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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땀이 밴 사북 650m 갱도, 42년의 기억을 다시 열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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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 최대 민영탄광 사북광업소, 복합문화공간 ‘M650’으로 재탄생

연간 300만t 생산 신화부터 1980년 사북항쟁까지…광부의 삶과 노동 보존

 

(강원랜드)  M650 박물관 조감도 80%.jpg

 

한때 수천 명의 광부가 어둠 속으로 내려가 대한민국의 불을 밝혔던 사북광업소가 역사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연다.

강원랜드(대표이사 김도균)는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건물과 채탄시설을 보존·재생한 복합문화공간 ‘M650’을 오는 10월 1일 정식 개관한다.

 

M650의 모태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정부의 석탄 증산정책이 본격화되던 1962년 4월 문을 열었다. 

2004년 11월 폐광할 때까지 42년 동안 석탄을 캐내며 대한민국 산업화와 사북의 성장을 이끈 동양 최대 규모의 민영탄광이었다.

 

개광 초기인 1963년에는 종업원 600여 명이 15만5,000t가량의 석탄을 생산했다. 

이후 채탄과 운반시설이 기계화되면서 1974년 연간 생산량 100만t, 1977년 150만t을 넘어섰고 1978년에는 국내 석탄 생산량 1위에 올랐다.

 

1983년에는 지하 깊은 곳의 광부와 석탄을 지상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수갱타워가 세워졌다. 

대규모 사갱과 벨트컨베이어 등 운탄시설까지 갖추면서 1987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300만t 안팎으로 늘어 전국 생산량의 약 13%를 차지했다. 한때 5,000명이 넘는 광산노동자가 사북에서 일했다. 

 

(강원랜드) M650 박물관_수갱타워(조감도) (1) 50%.png

<수갱타워 조감도>

 

석탄이 쏟아져 나오자 사람도 몰려들었다. 깊은 산골이던 사북에는 사택과 학교, 시장, 병원과 극장이 들어섰다. 전국에서 모여든 광부와 가족, 상인들이 탄광도시를 일으켜 세웠고 사북은 1973년 읍으로 승격됐다.

 

마을의 하루는 광업소의 사이렌에 맞춰 시작되고 끝났다. 광부들은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막장으로 내려갔고, 가족들은 검은 작업복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석탄 한 덩이에는 산업화의 빛과 함께 막장의 어둠, 광부들의 땀과 목숨이 포개져 있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광부들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위험한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 열악한 사택과 복지시설, 어용노조 문제와 회사의 통제는 노동자들의 삶을 짓눌렀다.

 

쌓이고 쌓인 분노는 1980년 4월 ‘사북항쟁’으로 터져 나왔다.

사북항쟁은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동원탄좌 광부와 가족, 주민 등 6,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노동·민중항쟁이다. 

노조지부장 선거를 둘러싼 어용노조 논란과 임금 인상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던 가운데 경찰 차량이 광부를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저항은 사북 전역으로 번졌다.

 

광부와 주민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어용노조 문제 해결,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한 책임을 요구했다. 항쟁은 나흘 만에 노사정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약속 뒤에는 더 가혹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엄당국은 항쟁 참가자와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연행했다. 

불법구금과 고문, 가혹행위가 이어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폭도’라는 낙인이 씌워졌다. 국가의 에너지를 캐냈던 광부들은 자신들이 지탱한 국가로부터 외면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사북사건을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권고했다. 2026년 8월에는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면서 국가폭력의 책임을 인정했다. 

항쟁이 일어난 지 46년 만이었다. 

 

(강원랜드) M650 박물관 내부(광부들이 신발을 씻던 세화장).png

<사북광업소 내부 광부들이 신불을 씻던 세화장> 

 

 

영원할 것 같았던 탄광의 불빛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사북광업소는 생산량을 줄여나갔다. 1999년에는 58만2,000t까지 감소했고, 2004년 11월 정선지역 탄광 가운데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수갱이 멈추자 사람들도 떠났다. 

광부와 가족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흩어졌고, 탄광에 기대어 살아온 사북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를 견뎌야 했다. 광업소에 남은 것은 녹슨 갱차와 멈춰 선 권양기, 탄가루 밴 벽과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강원랜드는 이 산업화의 영광과 광부들의 희생, 사북항쟁의 아픔이 함께 남아 있는 광업소를 허무는 대신 보존하는 길을 택했다. 

2021년부터 동원탄좌 사무실과 샤워실, 수갱타워, 650갱도 등을 원형에 가깝게 정비하고 전시·체험·휴식 기능을 더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M650’이라는 이름에는 광산을 뜻하는 ‘Mine’과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 광업소가 자리한 해발 650m의 장소성이 함께 담겼다.

 

(강원랜드)  M650 박물관마무리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도균 강원랜드 대표이사.JPG

 

관람객들은 전시관을 따라 광부들의 작업복과 장비, 채탄 과정과 탄광촌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갱차를 타고 갱도를 체험하고, 한때 광부와 석탄을 끌어 올리던 권양기실을 개조한 카페에서 멈춰 선 탄광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M650은 폐광시설을 관광자원으로 꾸민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석탄을 얼마나 많이 캐냈는가만 기록하는 곳도 아니다. 그 석탄을 캐기 위해 누가 어둠으로 내려갔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요구했는지를 함께 기억하는 공간이다.

 

정식 개관식은 10월 7일 열린다. 

이날부터 10일까지 석탄산업전환지역 7개 시·군이 참여하는 ‘2026 탄광문화축제’도 개최돼 공연과 전시, 체험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질 예정이다.

 

(강원랜드)  M650 박물관마무리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도균 강원랜드 대표이사.JPG

<196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에너지를 공급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광부들의 삶과 노동, 1980년 사북항쟁의 역사를 품은 복합문화공간 ‘M650’으로 다시 태어나 오는 10월 1일 정식 개관한다. 김도균 강원랜드 대표이사가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김도균 강원랜드 대표이사는 “M650은 사북광업소의 건물과 시설을 단순히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간에 축적된 노동자들의 삶과 기억까지 이어가기 위해 조성했다”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탄광의 역사와 가치를 새로운 세대가 직접 경험하는 대표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심의를 통과해 국가유산청 심의를 앞두고 있다.

 

42년 동안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갱차는 멈췄지만, 그 안에 실린 역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M650은 산업화의 빛 뒤에 가려졌던 광부들의 얼굴과 사북의 기억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김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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