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도
-작은섬
-합금천
녹도
현재 봉양리 적거리 마을 아래 조양강에서 물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구미동 앞쪽과 오반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조양강과 만나는 신촌 일대까지 커다란 삼각지가 형성되어 섬을 이루었다. 녹도는 구미동 앞과 오반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조양강과 만나는 곳을 기준으로 큰녹도와 작은녹도로 나뉜다.
작은녹도는 구미동 앞가 오반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현재처럼 꺾이지 않고 우묵골 앞과 둔덕 뒤로 돌아 병목로 빠지는 곳 안쪽 일대를 말한다. 읍내에서 녹도를 오가는 나루터인 ‘뱃나들이’는 현제 제2교 위쪽에 있었다.
제사공장이 들어선 곳 앞으로는 노송이 애산리까지 길게 어어져있어 ‘줄솔거리’라고 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오반리가 허하여 정선읍부가 좋지 않다고 해 소나무를 심었는데, 지금도 제2교 옆 주차장 주변에 여섯 그루가 남아 있다.
일설에는 이 일대에서 녹두가 잘되어 ‘녹두섬’이라고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소나무가 늘어선 곳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인 ‘녹도(綠島)’가 와전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도를 보면 녹도의 규모와 위치를 알 수 있는데, 구미동을 제외하고 현재 봉양초등학교, 정선군보건소, 정선역, 정선소방서 등에 해당하는 지역은 모두 큰녹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라리촌과 신촌, 약초시장은 작은녹도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큰녹도의 중심지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던 현재의 봉양초등학교 부지로, 이런 이유로 봉양초등학교가 봉양리 1번지로 되었다.
조양강 물길에 둘러싸였던 녹도는 1967년 1월 20일 개통된 증산~정선구간의 정선선 공사를 하면서 구미동 앞쪽으로 흐르는 물길의 제방을 막아 물길을 돌리면서 더 이상 섬이 아닌 육지의 일부가 되었다. 녹도 일대는 구미동을 제외하곤 무인지경이라고 부를 만큼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1962년부터 정선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1970년 금성사업주식회사 정선 제사공장이 들어서면서 정선읍 산업지대로 변모했다. 철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곳에는 밤나무 밭과 채소밭, 소규모 간이 비행장도 있었다. 5·16혁명 직후에는 정선선 철도 건설을 위해 국토건설단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작은섬
작은녹도를 ‘작은섬’이라고도 한다. 작은녹도는 구미동 앞과 오반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나면 현재처럼 약초시장 북쪽에서 꺾이는 가닥 외에 우묵골 앞과 둔덕 뒤로 돌아 병목으로 빠지면서 큰녹도 아래쪽에 또 하나의 섬을 이우렀다고 해서 ‘작은녹도’, ‘작은섬’이라고 한다.
합금천
구미동 앞쪽과 오반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만나 조양강으로 흐르는 물길이다. 읍내에서 녹도를 오가는 나루터인 ‘뱃나들이’는 현재 제2교 위쪽에 있었으며, 녹도에서 애산리 병목을 오가는 나루터가 합금천 약초시장 위쪽에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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