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면 지역의 중심에 있는 화암리(畵岩里)는 조선시대부터 정선군 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그림바우, 또는 화암(畵岩)이라고 했다. 1912년 호촌리(虎村里), 호명동(虎鳴洞)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하면서부터 면소재가 됐으며,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미천리(美川里), 구슬동(九瑟洞), 화표동(華表洞), 좌사리(坐沙里)를 합하여 화암리라고 했다.
현재 화암리는 화암면 소재지 마을로 면사무소를 비롯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우체국, 예비군면대 등이 있는 곳이다.
화암리는 일제강점기 동면 일대에서 금맥이 속속 발견되고 금광 허가 출원 붐과 함께 광산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산중 도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20년대 천포광산과 북동광산, 인근 크고 작은 금광 개발로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1923년부터 매 4일과 9일 화암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에 따른 취학 어린이가 늘자 1923년에는 화동공립보통학교가 들어섰다.
특히 천포금산의 경우 강원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금광으로 명성을 날리는 등 1930년대까지 골드러시가 이어지자 정선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오기도 헸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대부분의 금광이 문을 닫게 되면서 산업기반이 사라진 화암리는 화암팔경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해 1977년도에 ‘화암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이래 관광지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화암팔경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화암약수, 종유석과 석순이 풍부하고 금광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화암동굴 등 관광자원이 풍부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 4개리에 274가호 599명(2008년 12월 31일 기준)의 주민들이 대부분 상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래그림바위(下畵岩)
화암면 소재지인 화암면의 중심마을이다. 마을주변이 거북바위, 그림바위, 용마소,맷돌바위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고 해서 ‘그림바위’라고 한다.
영조 33년(1757년)부터 영조 41년(1765년)까지 펴낸 <여지도서>에는 그림바우를 일컬어 ‘벽 모양으로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바위는 층층이 서 있는 것이 그림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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