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소
개끝 남쪽 개소 아래쪽에 있는 소(沼)다. 조양강 옆으로 20여명이 앉을 정도로 큰 바위가 솟아있어 물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잉어과의 민물고기인 붕어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해서 ‘붕어소’라고 한다. 붕어소의 바위는 1960년대 중반 철도를 놓으면서 묻히고 지금은 끝부분만 조금 남아 있다.
거북바우
개끝 북동쪽 철교 위쪽에 있는 바위다. 조양강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곳으로 바위 일대에서 바라보는 송오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산세의 경관이 좋아 옛날부터 정선군수가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피서를 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거북바우는 어른 쉰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놀며 여흥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바위 위에는 ‘龜巖’이라고 새긴 글씨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개끝에서 이절로 이어지는 도로를 개설할때 절벽 윗부분이 잘려나가면서 바위가 강으로 무너져 내려 절경이 훼손되었다. 이절로 이어지는 길은 보수를 반복하다가 이절과 송오 사이에 잠수교가 놓이면서 도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거북바위가 훼손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구암동
개끝 위쪽에 거북바우가 있다고 해서 예전에는 개끝 일대를 ‘구암동’이라 불렀다. 개끝 사람들은 거북바위를 지나 큰구랭이를 넘어 오반동 두건이로 넘어 다녔다.
방골
두건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골짜기 안에서 샘울이 나오는데, 물이 좋아 송오 사람들이 공중에 줄을 매달아 끌어들여 식수로 쓰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방골은 조선시대부터 오반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었다. 개끝 주민들도 남동쪽 산자락을 타고 방골을 통해 오반리로 다니곤 했다.
이절
개끝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절이 두 곳 있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장등 기암절벽 아래로 굽이도는 조양강과 풍광이 빼어나고 조망이 좋은데다가 토양이 비옥해 농사가 잘되는 곳이어서 거주 인구가 줄어들지 않는 마을이라고 한다. 이절에는 40여 년 전에는 12가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3가호가 살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고추, 콩, 등의 농작물과 인삼, 약초, 나물 등을 재배하며 살고 있다.
고사동(古寺洞)
이절의 다른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해서 ‘예절’이라고 했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고사동(古寺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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