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효각(三孝閣) - 外
81호 지명유래
삼효각(三孝閣)
장승백이로 내려가는 길 입구 구 424번 지방도변에 있는 효자 전재선과 효부 강릉최씨, 효부 전주최씨 등 3인의 효를 기리기 위한 정려(?閭)이다.
전재선은 천성이 자애롭고 순실하여 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고,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에게 공양하였다. 강릉최씨는 19세에 시집을 와서 지아비를 섬기는데 전력을 다하였으며, 시아바지 병환에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아 병을 치료하고 완치하였고, 제사 때도 이와 같이 했는데 부인은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더나고 말았다. 또한 재취인 전주최씨는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겼으며 돌아가시자 부부가 예를 다하고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는 제물을 갖추어 묘(墓)에 찾아가 곡을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내외의 효행을 칭송하였고 유림의 천거로 정선군수 함기섭이 표창하였다.
현재 1930년 대성문학원에 지은 <효자정선전공재선 삼효정려기>를 비롯해 1939년에 발행한 <효행록>이 있으며 1937년에 작성된 포정문, 1934년 표창장 등 모두 14개 편액이 걸려있다.
장승백이
삼효각 앞 장승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효자각이 있는 곳 근처 길옆에 오래 전 장승을 세워 마을 지킴이로 활용하고 이정표로 썼다고 해서 ‘장승백이’ 또는 ‘장승배기’라고 한다.
‘백이’는 ‘박다’의 명사형으로 ‘배기’로 쓰이며 ‘박아 놓은 것’ 또는 ‘박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장승배기는 ‘음지마을’ 또는 ‘음달마을’이라고도 한다. 어천이 굽이도는 마을 서쪽으로는 자그마한 동산이 하나 있는데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국이다.
장승의 기능은 도로의 이정표와 노신역할을 하는 노표장승, 마을로 들어오는 재앙과 액을 물리치기 위해 세우는 마을 수호장승, 마을의 허(虛)한 곳을 보호가기 위해 세우는 비보장승이 있다.
현재의 그림바우대장군, 그림바우여장군 장승은 장승백이에 장승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들의 노력으로 2007년 세워진 것이다.
서운산
상돌목 남쪽에 있는 해발 952.4m의 산이다.화암면 석곡리와 남면 유평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서운산은 고려말 좌산기 상시등을 충신 전오륜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서운산에 은거하며 두문동에 들어가 절개를 지켰다. 전오륜은 예날 중국의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 숨어 살며 고사리를 캐어 먹은 고사를 본따 호를 채미헌이라고 하였다.
BEST 뉴스
-
차 한 잔의 행복- 멋진 노인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한 교수로서 지금은 6년 째 노인 복지 관을 순회하며 강의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추한 노인의 3가지 1)냄새가 나는 노인입니다. 입을 열면 구취(口臭), 몸에서 나는 체취(體臭), 옷에서 나는 의취(衣臭)입니다. 이는 나이 들수록 ... -
[기고] 반려동물 열풍을 바라보며
예로부터 개는 사람이 사는 울타리 안에 깃들어 사는 한 식솔이자 삶의 일부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개는 요즘 말하는 ‘반려’나 ‘애완’ 같은 거창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잔밥을 치워주고 마당에 드나드는 낯선 발자국을 경계하는 든든한 파수꾼이었으며, 꼬리를 치며 부리는 재... -
차 한 잔의 행복 -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1569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은 69세의 나이가 되자 우찬성(右贊成)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선조는 이황을 끝까지 옆에 두려고 이조 판서의 벼슬을 내렸다. 이황이 끝내 벼슬을 사양하며 낙향을 고집하자 젊은 관료인 율곡 이이가 찾아갔다. “어린 임금께서 즉위하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