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지명유래 – 화암면 백전리
2017/03/13 11: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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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백전리는 예부터 잣 주산지로 마을 사람들이 잣나무를 많이 심어 백청림이 울창하여 잣밭(栢田)이라고 했다. 백전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작은 개울을 따라 야트막한 구릉을 찾아든 사람들이 잣나무 숲을 밭으로 바꾸면서 경작지를 조금씩 늘려갔다.
백전리는 삼척시 하장면과 경계를 이루며 용소에서 발원한 시원한 물줄기는 예전에 주민들이 애용하던 물레방아의 동력원이었다.
백전1리의 자연마을로는 서원이 있던 서원기, 농경지가 넓은 대지산, 고려말엽 정승이 난을 피하여 머물렀다는 정승골, 삼척시 하장면과 백전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하던 합수거리가 있다. 백전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1급수를 자랑하며 금강모치, 쉬리, 퉁가리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백전2리는 하천변을 따라 형성된 마을 길이가 십여 리나 돼 마을을 돌고 나면 땀이 난다는 한소, 백전리 제일 끝 마을인 마당목,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붉은 칠한 큰 나무에 오리를 깎아 얹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던 노나무골이란 자연마을이 있다.


정승골
호촌리에서 백전리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난 큰 골짜기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옛날 전란을 피해 온 정승이 숨어 살았던 골짜기라고 해서 정승골이라고 부른다. 정승골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마을 사람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은 채 벌채를 하러 산으로 올라갔다가 호랑이가 따라 내려왔다. 호랑이가 집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큰 대문에 이르자 발톱으로 대문을 할퀴었다. 그때 할퀸 흔적이 집을 고치기 전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 이 마을 사람들이 골짜기를 넘어 삼척 역둔으로 다니곤 했다.


핏대봉
정승골 북쪽에 있는 해발 1208.6m의 산이다.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우리나라 땅을 수탈하기위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측량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삼각기점을 잡고 푯대를 박은 곳이다. 정선 화암면과 삼척 역둔의 경계가 되는 곳이며, 밤에는 정선읍내가 보인다고 한다.

선돌
정승골 동쪽 골짜기에 있다. 길 위로 바위가 서 있는 곳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20여 년 전까지 7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서원기(書院基)
정승골 입구와 평밭거리 사이의 424번 도로에서 남쪽 노목산 쪽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다. 조선시대 서원이 있던 마을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한학을 가르쳤다고 해 서원기(書院基)라 한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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