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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부고의 수신인 ④] 마지막 세 통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02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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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정리를 마친 뒤 동욱이 조문객들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자고 했다.

세남매가 문장을 하나씩 보탰다가 지웠다. 

마지막에는 장례식장에서 받아온 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만 남았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故 최병석 님(저희 아버지)의 장례에 찾아와 위로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훗날 귀댁에 대소사가 있을 때 꼭 연락 주십시오.

 —상주 일동

 

수진은 부의금 장부를 펴놓고 아버지의 연락처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누가 빈소에 왔고, 누가 계좌로 마음을 보냈으며, 누가 부고만 받고 아무 연락이 없었는지 가려내려 했다.

몇 사람을 확인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봉투에는 본명이 적혀 있었지만 휴대전화에는 직함이나 마을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이 많았다. 동명이인도 있었고, 장부에는 있는데 연락처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도 있었다.

수진은 대조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부고를 보낼 때 사용했던 아버지의 연락처를 그대로 발송 명단에 올렸다. 

빈소에 다녀간 사람보다 오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지만, 모두에게 같은 인사를 보냈다.

찾아온 사람과 오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문장의 감사가 전해졌다.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가야지.’

‘어머니 잘 모셔라.’

‘못 가봐서 미안하다.’

‘힘내라.’

 

수진은 답례 문자를 보내는 동안 연락처와 메시지 창만 오갔다. 

다른 화면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례를 마치고 사흘이 지난 뒤에도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다른 화면을 열지 못했다. 

부고를 보내고 답장을 확인할 때까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이유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해야 할 일도, 누가 시킨 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진은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연결했다.

어머니 집에서 쓰던 선은 빈소에서 쓰던 것보다 길어 전화기를 식탁 가운데에 놓아도 됐다.

그리고 통화기록을 열었다.

기록마다 작은 마이크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주고받은 밤, 세 사람의 이름이 차례로 남아 있었다.

 

오재문. 오후 8시 3분. 3분 21초.

강기호. 오후 9시 17분. 6분 8초.

박성태. 오후 10시 42분. 11분 42초.

 

수진은 첫 번째 녹음 파일을 눌렀다.

텔레비전의 박수 소리 사이로 오재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눈 온다는데 연탄 나르는 건 미뤄.”

“벌써 차에 실어 놨습니다.”

 

아버지였다.

살아 있을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 가늘었다. 

문장 끝을 눌러 말하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수진은 맞은편의 빈 의자를 보았다.

 

“그럼 날을 봐서 하든가. 변호사는 알아봤어. 다음 조사부터는 혼자 가지 말라더군.”

“가서 어디까지 얘기해야 합니까?”

“자네 일만 얘기해. 남한테 들은 것까지 꺼내지 말고.”

말이 끊겼다. 아무 소리도 없는 동안 재생 시간만 흘렀다.

“의원님도 솔재식당 일은 아시잖아요.”

“누가 무슨 일로 불려 갔는지 내가 어떻게 다 알아.”

“왜 저희 몇 사람만 불려 다닙니까? 그 집에 드나든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병석이, 지금은 자네 조사부터 생각해.”

“형님.”

아버지가 호칭을 바꾸었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여전히 오재문이었다.

“형님 일은 저도 입 다물고 있잖아요.”

텔레비전 소리가 멎었다.

“내 일이 뭔데.”

“미선이 일 말입니다.”

 

오재문의 숨소리가 짧게 들렸다.

“병석이,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형님도 그 애한테 돈 준 적 있잖아요.”

“밥값 하라고 몇 푼 준 게 다야.”

“삼만 원이 밥값입니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선이가 말했습니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진은 전화기를 귀 가까이 가져갔다.

“그 애 말을 믿어?”

“제 말도 아무도 안 믿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거야?”

“저 좀 도와달라는 겁니다.”

“변호사 알아봐 줬잖아.”

“그것 말고요.”

“그것 말고 뭘.”

 

멀리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저만 불려 다니는 건 억울합니다.”

“병석이, 말조심해. 듣는 사람은 나도 그 여자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줄 알겠어.”

“저는 형님이 그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돈 얘기를 꺼내?”

아버지의 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가족들이 제 얼굴도 안 봅니다.”

오재문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 있어. 내일 연락할 테니까.”

 

통화가 끝났다.

수진은 재생 막대를 뒤로 밀었다. 삼만 원이라는 말 앞에서 멈췄다.

“밥값 하라고 몇 푼 준 게 다야.”

다시 들으니 ‘밥값’보다 ‘다야’라는 말이 크게 들렸다. 

오재문은 액수를 말하지 않았다. 숫자를 입에 올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수진은 오재문의 봉투에 들어 있던 십만 원을 떠올렸다. 

재생 시간은 두 사람이 입을 다문 동안에도 흘렀다.

수진은 녹음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이번에는 그 대목을 지나 “가족들이 제 얼굴도 안 봅니다”라는 말 앞에서 멈췄다.

