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의 반세기] 동원탄좌 설립 이후 사북의 변화들
2017/09/13 09: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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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음회 50주년 기념백서 中


사북지역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드나든 것은 1951년 임산도로가 개통하면서부터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고, 정부에서도 전후 재건을 위해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사북지역은 전체 면적의 80퍼센트 이상이 임야여서 산림 자원이 풍부했고, 원시림에 가까워 목재의 질도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첩첩산중인 탓에 나무를 운반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초기에는 사북의 하천이 깊고 넓어서 배로 나무를 실어 날랐다. 하지만 눈비가 많이 내리면 배를 띄울 수 없어서 3~5일간 나무 운반이 중단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정부는 당시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던 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화절령과 지장산 등 고지대에 도로를 닦았다. 나무를 운반하는 도로하고 해서 임산도로라 명명했다. 이후 임산도로를 통해 하루에 수십 톤씩 원주나 서울 등지로 목재가 실려 나갔다.


 이후 사북지역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이번엔 석탄 운반이 난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석탄 운반을 위해 철도공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1955년 영암선, 함백선, 문경선이 개통했고, 1956년 영월선이 개통했다. 1973년에는 태백과 철암과 청량리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어 영월과 태백지역의 석탄은 수월하게 서울로 운반 됐다.


하지만 사북지역은 산사면을 깎거나 터널을 뚫어야 하고, 산과 산을 연결하는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등 난공사 구간이 많아 공사 기간만 10년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사북지역의 탄광들은 품질 좋은 석탄을 생산하고도 판매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962년 만항재에서 새빗재까지 35킬로미터에 이르는 운탄도로를 개설했다. 말 그대로 석탄을 운반하는 도로하는 뜻이다.


당시 운탄도로는 국토건설단에 의해 탄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병역미필자 구제와 국토건설 사업을 명분으로 1962년 국토건설단을 창단해 조직폭력배나 부랑자 등 1만4천여 명을 댐과 도로, 철도 개설 공사에 강제로 동원했다. 당시 운탄도로 개설 공사에는 무려 2천여 명이 투입됐다. 워낙 난공사여서 노역 중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인근에서 도로 보수공사 등으로 땅을 파면 군복 입은 시체가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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