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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만난 사북의 가을밤, 황톳길에 추억이 물들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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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랑새공원 ‘맨발야행’…흙길 걷고 가을노래 들으며 이웃과 교감

주민 건강과 산촌 공동체 잇는 280m 황톳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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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리자 사북 사람들이 불빛을 따라 하나둘 집을 나섰다.

어른들은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고, 아이들은 먼저 황토 위로 뛰어들었다. 

 

촉촉한 흙이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밀려 올라왔다. 

누군가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천천히 걸었고, 누군가는 가족의 손을 잡고 보폭을 맞췄다.

 

지난 14일 밤, 사북읍 파랑새공원 황톳길은 평소보다 오래 사람들의 온기를 품었다. 

사북읍건강위원회(위원장 함종순)가 마련한 ‘맨발야행’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모여들면서다.

 

달빛과 공원 조명이 내려앉은 길 위로 맨발 자국이 이어졌다. 

황토 특유의 눅진한 흙냄새와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초입의 밤공기 속으로 천천히 번졌다. 발이 편안해질수록 표정도 한결 느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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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밤 사북읍 파랑새공원에서 열린 ‘맨발야행’에 참여한 주민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황토의 감촉을 느끼며 맨발로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곳으로 모일 무렵, 버스킹 무대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정선지역에서 ‘가객(歌客)’으로 불리는 장기봉 정선군자원봉사센터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과 ‘잊혀진 계절’, ‘가을사랑’이 차례로 밤길 위에 내려앉았다.> 

 

파랑새공원 황톳길은 정선군이 총사업비 2억8,700만원을 들여 사북읍 사북리 295번지 일원에 조성한 총연장 280m의 맨발 산책로다.

 

길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길다.

이곳에는 ‘그리움·시골·정겨움·고향’이라는 정서가 깃들어 있다. 

맨발로 흙을 밟다 보면 아스팔트 아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발끝에서 되살아난다. 

비 온 뒤의 흙길을 뛰어다니던 어린 날, 개울에서 발을 씻고 돌아오던 저녁, 멀리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다.

 

주민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황토의 감촉을 오래 느끼려는 듯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내려놓았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었던 몸의 감각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걸음이었다.

 

공원 한편에서는 어르신들이 쉼터에 앉아 이웃과 담소를 나눴다. 

아이들은 황토 연못 주변을 뛰어다녔고, 가족들은 서로의 맨발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에게는 흙과 물을 만나는 자연 체험장이었고, 어르신에게는 건강을 돌보며 안부를 나누는 사랑방이었다. 

세대는 달랐지만 그날만큼은 모두가 같은 흙길을 걸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곳으로 모일 무렵, 버스킹 무대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정선지역에서 ‘가객(歌客)’으로 불리는 장기봉 정선군자원봉사센터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과 ‘잊혀진 계절’, ‘가을사랑’이 차례로 밤길 위에 내려앉았다.

 

걷던 사람들은 걸음을 늦추거나 흙길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쉼터에 앉아 박자를 맞추는 어르신도 있었고, 익숙한 후렴을 나지막이 따라 부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밤공기 속으로 퍼졌다.


누구에게는 지나간 사랑이, 누구에게는 떠나온 고향이 떠오르는 노래였다. 

맨발에 닿는 황토와 오래된 가락이 겹치자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둘 가을밤으로 걸어 나왔다.

 

정의락 사북9리 이장은 “가을의 초입에 황톳길을 걸으며 노래를 들으니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며 “건강도 지키고 문화도 즐길 수 있는 뜻깊은 행사여서 함께한 주민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랑새공원 황톳길에는 평소에도 하루 수백 명의 주민이 찾아 걷기와 휴식을 즐긴다. 

이른 아침이면 운동복 차림의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해가 지면 은은한 조명 아래 저녁 산책이 시작된다.

 

소라파크아파트와 선명아파트 등 주거 밀집지역에서 가까워 접근성도 뛰어나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흙을 밟고 운동하며 이웃을 만날 수 있어 고령화 시대 주민의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생활 밀착형 건강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걷기는 혼자 시작하지만 길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웃을 만난다. 

안부를 묻고 잠시 보폭을 맞추며, 먼저 온 사람이 늦게 온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황톳길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진 틈을 조금씩 메운다.

 

황톳길 조성을 정선군에 제안해 사업 추진을 이끈 장기봉 정선군자원봉사센터 소장은 “초가을 밤, 주민들이 맨발로 흙을 밟으며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함께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며 “이 길이 백세시대 주민들의 일상을 보듬고, 산촌 공동체를 되살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파랑새공원 황톳길이 사북을 주민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마을로 이끄는 든든한 기반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행사가 끝날 무렵 주민들은 황토가 묻은 발을 씻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사람들은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노래는 멎었지만 여운은 흙길에 남았다. 

 

그날 주민들이 함께 밟은 것은 황톳길만이 아니었다. 

잊고 지낸 고향과 이웃, 바쁜 삶 속에 잠시 내려놓았던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날 밤 사북 사람들은 맨발로 걸었다. 발은 황토 위에 있었고, 마음은 오래전 그리운 흙길을 걷고 있었다.

김광희 기자 kwh63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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