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한에서 아무개
동원보건원
사북에 있던 동원탄좌는 민영탄광 중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컸다. 검은 탄가루로 덧칠된 마을에 지어진 사택들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 사택이라는 이름의 ‘하꼬방’에 광부 식구 너 댓, 옛 일곱이 모여 잠을 잤다. 목숨을 걸고 생계를 구하는 전장 뒤의 삶의 공간까지 탄진이 날리는 곳. 자연히 다친 이, 아프고 병든 이가 많았겠다. 동원보건원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친모와 사별한 후 계모의 등쌀에 일찍 고향을 등졌던 그녀는 스물두 살 되던 어느 날. 기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배가 불룩해진 모습에 한숨과 적막이 집을 채웠다. 홀몸이 아니었다.
“내가 얘기하면 지금이라도 된다. 내일 같이 가자. 동원보건원.” 무겁고 무거운, 건조하지만 어쩌면 따뜻한 말. 아버지는 허탈과 혼돈 속에서 딸의 앞날을 생각했고, 딸이 살아야 할 엄혹한 삶을 짐작했을 것이다. 동네에서 힘깨나 썼다던, 본인의 체면도 고려는 했겠지만.
“아빠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딸에겐 그 말이 사무치는 아픔으로 다가왔을 테다. 순간 아비가 짐승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동원보건원. 탄광이 문을 닫고 여러 번 손이 바뀌어 지금은 정선군립병원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나는 업무 차 종종 그곳을 지난다. 그리고 이따금 생각한다.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나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물론 외할아버지는 딸의 앞길을 막는 두 놈 중 하나였던, 아니 산 것으로조차 여기지 않았던 나를, 훗날 내 얼굴을 보고 나서는 꽤 아끼셨다. 그저 한 상에서 밥 먹고 뒤뜰에서 사진 정도 찍어주는 관계였는데. 그게 꽤 아끼는 거였단다. 하지만 스물두 살 그녀가 견뎌야 했던 삶에는 그런 반전이 없었고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예견은 대체로 맞았다.
산비탈을 깎아 그 위에 세운 콘크리트건물 동원보건원. 이리 저리 페인트칠도 해놨지만, 그저 삭막하다. 병원을 뭐 이런 곳에, 이렇게 봄새 없이 지어놨나 싶기도 하다. 그런 그곳에서 나는, 받은 중 가장 아름다운 희생과 사랑을 담담히 음미한다. 내가 이제야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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