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리(檜洞里)
정선읍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북쪽으로 가리왕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벽파령(壁波嶺)이 막아섰고, 남쪽으로 청옥산이 넓게 자리하며, 용탄리와 맞닿아있다. 중왕산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말목에서부터 벽탄까지 20km의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 조양강에 합류한다.
회동리는 고려시대인 1310년(충선왕 2) 정선을 침봉(沈鳳)이라고 부른 약 40년간 정선군의 소재지였다. 1353년(공민왕 2) 침봉(沈鳳)이 정선군으로 바뀌면서 소재지가 현재의 정선읍 봉양리로 이관되었다.
본래 조선시대의 정선군 서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0년(융희 4)서상면과 합쳐져 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행한 조선총독부 행정구역개편령 제111호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항, 세곡, 지동과 행매동 일부를 병합하여 회동리로 개편했다. 회동이라는 이름은 가리왕산 일대에 전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한다. 그 후 서면은 1930년 4월 1일 정선면에 편입되었다.
가리왕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중봉과 하봉, 서쪽의 중왕산과 청옥산 아래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말인 회동리는 석회암지층의 카르스트 지형이 곳곳에 나타나 넓은 산 둔덕이나 밭을 이루고 있다.
회동리는 한때 광산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광산 개발은 1962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입지적 여건 들 등으로 개발이 부진하다가 1977년 대성탄좌개발(주)에서 인수한 후 활발하게 진행되어 연간 10만 톤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석탄산업이 호황일 때 당시인 1970년대 정선읍의 가장 대표적인 탄광으로 명성을 날리던 회동탄광이 1982년 문을 닫자 산업 기반이 없는 회동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탈바꿈했다.
회동리에는 말목쪽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회동계곡의 맑은 물과 명산인 가리왕산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는 열목어와 메기가 많이 서식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정선의 산간 지역 중 큰 홍수나 가뭄 등의 피해도 없고 농사도 잘되는 곳으로 현재 153가호 346명(2012년 5월 31일 기준)의 주민들이 대부분 농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선읍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북쪽으로 가리왕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벽파령(壁波嶺)이 막아섰고, 남쪽으로 청옥산이 넓게 자리하며, 용탄리와 맞닿아있다. 중왕산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말목에서부터 벽탄까지 20km의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 조양강에 합류한다.
회동리는 고려시대인 1310년(충선왕 2) 정선을 침봉(沈鳳)이라고 부른 약 40년간 정선군의 소재지였다. 1353년(공민왕 2) 침봉(沈鳳)이 정선군으로 바뀌면서 소재지가 현재의 정선읍 봉양리로 이관되었다.
본래 조선시대의 정선군 서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0년(융희 4)서상면과 합쳐져 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행한 조선총독부 행정구역개편령 제111호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항, 세곡, 지동과 행매동 일부를 병합하여 회동리로 개편했다. 회동이라는 이름은 가리왕산 일대에 전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한다. 그 후 서면은 1930년 4월 1일 정선면에 편입되었다.
가리왕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중봉과 하봉, 서쪽의 중왕산과 청옥산 아래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말인 회동리는 석회암지층의 카르스트 지형이 곳곳에 나타나 넓은 산 둔덕이나 밭을 이루고 있다.
회동리는 한때 광산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광산 개발은 1962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입지적 여건 들 등으로 개발이 부진하다가 1977년 대성탄좌개발(주)에서 인수한 후 활발하게 진행되어 연간 10만 톤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석탄산업이 호황일 때 당시인 1970년대 정선읍의 가장 대표적인 탄광으로 명성을 날리던 회동탄광이 1982년 문을 닫자 산업 기반이 없는 회동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탈바꿈했다.
회동리에는 말목쪽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회동계곡의 맑은 물과 명산인 가리왕산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는 열목어와 메기가 많이 서식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정선의 산간 지역 중 큰 홍수나 가뭄 등의 피해도 없고 농사도 잘되는 곳으로 현재 153가호 346명(2012년 5월 31일 기준)의 주민들이 대부분 농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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