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늦게 북실리에 사는 노인이 왔다.
벗어 놓은 신발 한쪽에 흙이 붙어 있었다.
동행한 사람이 구두를 가지런히 놓는 동안 노인은 영정 앞에서 좀처럼 허리를 펴지 못했다.
“최 회장 아니었으면 우리 집은 그해 겨울을 못 넘겼어.”
노인은 수진의 두 손을 잡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손바닥은 거칠었고, 두껍게 솟은 엄지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박혀 있었다.
폭설로 골짜기 도로가 끊겼을 때 아버지가 포클레인을 불러 길을 냈다고 했다.
연탄을 날라 주었고, 이듬해에는 자꾸 꺼지는 보일러까지 바꿔 주었다고 했다. 말이 끊길 때마다 노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진은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노인은 접객실 의자 등받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낮췄다.
의자가 뒤로 밀리자 수진이 붙잡았다. 노인이 완전히 앉을 때까지 등받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던 노인은 아버지가 연탄을 싣고 왔던 겨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수진은 말없이 밥그릇을 그의 손 가까이로 당겨 주었다.
아버지는 길눈이 어두웠고 기계에는 더 서툴렀다.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갈림길을 지나쳤고, 컴퓨터에서는 방금 저장한 문서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는 길은 잊지 않았다.
어느 골짜기 끝에 누가 혼자 사는지, 어느 집 보일러가 자꾸 꺼지는지, 어느 노인의 집에 연탄이 몇 장 남았는지는 기억했다. 수진이 지도 화면을 몇 번이나 확대해야 겨우 찾는 집도 아버지는 사람의 이름만 듣고 찾아갔다.
솔재리에서 아버지가 모르는 집은 드물었다.
버스정류장 건너편에는 마을회관이 있었고, 강변 둔치에는 파크골프장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날이 풀리면 아침부터 알록달록한 조끼와 모자가 잔디 위를 오갔다.
경기를 마친 사람들은 채가 든 가방을 차에 싣고 하나둘 솔재식당으로 내려왔다.
흙과 잔디가 묻은 운동화가 식당 문 앞에 줄지어 놓였다.
상마다 소주병이 놓였고, 이 집 별미인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두부 사이로 붉은 기름이 둥둥 떠올랐다. 노릇하게 부친 배추전이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도는 동안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오갔다.
누구네 보일러가 고장 났고, 어느 골짜기의 눈을 먼저 치워야 하며, 다음 행사에는 천막이 몇 동 필요한지.
흩어져 나오던 말들은 끝내 아버지 앞에 모였다.
아버지는 마을 반장을 거쳐 솔재리 이장이 되었다.
면 이장협의회장을 맡은 뒤 군이통장협의회장과 파크골프협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명함에는 직함이 한 줄씩 늘어났지만 직업을 적는 칸에는 언제나 농업이라고 썼다.
아버지의 직함이 늘어날수록 어머니가 논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모내기철이면 골짜기마다 물 댄 논이 낮은 하늘을 한 장씩 받아 놓았다.
이앙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린 모가 반듯한 줄을 이루었고, 뒤집힌 흙에서는 물비린내와 풀뿌리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둑 아래에서는 개구리가 울었고, 먼 논의 경운기 소리가 산비탈에 부딪혀 돌아왔다.
모판을 나르던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리면 그는 젖은 장갑부터 벗었다.
장갑을 논둑에 던져 놓고 장화에서 발을 빼낸 뒤, 흙 묻지 않은 신발로 갈아 신으며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벗어 놓은 장화의 발끝을 논 쪽으로 돌려놓았다.
금방 돌아와 다시 신으라는 듯 나란히 세워 두었다.
그러나 해가 산등성이에 걸릴 때까지 장화는 그대로였다.
논물 위에서 붉어진 하늘이 흔들리고, 줄지어 꽂힌 어린 모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어머니는 혼자 모판을 끌어당겼다. 모판이 움직일 때마다 탁한 물이 무릎 아래에서 출렁였다.
물속에 잠긴 발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검은 진흙을 오래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 지갑부터 열었다.
카드값을 치르는 날이면 어머니가 통장을 펼쳤다.
아버지는 어느 집 보일러가 멈췄고, 어느 노인의 연탄이 바닥났으며, 어느 아이에게 겨울 외투가 필요했는지를 설명했다. 어머니는 대꾸 없이 외상 날짜가 적힌 영수증을 접었다.
서랍을 열면 먼저 접어 넣은 영수증들이 차곡차곡 누워 있었다.
농사로 번 돈에서 종잣값과 비료값, 생활비를 덜어내고 나면 아버지가 바깥에서 쓰고 온 돈을 메우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저녁마다 식당 두 곳을 오가며 남이 먹고 난 그릇을 씻었다.
북실리 노인이 아버지 덕분에 따뜻하게 났다고 기억하는 바로 그 겨울이었다.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현관에 기대앉아 양말부터 벗었다.
발목을 조였던 고무줄 자국은 양말이 벗겨진 뒤에도 붉고 깊게 남았다.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천천히 누르다가 물었다.
