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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부고의 수신인 ①] 986명의 수신인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01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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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현실의 여러 사회적 문제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과 지명, 단체, 구체적인 사건 및 전개는 허구이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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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휴대전화가 돌아온 것은 빈소를 차리던 날 점심 무렵이었다.

형사가 투명한 봉투의 입구를 벌렸다. 비닐이 손가락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봉투 안쪽에 붙은 종이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사건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진은 휴대전화를 받으려고 내민 손으로 그 이름을 잠깐 가렸다.

 

“통화기록을 비롯해 필요한 자료는 복제해 두었습니다. 다시 확인할 게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휴대전화는 얇은 비닐 너머로 보았을 때보다 작았다.

“이걸로 부고를 보내도 됩니까?”

“네.”

형사는 빈 봉투를 반으로 접어 들고 나갔다.

 

수진은 아버지의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수진의 아들 동현이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이 잠깐 나타났다가 쌓여 있던 알림에 가려졌다. 

동현은 아버지의 첫 손자였다.

첫돌 사진이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화면 속 얼굴은 늘 동현이었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마다 아버지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사진부터 옮겨 달라고 했다.

 

잠금번호는 없었다. 자식들이 설정해 주면 아버지는 며칠을 못 가 풀어 달라고 했다.

“내 전화 누가 가져다 뭐에 쓰겠냐.”

 

배터리 표시는 붉었다.

수진은 벽의 빈 콘센트를 찾아 충전기를 꽂았다. 선이 짧아 의자를 벽 쪽으로 당겨야 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길게 긁었다.

 

아버지는 해원군 해원면 솔재리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두 번째 출석 예정일은 사흘 뒤였다.

 

“일도 이렇게 됐는데 조용히 치르자.”

작은아버지는 가까운 친척만 불러 가족장으로 치르자고 했다.

어머니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버지의 사진을 넘겼다.

밭에서 찍은 사진은 모자챙이 얼굴을 가렸고, 가족여행 사진에서는 눈을 감고 있었다.

군민의 날 행사 사진에 이르러 손이 멈췄다.

정장을 입은 아버지가 정면을 보고 웃고 있었다. 옆에 선 사람의 손이 아버지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이 손은 잘라낼 수 있니?”

수진이 화면을 확대하는 동안 작은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형수님, 밖에 알리는 건 좀…….”

“장례는 치러야죠.”

어머니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진은 아버지의 어깨에서 남의 손이 사라진 사진을 상상했다. 화면을 어디까지 잘라도 손목이나 손가락 하나쯤은 남을 것 같았다.

 

현수는 사진을 맡기면 알아서 지워 준다는 장례지도사의 말을 전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장 복도에서 화환 받침을 끄는 소리가 났다.

빈소에는 아직 영정도 위패도 없었다. 흰 천을 씌운 제단 위로 조명만 먼저 켜져 있었다.

수진은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연락처를 열었다.

 

986개.

한 사람의 생애라고 해도 많은 번호였다.

해원군의 이장과 반장만 천 명에 가까웠다. 군이통장협의회장을 십 년 넘게 맡은 아버지라 해도 그 모두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현직 이장들의 이름 사이로 군청 직원과 사회단체 사람들, 파크골프 회원, 식당과 철물점 주인들이 섞여 있었다. 

사람 이름 대신 ‘굴삭기’, ‘장례차’, ‘북실리 혼자’라고 적힌 번호도 있었다.

아버지가 골짜기와 마을을 돌며 연탄을 나르고, 고장 난 보일러를 들여다보고, 무너진 농로에 자갈을 붓는 동안 하나씩 들어온 번호들이었다.

 

그 작은 휴대전화 안에 아버지가 살아온 해원군이 거의 다 들어 있었다.

이제 수진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릴 사람을 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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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는 누구한테 보내야 해?”

오빠 동욱이 화면에 줄지어 뜬 이름들을 들여다보았다.

“가족 번호만 빼고 다 보내.”

“아버지 연락처에 있는 사람 전부?”

“우리가 누굴 빼야 하는지 어떻게 알아.”

동욱은 현수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현수는 벗어 놓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했다.

“나도 모르겠어. 형 말대로 해.”

 

수진은 다시 휴대전화로 눈을 내렸다.

누구를 넣어야 할지 몰라 화면을 내렸다가, 누구를 빼야 하는지는 더 알 수 없어 처음으로 돌아왔다.

‘아들 동욱’과 ‘막내 현수’를 지나 자기 이름에 이르러 손이 멈췄다.

‘우리 딸.’

아버지는 수진의 이름을 그렇게 저장해 두었다.

화면을 조금 더 내리자 ‘솔재식당’이 지나갔다. 식당 전화번호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을 가려내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머니와 세 남매의 번호만 찾아 수신인에서 지웠다.

장례지도사는 모바일 부고 작성 화면을 띄워 수진에게 건넸다. 

고인의 이름과 나이, 빈소와 발인 시간, 장지와 유가족을 적는 칸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직함은 넣으실 건가요?”

수진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넣어라.”

어머니가 말했다.

수진은 빈칸을 하나씩 채웠다.