손가락은 아버지가 가족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찾았다. 

전화를 걸어놓고 어머니가 있는지만 묻던 날의 자기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뒤 아버지가 누구에게 다시 전화를 했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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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막대를 조금 더 뒤로 옮겼다가 누르지 않았다. 

문밖에서 어머니가 동욱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오빠는 일이 있다고 했고 어머니는 국을 데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수진은 전화기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녹음 속 목소리와 방문 밖 목소리가 한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두 번째 파일을 열자 바람 소리가 났다.

그 사이로 파크골프협회 사무국장 강기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진은 백만 원이 들어 있던 그의 봉투를 떠올렸다.

주말 경기와 회비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진이 재생 막대에 손가락을 대려 할 때 아버지가 물었다.

“장부는 자네한테 있지?”

“응.”

“경찰한테 식당 얘기했다며.”

강기호가 숨을 내쉬었다.

“물으니까 말했어. 모임 끝나고 거기서 밥 먹었다고.”

“그 여자 얘기도 했어?”

“거기서 일하는 걸 봤느냐고 해서 봤다고 했지.”

 

바람이 마이크를 덮었다가 물러났다. 강기호가 밖에 있는지, 전화를 든 손을 옮겼는지 알 수 없었다.

“장부 보면 모인 날은 알 수 있잖아.”

“회비 낸 날짜하고 모인 날짜가 다를 때도 있어. 형님도 알잖아.”

“그 식당에 나만 다녔나.”

“밥 먹으러야 다들 갔지.”

 

말이 끊겼다. 

수진은 이번에는 건너뛰지 않았다.

 

“형님, 지금 나를 추궁하는 거요?”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어느 날을 찾는 건데?”

“됐다.”

“날짜를 말해줘야 찾아보지.”

아버지는 끝내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파일에서는 방향지시등 소리가 났다. 이통장협의회 사무국장 박성태가 운전 중인 듯했다.

“형님, 금요일 행사 천막 열 개면 돼요?”

“열 다섯 개 잡아.”

“지난번에는 남아서 다시 실어 나르느라 죽는 줄 알았잖아요.”

“군청 사람들까지 온대.”

“의자는요?”

“기호한테 물어봐.”

“또 나더러 다 하라 그러네.”

박성태가 웃었다. 아버지는 따라 웃지 않았다. 방향지시등이 몇 번 더 울렸다. 수진은 차가 교차로에 멈춰 있는 모습을 그렸다. 어느 쪽으로 돌려는 차인지는 아직 몰랐다.

 

“성태야.”

“예.”

“오 의원하고 통화했어. 내일 연락하겠대.”

“그럼 내일 얘기하면 되잖아요. 천막은 아침에 다시 확인하고요.”

“다들 나만 보면 말을 안 해. 어제까지 같이 밥 먹던 사람들이.”

박성태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사 끝날 때까지 행사 일은 좀 놔두세요.”

“놓으면 누가 하는데.”

“저도 있고 기호도 있잖아요.”

“너도 내가 안 나왔으면 좋겠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한동안 아버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박성태 쪽에서는 옷이나 안전띠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수진은 재생 시간이 흘러가는 화면을 보았다.

방향지시등 소리가 끊겼다.

“형님, 지금 어디예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만나서 얘기해요.”

“운동장에 있어.”

“거기서 뭐 하세요?”

“잠깐 차 세워놨어.”

“그럼 잠깐 들를게요.”

“됐다. 너도 들어가. 천막이나 아침에 확인해줘.”

“알았어요. 형님도 들어가 쉬세요.”

“그래.”

 

작은 마찰음이 난 뒤 통화가 끝났다. 수진은 귀에서 전화기를 떼었다. 십일 분 사십이 초. 숫자는 재생이 끝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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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마지막의 ‘그래’를 한 번 더 듣지 않았다. 

이미 무슨 말인지 알았다. 

안다고 해서 그날 밤 아버지가 어디로 가려 했는지까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녹음 파일이 있다는 사실을 담당 형사에게 알렸다. 이미 확보한 자료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진 옆에서 듣던 현수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가 오지 말라고 하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박성태 국장이 운동장에 갔는지 확인해 주세요.”

형사는 사망 전 동선과 통화 상대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현수는 수진이 적어 둔 통화 시간을 보며 초 단위까지 다시 읽었다. 숫자를 정확히 말하면 답도 더 분명해질 것처럼.

다음 날 형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성태는 운동장 쪽으로 차를 몰았으나 군청 앞 회전교차로에서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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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한 영상에서 아버지의 차에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수사 절차는 사망으로 종결될 예정이며 다른 관련자에 대한 조사는 계속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수진은 수첩에 ‘종결’이라고 적고 옆에 ‘아버지’라고 덧붙였다. 통화를 끊자 현수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래?”

“이름은 안 말해.”

현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충전선이 식탁 모서리에서 흔들렸다.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진은 형사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 적으려 했으나, ‘종결’ 옆의 빈 곳에 더 들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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