“이번 달 카드값은 어떻게 할 거예요?”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가 조금 덜 쓰면 누군가는 겨울을 나잖아.”
어머니의 손이 발목 위에서 멎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따질 때마다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수진의 방까지 건너오는 것은 늘 어머니의 말뿐이었다.
이번 달에는 얼마가 모자라는지, 무엇을 더 줄여야 하는지, 아이들 학원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말이었다.
수진은 이미 여러 번 읽은 소설책을 펼쳤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발소리가 날 때마다 읽지 않은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겼다.
마른기침 소리에 수진은 고개를 들었다.
북실리 노인이 뜨거운 물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수진은 물이 식으면 새로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다.
그가 아버지 덕분에 겨울을 났다는 말을 거짓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겨울 내내 부은 손으로 남의 그릇을 닦았다는 사실도 없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건넌 겨울과 한 사람이 견딘 겨울은 같은 것이었다.
수진은 사용한 종이컵을 모은 투명 봉투를 들고 건물 뒤편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주방 환풍구에서는 더운 김과 육개장 냄새가 흘러나왔다.
배기팬이 낮게 울었다.
종이컵 수거함 앞에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화환 좀 봐. 군수 아버지 장례에도 저만큼은 안 오겠다.”
“평생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으니 받을 때도 됐지.”
누군가 웃었다.
“죽어서도 끝까지 수금하고 가네.”
해원군이통장협의회 사무국장 박성태의 목소리였다.
수진은 얼굴을 보기 전에 알아들었다.
집에 와서 아버지를 부르던 목소리, 행사장 천막을 펴다 의자가 부족하다고 전화하던 목소리였다.
그는 아버지와 이십 년 가까이 함께 다녔다.
아버지가 말을 꺼내기 전에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둔다고 사람들은 칭찬했다.
박성태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구두로 비비고 한 번 더 밟았다.
수진은 종이컵 봉투를 든 채 서 있었다.
박성태는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수진은 봉투를 수거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봉투 끝이 입구에 걸렸다.
손바닥으로 눌러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수진은 몸을 기울여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박성태는 끝내 빈소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화환 리본이 수진의 소매에 걸렸다. 몸을 비키며 이름을 읽었다.
오재문 전 해원군의원.
군의원을 두 번 지낸 사람이었다.
선거 때마다 아버지가 그를 도왔다. 군이통장협의회장을 맡아 보라고 권한 것도 오재문이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된 뒤에는 변호사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의 화환은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파크골프협회 사무국장 강기호가 들어오다 화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리본의 이름을 올려다본 뒤 접수대로 가 봉투를 내밀었다.
강기호는 파크골프장 관리동 열쇠와 회원 명부,회비 장부를 관리했다.
그도 경찰에 다녀왔다는 말이 있었다. 경찰이 무엇을 물었는지, 어떤 자격으로 불려 갔는지 수진은 몰랐다.
절을 마친 강기호가 다가와 어머니는 식사를 하셨느냐고 물었다.
“조금 드셨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수진은 맞잡은 손을 풀었다가 다시 잡았다.
강기호의 양말 발등에 보풀이 일어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향 재가 얇게 밀려났다.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그렇게 말하고 물러났다.
봉투에 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부의금만 지인을 통해 보낸 오재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입구의 화환만 조문객들이 드나들 때마다 리본을 흔들었다.
장례를 마친 다음 날, 가족들은 식탁에 모였다.
동욱이 봉투를 열어 이름과 액수를 읽었다. 수진은 장부에 옮겼고 현수는 돈을 다시 세었다. 오만 원권의 방향을 맞추다가 낡은 지폐가 나오면 손바닥으로 펴서 아래에 놓았다.
어머니는 수진이 모르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느 마을 누구인지 알려 주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적힌 봉투도 있었다. 그 집 자식이 아버지 이름으로 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는 작년에 우리가 갔었지.”
어머니는 봉투 하나를 골라 옆에 놓았다.
돈보다 오래 보관할 것을 고르듯 이름이 적힌 면을 위로 향하게 했다.
동욱은 자기가 카드로 치른 장례비 영수증을 펼쳤다. 길게 출력된 종이가 식탁 끝에서 말려 올라왔다. 빈소 사용료와 음식값, 관과 수의 값이 한 줄씩 적혀 있었다. 수진은 종이컵 값을 읽다가 눈을 돌렸다.
“내 카드로 결제한 것부터 빼야 해.”
“응.따로 적어 놓을게.”
현수가 지폐 끝을 맞추며 말했다.
“아버지 통장에는 백만 원도 없더라.”
아버지는 카드보다 현금을 좋아했다.
지갑에 오만 원권과 만 원권을 채워 다니다가 밥을 먹고 나면 먼저 일어나 계산했다.
누가 어렵다는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지갑을 열었다.
집에서는 빈자리가 생긴 지갑을 식탁에 올려놓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세탁기 위 작은 장에서 돈을 꺼내 채워 넣었다.
수진도 돈이 필요하면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먼저 말했다.

