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읍내 마지막 재제소 대림목재
2020/05/06 11: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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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살아있는 기억

사라지는 마을  살아 있는 기억.jpg


“사실 장사는 원활하게 안 되고 있지만 이런 재제소는 지역에 하나쯤 있어줘야 하는데 소모가 적으니 인건비도 안 나와서 도로가 나서 없어지면 목재소를 다시 열 수 없을 듯 싶어 안타깝습니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김원호(79세)씨는 69년 고한으로 이주를 한 뒤 건축업에 종사 했다. 정선에 온지 6년 뒤 그는 결혼을 했다. 결혼 하고 아내와 함께 봉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던 제 1회 아리랑제를 구경하던 때를 가장 큰 추억으로 꼽았다.


정선에 와서 건설 일을 계속하다 지금 그가 운영하던 대림목재소를 1990년도 4월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당시에는 정선읍만 해도 목재소가 4개나 있었는데 1990년 당시에는 정선 낙엽송이 전국에 유명해서 낙엽송 판매를 많이 했었단다.


대림목재를 인수한 김 사장은 정선에서는 처음으로 인천 부두로 들어오는 수입목을 사다가 판매를 하기 시작했는데 목돈을 주고 나무를 사다가 쪼개 외상으로 팔았는데 간혹 외상으로 가져가고 돈을 안 갚은 건축업자들 덕분에 그냥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세월을 지내고 말았단다.


1990년도에 목재소를 인수한 후 목재 장사가 제법 잘 돌아 가던 시기여서 직원들 여덟을 두고 하루 종일 나무를 쪼개고 배달하고 가족 모두 힘을 합해 일을 하는 시절이었는데 목재소가 지금까지 버틴 것은 아내인 조경자씨가 살뜰하게 목재소 살림을 함께 운영한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고 그간의 아내의 노력을 고마워한다.


“2002년도에 태풍 매미를 겪고 수습도 체 되기 전에 태풍 루사가 와서 참 많이 힘든 시절을 견뎌야만 했지요, 물을 넘쳐 오는데 비싼 돈 주고 사온 통나무들이 물에 떠내려 갈까봐 목재소 입구를 막고 정말 아수라장이었어요”


수해가 지나가고 목재를 켜는 제재 기계의 땅속 모터가 망가져서 목재소를 복구하는데 쉽지 않은 세월을 지내야 했다.


목재소 일과 함께 사회활동도 활발히 한 그는 정선 로터리 클럽 1회 회장을 엮임하고 15년 넘는 세월 동안 수렵협회 강원도 지회장으로 활동해왔다. 부인인 조경자(69세)씨와의 사이에 아들하나 딸 둘을 키워냈다. 권혜경 hk@jswee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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