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 임계면 도전2리(내도전마을)에서 진행 중인 내도전천 교량 설치 공사는 공공사업이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사업의 필요성이 검토되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기존 다리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교량이 왜 필요한지, 기존 시설을 보수·보강하는 방안은 검토되었는지, 공사 완료 후 마을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
주민들이 사업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공사가 시작된 이후였다.
그리고 그때 주민들이 마주한 것은 새로운 교량의 모습이 아니라 사라지고 있는 자연이었다.
오랜 세월 형성된 자연 암반은 훼손되고 계곡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고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행정기관은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연은 계속 훼손되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계곡을 지켜온 고목이 공사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제거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자연을 보전하겠다는 설명과 고목 제거라는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선순위였는가.
공공사업의 목적은 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것이지 자연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연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장애물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나무는 공사에 방해가 되면 베어지고, 암반은 시공에 불편하면 깎여 나간다. 그렇게 사라진 자연은 설계도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민들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나무 한 그루와 돌 몇 개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형성된 계곡의 풍경이며 주민들의 생활환경이고 정선이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교량 설치 공사 이전의 정선군 임계면 도전2리 내도전천. 자연 암반과 수목, 계곡이 어우러진 모습.>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결정이 대부분 주민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사업이 결정되는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공사가 시작된 뒤 달라진 현장을 보며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과연 이것이 주민을 위한 공공사업인가.
정선은 자연을 가장 큰 자산으로 내세우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공공사업 역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설계의 출발점은 ‘어떻게 공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연을 최대한 보존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내도전천 교량 공사가 남긴 가장 큰 질문은 교량 자체가 아니다. 주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자연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니다.
행정이 말하는 자연친화성과 주민들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의 신뢰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
다리는 새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훼손된 자연과 무너진 신뢰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지효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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