방명록과 계좌 입금 내역, 다른 사람 손에 들려온 봉투의 이름을 하나씩 맞춰 보니 천 명에 이르렀다. 얼굴 대신 봉투만 다녀간 사람도 백 명이 넘었다. 부조금은 모두 합해 일억 원에 가까웠다.
수진은 장부에 빼곡히 적힌 이름과 금액을 내려다보았다.
분리수거장에서 들은 박성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죽어서도 끝까지 수금하고 가네.’
동욱은 계산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숫자를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눌렀다. 현수도 장부를 제 앞으로 끌어당겨 첫 줄부터 더하기 시작했다.
형제의 손가락이 서로 다른 속도로 금액을 짚어 내려갔다.
수진은 어디선가 틀린 숫자가 나오기를 바라면서도, 합계만은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먼저 계산을 마친 동욱이 계산기를 식탁 가운데로 밀었다. 잠시 뒤 현수의 화면에도 같은 숫자가 떴다.
세 사람의 시선이 숫자 위에서 마주쳤다가 흩어졌다.
아버지가 평생 한꺼번에 가져 본 적 없는 돈이, 아버지가 죽자 사흘 만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네 아버지가 한 일을 잊지는 않았나 보다.”
어머니가 말했다.
북실리 노인의 봉투에서는 반듯하게 펴지지 않은 만 원권 다섯 장이 나왔다.
지폐마다 오래 접어 둔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옆에는 강기호의 봉투가 놓여 있었다. 백만 원이었다. 수진은 봉투를 뒤집어 보았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재문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서는 십만 원이 나왔다.
강기호와 오재문은 모두 아버지와 수십 년을 지낸 친구였다. 수진은 두 봉투를 나란히 놓았다.
백만 원과 십만 원.
백만 원은 우정의 값인지 미안함의 무게인지 알 수 없었다. 십만 원에는 오래된 셈인지 마지막 선인지 모를 거리가 놓여 있었다. 장부에는 액수만 적을 수 있었다.
“장례비부터 빼자.”
동욱이 말했다.
수진은 장례비와 아직 치르지 않은 비용을 장부 맨 아래에 적었다. 넉넉히 잡아 빼고도 육천만 원 남짓 남았다.
조금 전까지 조문객들의 마음이었던 돈이 계산을 거치자 세 남매가 나누어야 할 몫이 되었다.
현수가 손가락에 걸고 있던 고무줄을 놓았다. 고무줄이 식탁 위에서 한 번 뒤집혔다.
“아버지 앞으로 들어온 돈은 어떻게 할 건데?”
“나머지는 그다음에 얘기하자.”
“지금 같이 정해야지. 누나는 결혼할 때 들어온 축의금도 가져갔잖아.”
수진이 현수를 바라보았다.
“천만 원 빌린 거야. 석 달 만에 다 갚았고.”
“그래도 누나한테 빌려줄 돈은 있었네. 나는 가게 낼 때 한 푼도 못 받았어.”
“그걸 왜 나한테 따져.”
현수가 대꾸하려는데 동욱이 손바닥으로 장부를 눌렀다.
“나도 등록금이 없어서 한 학기 쉬었어.”
“형만 손해 본 줄 알아? 내 이름으로 들어 둔 적금 깨서 남의 집 보일러 놔준 건 기억 안 나?”
현수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의자 다리가 장판의 눌린 자리에 걸렸다가 거친 소리를 내며 빠져나왔다.
그는 일어서서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앉아 있을 때는 감추어져 있던 어린 날의 서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머니는 상복을 반납하고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목에 두른 스카프는 아직 풀지 않았다. 끝이 조금 젖어 색이 짙었다.
“그 돈이 그렇게 탐나냐?”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수진은 장부의 숫자를 보지 않으려고 봉투 쪽으로 눈을 돌렸다.
봉투에도 액수가 적혀 있었다.
동욱이 말했다.
“엄마,우리는 늘 나중이었어.”
어머니가 동욱을 보았다.
“아버지가 남들한테 좋은 사람이었던 거 알아. 그런데 우리는?”
“안다.”
어머니는 장부를 자기 앞으로 당겼다.
“내가 제일 잘 안다.”
그 말 뒤에서는 동욱도 더 높일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앞으로 들어온 봉투를 따로 모았다.
접수할 때 적어 둔 표시를 확인하고, 잘못 분류된 것 같은 봉투는 수진에게 물었다.
“빚부터 갚자. 밖에 갚을 게 있으면 갚고, 남은 건 그다음에 얘기해.”
현수가 물었다.
“미선이한테도 돈을 주겠다는 거야?”
수진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야.”
“그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뭔데?”
현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버지는 자기 마음대로 죽고,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떠들잖아. 남은 돈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해야지.”
현수는 얼굴을 돌렸다.
부엌 창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손등으로 코 아래를 한 번 문지른 뒤 다시 앉았다.
그날 돈은 나누지 않았다.
부조금은 어머니 명의로 새 통장을 만들어 옮겨 두기로 했다.
수진은 장부를 덮기 전에 자기 앞으로 들어온 금액을 한 번 더 보았다.
현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부를 닫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숫자는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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