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 가시는 줄로 알고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일이지요. 지금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홍제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 뒤쪽은 자하문 밖 또는 세검정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산 쪽에는 능금나무 자두나무들이 많이 있었고, 계곡 개울은 바닥이 큰 바위들로 깔려 있어, 맑은 물에 미끄럼타기가 아주 좋았답니다. 그때야 형편이 형편인 지라 노 펜티에 옥양목 반바지(집에서 만들어 입음)에 찢어진 검정고무신을 흰 실로 꿔메어 신는 패션이 유행 일 때입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그곳에 가서 몰래 능금을 따먹고 개울에서 미끄럼타고 놀기를 자주 했답니다. 그래 능금 따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혼도 나고 바위에서 다이빙하면 반바지가 홀랑 벗겨져서(당시 검정 고무줄이 탄력이 신통치 않아) 물속에서 올려 입고, 물 미끄럼 즐기다가 반바지에 구멍이 나면 펜티 겸 바지다 보니 엉덩이 살이 훤히 보이니 구멍 난 곳을 손을 뒤로 뻗어 똥 싼 아이처럼 움켜잡고 집 까지 가기도 했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거리이고 산을 넘으면 좀 빠른데 무서워서 큰 길로 돌아다녀야 했고 큰 개울도 건너야 하는데 그 당시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지 못하는 아이들이 반에서 절반 정도 일 때인데 저희는 조금 나은 편이었지요.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에게 당시 ‘누가(엿가락처럼 약간 길었음)’라는 사탕을 깨물어 2/3는 내가 먹고 1/3를 주거나 주머니에 누룽지를 넣고 나와, 1/3정도 떼어서 친구에게 주면 내 책보(그 당시는 책들을 보자기에 말아 등에 메고 다님)를 자기가 메고 개울은 나를 업어서 건네주고 했답니다. 그러니 내 몸종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 오이 밭을 지날 때 내 고무신 한 짝을 던지면 신발 주워 오는 척 하며, 오이 하나 슬쩍해서 나누어 먹곤 했답니다. 그 때도 나는 2/3고 그 친구는 1/3이지요. 내가 하도 하다 보니 미안해서 “너가 나누어 봐” 하면 어김없이 1/3로 나누어 큰 쪽을 내게 건네지요. 그리고 어쩌다 운동화가 생기게 되면, 그 운동화를 신고 방이며 마루며 뛰어다니다가 빨리 자라고 하면 머리맡에 놓고는 아침 되기를 기다리며 몇 번을 자다 깨다 하면서 손으로 더듬어 운동화를 확인해 보곤 했답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문 카페에 동문이 지금의 세검정 풍경을 카페에 올려 보게 되었는데 지금도 낫 익은 곳이 몇 군데 있어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라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답니다. 친구들과 함께 노는 재미에 허기도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 시절이 그래도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은 후회스러움도 함께 하지요. 그 1/3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친구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가끔 먹는 형편이니 그 친구에게 2/3를 주고 내가 1/3을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후회를 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지요. 그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말입니다.
마음먹기 세월인 걸
우리 어린 시절도
저절로 생각나면
어제 쯤 일이고
억지 생각하려 하면
아주 오랜 옛날이지
그래
오십년 세월이
어제도 되고
옛날도 되는 것에
걱정할게 뭐 있겠나?
오십을 살고도
백년을 산 것처럼
백년을 살고도
오십을 산 것처럼
죽고 사는 시간 역시
마음먹기 세월인 걸
빠른 세월 느린 세월
탓 할 일이 무엇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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