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포리
신동읍에서 영월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를 중심으로 해서 양쪽으로 위치하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영월에서 마차재를 통해 정선 쪽으로 가던 사람들이 쉬어 가고 묵어가던 역촌(驛村) 본래 지명은 하노일(下魯日)이었다. ‘천포리’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부터 생겨난 것으로 일설에는 앞의 벌판이 메마를 땅이나 비가 오면 물이 많이 나와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어우른다’는 뜻의 옛말인 ‘얼’[泉]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골짜기의 경사가 완만해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았음을 족보나 문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지금은 정선 전(全)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37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천포리에 속했던 석항() 일부가 영월군에 편입되어 규모가 줄어들었고 현재는 78가호 203명(2006년 12월 말 기준)의 주민들이 안골, 곡기리, 양지마을, 골마을을 중심으로 주고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혈구데이
천포리 마을 한가운데로 뻗어 온 예미산 자락의 정수리에 해당되는 곳에 있다. 마을 서쪽 석항천을 향해 다가서는 가재형국의 산세인 이 산자락 머리에 해당되는 곳 땅속에 엄지손가락 굵기의 쇠꼬챙이가 박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서 장수가 난다고 해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혈(穴)을 질렀다고 주장하나 일본인들이 혈을 지르고 명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거짓 소문을 냈다고 보는 게 옳다. 몇 대째 이곳에서 살아 온 마을 사람들은 30~40여년 전 이곳에 박힌 쇠꼬챙이를 흔들고 놀았다고 하나 지금은 흙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곡기리[曲吉]
원천포 남쪽에 있으며 골안 소나무의 자태가 완만한 능선과 잘 어울리는 마을이다. 마을 뒤로 구불구불한 골이 있으므로 ‘곡골’[曲谷] 이라는 이름이 생겼는데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곡길’이 ‘곡기리’로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곡기리’가 잘못 변용 되어 ‘코끼리 마을’ ‘꾀꼬리 마을’이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지명이다.
‘곡기리’는 본래 ‘곡골’[曲谷]이 ‘곡길’[曲吉]로 되면서 생겨난 지명이다.
BEST 뉴스
-
차 한 잔의 행복- 멋진 노인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한 교수로서 지금은 6년 째 노인 복지 관을 순회하며 강의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추한 노인의 3가지 1)냄새가 나는 노인입니다. 입을 열면 구취(口臭), 몸에서 나는 체취(體臭), 옷에서 나는 의취(衣臭)입니다. 이는 나이 들수록 ... -
[기고] 반려동물 열풍을 바라보며
예로부터 개는 사람이 사는 울타리 안에 깃들어 사는 한 식솔이자 삶의 일부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개는 요즘 말하는 ‘반려’나 ‘애완’ 같은 거창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잔밥을 치워주고 마당에 드나드는 낯선 발자국을 경계하는 든든한 파수꾼이었으며, 꼬리를 치며 부리는 재... -
차 한 잔의 행복 -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1569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은 69세의 나이가 되자 우찬성(右贊成)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선조는 이황을 끝까지 옆에 두려고 이조 판서의 벼슬을 내렸다. 이황이 끝내 벼슬을 사양하며 낙향을 고집하자 젊은 관료인 율곡 이이가 찾아갔다. “어린 임금께서 즉위하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