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지명유래] 신동읍 새나루·고성리산성·고인돌
2017/10/20 11:2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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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선 정선아리랑박물관장


새나루[新津]
창마을 동쪽 골 안쪽 산중턱에 있는 마을로 현재 3가호가 살고 있다. ‘새나루’라는 이름은 마을 아래쪽에 언젠가는 새로운 나루터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예언성 지명(豫言性地明)이라고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영월댐 문제로 논란이 될 때 영월읍 거운리 만지(滿地)에 댐이 완성될 경우 고성리로 들어차는 물이 새나루 바로 아래까지와 나루터가 생길 것이라고 하자 옛 지명에 감탄하기도 했다.


고성리산성[古城里山城]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68호로 고방마을 앞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축성 선대를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가 남진을 하면서 전초 기지나 후방 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요새로 추측된다.


5~6세기 당시 고구려와 신라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을 펼쳤는데, 고성을 끼고 있는 지역은 영서지방의 평창군에서 영남지방으로 통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한강 상류를 따라 남하하면서 충북 영춘에 온달산성을 전진기지로 삼고 영월 뱃나들이의 대야리산성, 정양리의 왕검성, 삼옥리의 완택산성, 신동읍의 고성리 산성을 연결해 한강 유역을 확보하려고 애를 썼다.


해발720m가 되는 산을 중심으로 띠를 두른 듯이 쌓은 테뫼형 산성인 이 성은 북쪽으로 남은 약80m의 성곽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고 동쪽과 서쪽은 이에 비해 외벽과 내벽이 무너져 있다. 축조 방식은 장방형의 모가 난 큰돌을 아래에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10~15도 정도 기울여 쌓는 물림 쌓기 방식으로 쌓았는데, 성을 연속해 쌓지 않고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 네 곳의 공간에 쌓은 것이 특징이다.


성 위에서 보면 동쪽의 강 상류가 눈에 훤히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구레기고개, 서쪽으로는 굽이도는 강줄기가 눈에 들어와 천연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안에서 밭을 일구다가 여러 개의 돌화살촉 등을 발견하기도 했다. 매년 고성리와 가까운 덕천리・운치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고성산성제를 열어 성곽  보존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최근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는 곳이다.


고인돌
고성분교 뒤 밭 한가운데에 있다. 선사시대 지석묘로 너비2m의 상석을 1m되는 지석이 고이고 있어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상석에는 성혈이 30여 군데 눈에 띄며,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상석은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석은 하나만 완전하고 밭에서 나온 돌로 밑이 채워져 있다. 이 고인돌에서 3m 떨어진 곳에서고 고인돌 1기가 남아 있다.


고성리 주민들은 상석에 있는 많은 성혈을 두고 옛날 고성리를 다스리던 귀족이나 장군의 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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