨을 내뿜었다. 

이발소에서는 가위가 빗등을 따라 서걱거렸다.

“여보, 수건 다 썼어.”

미용실 안에서 여자가 말하자 이발소의 남자가 접어 둔 수건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반쯤 열린 두 문 사이로 염색약의 매캐한 냄새와 면도 비누의 서늘한 향이 섞여 나왔다.

 

수진은 남자에게 길을 비켜 주고 가방끈을 짧게 고쳐 잡았다. 

서로 다른 냄새와 소리가 한집의 살림처럼 뒤섞인 복도를 지나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삼 층 계단 벽에는‘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한쪽 테이프가 들떠 팻말은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수진은 문구를 다 읽고도 한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 이름보다 먼저 누구의 딸인지를 밝혀야 했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김서아 소장이 차를 내왔다.

수진은 외투를 벗지 않았다.

가방을 무릎 위에 세워 놓고 손잡이를 쥐었다. 가방 속 아버지의 휴대전화가 허벅지에 닿았다.

 

“최병석 씨 딸입니다.”

김 소장은 맞은편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얼굴에는 놀람도 경계도 드러나지 않았다.

빈소에서는 사람들이 입을 열기 전에 표정부터 달라졌다. 김 소장은 아무것도 먼저 내보이지 않았다.

수진은 차라리 경계하는 얼굴이 편했을 것 같았다.

 

“아버지 휴대전화에 여기 번호가 남아 있어서요. 아버지도 찾아왔었나요?”

“누가 오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저는 딸인데요.”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진은 가방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딸이라고 밝히면 병원이나 은행에서처럼 다음 절차가 이어질 줄 알았다.

“경찰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요. 아버지는 죽었고, 주변에서는 말만 돌아요.”

 

집에서 적어 온 질문은 가방 속 수첩에 있었다. 

그것을 꺼내는 순간 자신이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인지, 미선의 말을 캐내러 온 것인지 드러날 것 같았다.

수진은 수첩 대신 빈소에서 들은 말을 꺼냈다.

 

“돈을 줬다고 했어요. 그냥 한 게 아니라고.”

“돈을 줬다는 게 무엇을 뜻한다고 하던가요?”

“성매매였다는 뜻 아닌가요?”

“돈이 오갔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요. 어떤 조건에서 건넨 돈인지 확인해야 해요. 분명한 건, 돈이 동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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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옅어졌다.

“미선 씨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갔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를 주었느냐가 아니에요. 미선 씨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는지, 싫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부터 물어야 해요.”

 

수진은 빈소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던 말을 떠올렸다.

얼마를 줬다더라. 그냥 그런 건 아니라더라.

사람들의 입은 돈이 오간 자리에서만 분주했다. 

그 앞에서 미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문 앞에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멀어졌다.

“미선 씨는 싫다고 했나요?”

“그분이 하신 말씀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

 

수진은 가방 속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문장을 떠올렸다.

 

‘무서워요.’

 

“그래도 돈은 받았다면서요.”

“받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살펴야겠지요.”

김 소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수진은 아버지의 손에서 미선의 손으로 건너갔다는 돈을 생각했다. 

액수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돈을 건넨 손과 받아 쥔 손만 보았다. 그 순간 미선의 손이 떨렸는지는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돈을 줬으니 성매매였을 뿐이라고 해요.”

“그렇게 부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겠지요.”

“누구 마음이요?”

 

김 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진은 아버지와 함께 경찰에 불려 갔다는 노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선의 이름 앞에서는 누구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말이 입 밖으로 나가자, 수진은 자신이 ‘그런’이라는 두 글자 뒤에 무엇을 숨겼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남이 어렵다는 말만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우리 집에 쓸 돈까지 꺼내 주던 사람이에요.”

 

김 소장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수진 씨는 그런 아버지를 보셨군요.”

그 말은 수진의 말을 믿는다는 뜻도, 믿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었다. 수진은 찻잔에서 손을 뗐다.

 

열에 들떠 앓던 밤이면 아버지는 대야를 머리맡에 놓고 수건을 갈아 주었다. 

미지근해진 수건을 찬물에 적셔 꼭 짠 뒤 수진의 이마에 얹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짚으며 조금만 더 자라고 했다. 

물에 불어 하얗게 주름진 손가락과 손등에 박힌 검은 점까지 수진은 기억했다.

 

대학 입학식에는 오지 못했다. 

부모들과 사진을 찍는 학생들 사이에 혼자 서 있을 때, 아버지에게서 받침이 틀린 카카오톡이 왔다.

 

‘아빠가 못가서 미안 하다’

‘입학을 추카 한다’

다음 문장이 오기까지는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우리딸 사진한장 보내다오’

수진은 지나가던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혼자 찍힌 사진을 보내자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세운 그림 하나로 답했다.

 

그 손은 밤새 딸의 이마를 식혀 주었고, 평생 남의 집 문을 두드려 연탄과 쌀을 들여놓았다. 

수진은 그 손을 사랑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것을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는 손으로 내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떠올려도 찬 수건의 감촉은 문자 속 두려움을 닦아내지 못했다.

 

‘무서워요.’

 

수진을 살리듯 보살폈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었을 수 있었다. 한쪽이 진실이라고 해서 다른 한쪽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진은 이제야 그것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미선 씨를 만나면 안 될까요?”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가방 속 수첩에는 다른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미선은 아버지를 언제부터 알았는지,진술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물으려 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다른 말이었다.

 

“아버지가 억울하다고 써 놨어요.”

수진은 찻잔의 흰 테두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미안하다는 말도 있었고요.”

“그 말을 미선 씨에게 전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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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입술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미선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면 그 말을 품고 어머니에게 달려갈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고, 이제 그만 의심해도 된다고 말할 것이었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해 찾아온 자신을 미선은 어떻게 바라볼까. 

자신이 겪은 일을 다시 꺼내 놓고, 그보다 먼저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는 딸을 어떤 얼굴로 맞아야 할까.

“저는…….”

말이 목 안에서 걸렸다.

수진은 소매 밖으로 손을 꺼내 찻잔을 감쌌다. 차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은가 봐요.”

입 밖에 내놓고 나서야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진은 얼굴을 숙였다. 

찻잔의 흰 테두리 안에서 식어 버린 차가 조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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