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암동굴 - 2 -
77호 지명유래
화암동굴 - 2 -
‘금맥 따라 365’ 코스는 급경사가 계단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아찔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길이가 200m에 이르는 곳은 18~45도에 이르는 급경사 수직 동굴의 고도 차이는 92m이며, 동굴 이름처럼 365개의 계단이 있다. 공룡상, 거북이상 등 동굴의 신비를 만끽 할 수 있다.
‘금의 세계’구간은 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18.5kg의 순금과, 금의 종류, 채굴 및 제조과정, 금과 관련된 역사 등을 실물영상을 통해 살필 수 있다.
마지막 테마동굴인 ‘천연동굴’에는 황금을 연상케 하는 28m의 규모의 유석폭포, 높이 8m, 둘레 5m 규모의 대형석순과 석주 2개로 이루어져 있어 동양최대를 자랑하고 있고, 커튼형 종유석, 동굴산호, 곡석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지금도 동굴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석순, 석화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금광개발의 흔적을 살피고 금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정선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화암동굴은 <정선군지>와 <정선의 향사>에는 화암팔경 중에 제4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마을의 예 어른들은 제 7경으로 불러왔다.
천포광산
조선시대 후기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금과 은을 캐 제련했던 광산으로 강원도의 대표적인 금은광이었다.
조선시대 후기인 1874년경 이미 사금 산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천포광산은 1921년(대정 11년) 5월 최응주가 광구를 출원해 같은 해 11월 허가를 받아 가행에 들어갔다. 1922년 12월 미쓰비시 전화교환원 출신의 여성 김정숙이 인수해 운영을 하다가 1925년과 1931년 매장량이 많은 금광맥이 발견되면서 성황을 누릴 무렵인 1933년에 당시 금액으로 20만원에 일본 소화광업주식회사에 매각했다.
매각 이전인 1928년 천포광산의 면적은 727,520평이었다. 매각 후에는 광산 이름을 천포금산으로 사용했는데, 주로 청금과 청화금을 캐내 제련했다.
이곳에서 제련한 금은 말과 자동차를 이용해 안목항과 경성역, 간성으로 옮겨져 일본 등지로 운송되었다. 매각 이전인 1927년에는 채광부 66명, 제련부, 4명, 잡부 17명 등 모두 87명이 근무했으며, 1937(소화12년) 3월 20일 조선총독부 광산과에서 조사한 <자원조사표>에는 기술자 1명과 광부 30명이 근무한 것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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