 

―[부고] 해원군이통장협의회장 최병석 님께서 향년 69세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별세: 12월 16일

빈소: 해원군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12월 18일 오전 8시

장지: 해원군추모공원

배우자: 김정임

아들: 동욱·현수

딸: 수진

마음 전하실 곳: 해원농협 123-45-678901 최동욱

 

수진은 작성된 부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름 앞에는 직함이 붙었고, 죽었다는 자리에는 별세했다는 말이 들어갔다.

어머니와 세 남매의 이름은 정해진 칸마다 한 줄씩 자리를 얻었다. 

그 아래 계좌번호까지 놓고 나니 어디서나 받아 보던 부고와 다르지 않았다.

 

장례지도사는 완성된 부고를 문자로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어 연락처를 여러 묶음으로 나누어야 했다.

화면 아래에는 ‘보내기’라는 글자만 남았다.

수진은 한동안 그 글자를 바라보다 눌렀다.

전송을 기다리는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수진은 다음 묶음을 불러와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마지막 발송을 마치자 몇몇 문자 옆에 붉은 느낌표가 떠 있었다. 수진은 다시 보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해원군을 위해 헌신하신 분인데 믿기지 않습니다.’

알림이 앞의 화면을 덮었다.

‘고인의 봉사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역의 큰 어른을 잃었습니다.’

 

전화도 걸려 왔다.

수진은 자신이 딸이라고 밝히고 빈소를 알려 주었다.

충전 중인 휴대전화가 손바닥에서 조금씩 따뜻해졌다.

조문이 어렵다며 마음만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 답이 없는 번호는 더 많았다.

 

그 여성의 이름은 윤미선이었다.

서른여덟 살. 

수진보다 몇 살 위였고 지적장애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윤미선을 미선이라고 불렀다. 더러는 이름 대신 솔재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했다.

수진도 미선의 얼굴을 알았다.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식당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고무장갑을 벗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선과 아버지를 한 문장 안에 놓을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를 데리러 식당에 갔던 날, 주인이 밀린 품삯을 다음에 주겠다고 했다.

미선은 계산대 앞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다음이라고 했어요.”

주인은 한참 뒤 서랍을 다시 열었다.

미선은 받아 든 지폐를 두 번 세어 지갑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처음 보도가 나온 날, 동욱은 가족 대화방에 기사 링크만 올렸다.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수진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링크를 눌렀다. 숟가락에 묻은 국물이 마르는 동안 기사를 두 번 읽었다.

제목은 길었다.

 

‘해원군 한 마을 노인들, 지적장애 여성 수년간 집단 성폭행 의혹.’

 

기사에는 한 지적장애 여성이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며 사용법을 여러 차례 묻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약사가 상대가 누구인지, 원하지 않은 관계였는지를 차례로 물었다고 적혀 있었다.

여성이 대답하는 동안 그동안의 일이 드러났고, 약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조사 대상에는 군이통장협의회장인 60대 남성도 포함돼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가족에게는 충분했다.

기사 아래쪽에는 집단 성폭행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각자의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수진은 다시 제목으로 올라갔다.

‘집단’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진은 기사에서 틀린 곳을 찾았다.

오탈자 하나라도 찾아내면, 기사 속 그 직함과 아버지 사이가 조금은 멀어질 것 같았다.

조사받던 노인 중 일부는 미선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인정했다.

미선은 거절해도 상대방의 행위가 멈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식당 일을 잃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수진은 기사를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위로 올라가, '의혹'이라는 두 글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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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은 나중에 아버지가 경찰에서 인정한 내용을 전했다.

미선과 성관계를 가졌고, 그 뒤 현금을 건넨 적이 여러 번 있다는 것이었다.

강제로 한 일은 없다는 아버지의 말도 함께 전했다.  

 

수진은 아버지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대신 전화를 한 번 걸었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받았다. “어디냐.” 집이라고 했다. “밥은 먹었고.” 먹었다고 했다.

물으려고 준비한 말들이 밥을 먹었느냐는 질문 뒤에서 갈 곳을 잃었다.

“엄마는 집에 있어?”

“시장 갔다.”

“오면 전화하라고 해.”

그렇게 끊었다.

어머니가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할지도 생각해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시신은 실종 신고를 한 다음 날 새벽, 해원군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차는 주차선 안에 반듯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조수석 발밑에는 철제 통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 타다 남은 연탄과 재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주차선을 밟고 세운 차를 보면 지나쳤다가도 돌아가 번호를 확인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 돼.”

남의 차를 볼 때마다 하던 말이었다.

 

뒷좌석에는 파크골프 조끼와 모자가 포개져 있었다.

장갑은 파크골프채 손잡이에 끼워져 있었고, 채가 든 가방 옆에는 이통장협의회 조끼가 접혀 있었다.

수진이 경찰에게 들은 말과 나중에 사진으로 본 장면이 뒤섞였다. 이제는 어느 것을 직접 보았고 어느 것을 전해 들었는지 가리기 어려웠다.

 

그래도 흰 주차선과 흩어진 연탄재, 접힌 조끼와 뒷좌석의 파크골프채만은 또렷했다.

주머니에서는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날짜도 이름도 없었다.

유서라고 할 만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미안하다.

억울하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수진은 둘째 줄부터 읽었다.

첫 줄로 돌아갔다가 세 번째 줄을 읽었다.

어머니가 종이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을 때,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인지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건넸다.

세 문장이 접힌 종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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