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의 반세기] 공무원 월급은 2만원, 광부 월급은 6만원
2018/02/05 09: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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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높은 임금과 복지의 제공이다. 당시 탄광 노동자는 다른 제조업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았고, 사택이 무상으로 지급됐으며, 자녀 교육비도 지원됐다. 입사 때도 신체검사만 통과하면 학력이나 경력 등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이 같은 조건은 당시 중동지역 등 해외 건설현장에서 귀국한 사람들이나 원양어업에 종사했던 어민들, 이런 저런 일로 수배를 받거나 형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봉모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에는 쌀이 귀했잖아요. 혼합곡이라고 해서 쌀이랑 보리랑 섞어먹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광산에서 일하면 월급으로 쌀을 줬거든요. 하루 일하면 쌀 두 되를 주고, 한 달 만근하면 쌀 두 가마니를 받았어요. 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생필품은 쌀하고 바꾸면 되니까 괜찮았죠. 그리고 동원탄좌가 자리를 잡으니까 쌀 대신 월급을 줬는데 도시 근로자 두 배쯤 됐어요. 그때부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죠. 그중에는 사로뭉치들, 깡패도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동네 분위기가 살벌했죠.”
1978년 1월 동원탄좌에 입사한 조동희 씨도 기억이 비슷했다.
“고등학교 졸업 한 달 전에 동탄에 취직했어요. 측량하는 분들 따라다니면서 뽈대 잡아주고 허드렛일을 했는데 첫 달 받은 월급이 6만7천이에요. 그때 하루 일당이 1천950이었어요. 군대 다녀온 사람은 2천원 정도였고요. 어떤 분은 2천원 이상은 세금을 내야 하니까 1천900원 받는 게 이득이라고도 했죠. 그때 5급 공무원, 지금으로 치면 9급에 합격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제가 월급이 배로 많았어요. 다른 직군에 비하면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 수준이 훨씬 높았죠.”
직영인 동원탄좌에 비하면 하청업체인 조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급여 수준이 좀 더 낮았다. 하지만 다른 직군보다는 높은 편이었다. 1975년 3월 삼척탄좌 조광업체인 인동광업소에 입사한 구세진(61세,1957년생)씨의 말을 들어보자.
“열여덟 살에 인동광업소에 들어갔어요. 슈트공이라고, 막자에서 캐낸 탄을 광차에 실어서 운반하는 걸 도왔어요. 전차 조수로 일한 거죠. 그때는 공휴가 한 달에 이틀이었는데. 말하자면 보름 일하고 하루 쉬는 거예요. 그러고 월급을 5만8천원 받았어요. 당시 공무원은 2만1천원을 받을 때에요. 2000년 초에 광산 끝날 때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70년대에는 월급이 두 배 정도 차이가 났어요. 그래서 다들 광산 일이 너무 힘든데도 열심히 일했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사북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즈음부터 ‘사북은 팔도 공화국’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한 막장 안에 모인 광부들이 각자 고향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몇몇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대화가 안 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전라도 출신이 더 많았는데, 이에 대해 황봉모 씨는 “동원탄좌 이연 회장이 전라도 김제 출신이고 삼척탄좌 사장은 강원도 사람이어서 전라도 사람이 삼탄에 이력서를 내면 사북으로 가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최진섭 씨도 “당시 정선군 충남향우회장을 맡았는데 그때 회원이 500명에 달했다”고 말을 보탰다.
이와 함께 ‘탄광 신체검사에 합격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체 건강한 남자’ 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탄광에 입사하려면 서류전형과 면접, 상의를 벗은 채 실시하는 신체검사, 병원의 2차 정밀 신체검사를 모두 통과해야 했다. 개당 30~40킬로그램에 달하는 갱목을 등에 짊어지고 막장을 수시로 오간다거나, 깜깜한 굴속에서 몇 시간씩 허리를 구부린 상태로 도끼질을 해야 하니 건강한 신체가 필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탄광의 신체검사는 그 어느 곳보다 까다로웠고, 조금만 이상이 발견돼도 불합격이었다. ‘동원탄좌 입사는 육사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부는 병원에 뒷돈을 주고 신체검사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원탄좌에 들어가려면 우선 동원보건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해요. 그때 원무과에 있던 사람한테 공식적으로 주는 게 있었어요. 그때 돈으로 15만원이에요. 신체검사 결과를 속여서 써주는 거죠. 탄광에서 한 달을 일해도 못 받는 돈인데 그래도 그 돈을 안 주면 취직을 못하니까 빚을 내서 주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거죠.”
황봉모 씨의 기억이다.
까다로운 채용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동원탄좌에 입사한 사람들은 자체 훈련기관인 동원탄좌 직업훈련소에서 기초훈련을 받았다. 기초교육생은 4주일, 직업훈련생은 3~6개월간 교육이 이뤄졌는데, 주로 체력단련과 지주 시공, 착암기 기술교육, 동발 실습, 채탄 훈련, 용접기술 연마 등으로 진행됐다. 
당시 동원탄좌 직업훈련원은 광업소 현장에 모의갱도를 설치해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론과 실기를 겸한 사전교육을 모두 이수한 후 실제 작업현장에서 한 달 가량 열심히 현장 실습을 해야 최종 입사가 허용됐다. 훈련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는데, 일주일도 못 견디고 말없이 훈련원을 떠나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동원탄좌 직업훈련원은 매년 신입직원 교육 외에도 전문고급인력 양성반, 굴진기술 개선반, 채탄 기능반 등을 개설해 2개월 코스로 운영했다. 또한 특수구호대 훈련, 재해사례교육, 탄광기술교육 등을 벌이는 한편, 인근 대학, 공고 등과 산학협동체계를 구축해 현장실습교육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광산교육을 실시했다.

사음회 50주년 백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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